나를 찾게 해준 중요한 내 삶의 부분
올해 초 이전 직장에서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향한 여정에 용기있게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아직 혼란 속에 있다. 영국 간호사 면허번호를 받아 정식으로 등록이 되었지만, 비자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기다리면 기회는 오겠지만, 런던 생활을 단기 어학연수로 경험해 본 이후 영국행이 과연 맞는 건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다시 고민 중이다.
세번째 퇴사...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 내에서 만족하며 최선을 다 하는게 나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덕분에 내가 실제로 넓은 세상을 경험할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30대를 훌쩍 지나서였다. 친구의 소개로 돈 벌면서 해외 생활을 해볼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기회인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도 그 즈음이었고, 그 때는 이미 안정적인 보건교사라는 직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뒤돌아보면 호기심이 그렇게 많고 외국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20대에는 세상을 탐험해야겠다는 생각도, 직접 실행한 적도 별로 없었다. 늘 긴장 상태로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빴다. 또, 나에 대해 알아가려 노력해본 적도, 겨를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몇발짝 앞만 바라다보며 사회가 정한 길대로 열심히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대학 때는 가정형편 상 장학금을 받기 위해 그리고 흥미를 느꼈던 간호학 공부에 매진했고, 덕분에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원하던 서울의 직장에 취업해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직장은 나에게 안정적인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그런 울타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근데 과연 나에게 있어 '안정적'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요즘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삶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요즘 나의 마음은 꽤나 안정적이다. (물론 불안이나 두려움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서 말하는 안정적인 삶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불안정한 직업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의 내면이 불안정했기에 외부에서 말하는 '안정'에 집중해왔던 것도 같다. 내 안을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어떻게 하는 지도 몰랐기에.. (흔히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30살 이전엔 이런 개념이 있는 지도 몰랐다. 다행히 32세에 개인상담을 시작한 이후 끊임없이 내게 집중하고 긍정적인 셀프토크 하려 노력해오고 있다.)
나와 맞는 일인지 깊은 고민없이, 외적 조건에 근거해 결정한 나의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왔다. (친구들은 늘 나의 추진력과 실행력을 칭찬해주었다. 사실은 나 자신과 삶의 큰 흐름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의 전 직장들은 누가 들어도 꽤나 그럴듯 하다. 간호학과 졸업 이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2년간 근무했고, 이후 고향에 돌아가 보건교사로 10년 근무, 제주도에서 3년을 근무했다. 보건교사 일을 시작했을 때, 병원과는 완전히 다른 업무 구조와 직장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갈수록 보건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자기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방법을 안내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이 일이 내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잘 변하지 않는 학사 일정 등이 3교대에 지친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 일을 가능한 한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내가 학창시절 바랬던 '학생들에게 따뜻하고 믿음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기 위해 늘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덕분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보건교사로 근무했던 13여년은 내 인생의 큰 전환기이자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자리였지만, 그와 동시에 나 스스로도 돌보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근무 초기 깨달았고,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경험이 쌓이다보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력도 생겨났다. 특히,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곁에서 에너지 넘치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잊혀져 있던 나의 어린 시절도 조금씩 선명해졌던 것 같다. 조건없이 나를 좋아해주고 믿어준 아이들 덕분에 '나'를 찾았고, 어른으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정말 놀랍고도 고마운 경험이었다.
나도 그런 예쁜 마음을 다시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다쳐서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 마음이 힘들어서 오는 아이들, 수업시간이 괴로워 오는 아이들, 친구나 선생님과의 관계가 힘들어 오는 아이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 만성질환을 가진 아이들... 정말 다양한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며 억눌린 내 감정들도 조금씩 고개를 들었던 것 같다.
때로는 서툰 젊은 교사로서 의도치 않게 부족한 모습도 보였고, 그래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노력하기도 하고.. 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춘기 청소년들과 관계 맺는 법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해결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내 마음이 힘들어지면 나는 또다시 내 안의 깊은 동굴에 숨어드는 것을 반복했고,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학교를 떠났다.
돌아보면 결국 아이들의 마음을 향하는, 또 내 마음을 향하는 '대장정'이었다.
특히나 나처럼 사람 관계에 익숙치 않고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물론 한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여정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잘 지내며 따뜻하게 지도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을 존경한다.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고, 많이 배웠다.)
특히, 어른과의 관계는 늘 내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누군가는 학생들이 힘들어서 학교를 떠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일부 나와 맞지 않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늘 어려웠다. 다른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느끼는 사람 스트레스이다. 여느 직장과 같이 학교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학교 크기에 따라 그 다양성은 가감되지만, 학교에는 여러 부서가 있고 협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소통이 잘 되는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거나 직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안정적이라는 조직 내에서도.. 물론, 개인의 특성도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존중이 부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친구든 가족에게든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면 마치 그 사람이 문제인 듯 취급된다. 왜일까? 안정적인 직장인데 감히 사람 스트레스가 있다고 말하면 안되는걸까? 아니면 교사면 동료랑 잘 지내는게 당연하지, 너만 왜그래? 라는 시선이 있는걸까.. 물론, 일부 선생님들이나 공무원 퇴사자 분들이 학교 내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업무 시스템에 대해 언급은 하고 있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교사 의원면직을 했다고 하면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개인의 특성과 조직 구조의 영향이 함께 했을 거란 것을 이제는 안다. 물론, 나 자신의 성숙한 관계 맺는 기술도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업무 외적으로 부당한 대우나 개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에서든..
보건교사로 지내오며 아이들과의 만남은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간들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전에 경험한 아픔들이 조직 내에서 반복적으로 건드려질 때면 앗뜨거 하고 내 안으로 숨어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내 중심을 지키려는 노력과 함께 힘들어하는 나를 기다려주려고 한다. 마치 지나가다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잠시 마주친 어려움일 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또 흘러갈거라고.. 다독이며..
이제는 지속가능한 일을 하고 싶다. 좀 더 나에게 잘 맞고 내게 중요한 가치들을 실천하며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 그게 다시 보건교사로 돌아가는 일이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든, 중요한 건 나 자신이 단단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쓰기로 하루를 열어본다.
* 제목 사진 출처 : 애뽈일러스트 2017, 그라폴리오 스토리픽/숲소녀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