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리다

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by 아름답게




그는 마치 고장 난 벽시계 같다.


하루에 두 번쯤은, 고장 난 벽시계도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듯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괘변 사이사이로
조직을 위한 성장의 방향에 관한 그럴듯한 문장이
간혹 한두 마디 섞여 있다.
그 순간만큼은 사람들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진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신호 삼아
그는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속마음’이라는 것들은

오류투성이에, 자기 합리화로 가득 차 있어
방금 전까지 맞장구치던 사람들마저
조용히 시선을 거두게 만든다.




몇 년 전,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묘하게도 오래된 만화영화 속 캐릭터를 떠올렸다.


두꺼운 네모난 안경,
팔토시를 낀 팔,
셔츠 앞 주머니엔 유난히 뾰족하게 깎인 연필 하나.

입꼬리는 힘주어 다문 채 거꾸로 뒤집힌 ‘U’ 자 모양이었지만

처음 만난 나에게 그의 말투는 의외로 친절한 편이었다.


함께 근무를 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조심해.”




소문에 따르면
그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서
한 번에 도장을 받아 나온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제나 한 번은 막혔고, 두 번은 퇴짜였다.


그는 ‘팀의 저승사자’라 불렸다.
심술이 고약하기로 유명해
신입 직원들이 그의 책상 옆 작은 의자에 앉으라는 말을 들은 날이면

울지 않고 돌아온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앞선 화려한 소문을 뒷받침하듯 일상 속에서 늘 화가 많았다.

팔팔 끓는 양은냄비에 인간의 형체를 씌워두면 딱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화가 많은 만큼 목소리도 컸다.


회의 중,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말이 나오면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주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듣다 보면 분명 상대의 말에 허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끝까지 듣고 나면 대부분은 괘변이었다.
본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변론에 가까운 이야기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각자 마음속에서 만든 별명으로 그를 불렀다.


한동안 조직의 균열에 큰 공(?)을 세웠던 그는 새로운 관리자를 만나며 뜻밖의 역풍을 맞았다.

이전보다는 조용해진 듯 보였지만 끈질기게, 꾸준히 자신이 부당하다고 느낀 것들을 관리자가 아닌 동료들에게 주장했고 이는 역풍을 가속화했을 뿐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수십 년 몸담았던 이 조직을 곧 떠나게 된다.


사람들은 예전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 사람은 지독해서 끝까지 정년은 채울 거야.”


그가 나갈 해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도 결코 농담은 아니었다.


오늘,
자기만의 세상인 담당실에 틀어박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여전히 네모 안경에 팔토시 차림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
예전처럼 독하지도, 매섭지도 않은 동네 어딘가에서 마주칠 법한 아저씨가 보이는 편안한 눈망울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독하고 매섭게 질주하던 사람도 결국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쥐지는 못한다는 걸.


그리고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리다며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 조직을 살아가던 사람의 말로는 생각보다 꽤

쓸쓸하다는 걸.


그의 침묵이 말해주었다.

일터에서 끝내 들리지 않는 속마음은,

대부분 너무 늦게야 제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왜 나는 기록하기 시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