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하얀색과 검은색을 섞으면 회색이 된다.
우유부단함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종종 회색을 떠올린다.
내가 만났던 그녀는 브라운빛 코트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늘 생글거렸고, 상냥했고, 정의감도 있어 보였다.
나이대도 비슷했고 생각보다 코드도 잘 맞았다.
집도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괜찮은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몇 번 사적으로 자리를 가지며, 그녀의 인간관계에 작은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원데이 클래스에서였다.
새로 생긴 공방에서 목공 도마 클래스를 함께 듣고 있었는데, 강사가 그녀를 유심히 보더니 조심스레 이름을 물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개명을 했다며, 예전 이름이 맞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뒤, 할머니가 사주를 이유로 개명을 권했고 공방 주인은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친하지는 않다고 굳이 이유를 덧붙였다.
그날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애써 묻지 않았다.
그만큼 당황했나 보다, 그렇게 넘겼다.
두 번째는 식당에서였다.
그녀가 좋아한다던 샤브샤브 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 문을 열고 들어오는 3~4명의 여자 무리를 본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었다.
상황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했고,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그들 쪽으로 가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눈빛이 유난히 슬퍼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그들이 대학 동기라고 했다.
자신을 빼고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해 보였지만, 헤어질 때까지 감정을 눌러 담았다.
마지막은 동료들 사이에 있을 때였다.
나와는 친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그녀는 우리 관계를 굳이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비밀연애를 하듯.
곧 이유가 드러났다.
그녀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단짝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그녀를 자신의 사람이라 믿었고, 그녀는 그 누구도 명확히 밀어내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싸움의 바깥으로 밀려나, 관찰자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에그타르트를 건네며 말했다.
“예전 같지 않아 아쉽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풀자.”
꼬이지도 않은 관계를, 이미 꼬여버린 것처럼 말하는 얼굴이었다.
그 순간 이후, 나는 그녀를 더 이상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결의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었고,
마치 원하는 모습을 얻은 사람처럼 더 크게,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일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녀를 둘러싼 관계의 긴장도 서서히 정리되었고,
그 끝에 남은 건 혼자가 된 그녀였다.
그녀는 여전히 처음 보는 다른 이들에게 친절했고 나이스했지만,
정작 누군가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늘 우유부단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는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분노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상냥한 브라운 코트의 동료가 아니었다.
우유부단하고, 손해 앞에서는 다혈질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