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잔혹사

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by 아름답게




MZ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문득 내가 과연 MZ세대에 속하는지 궁금해졌던 기억이 난다.




당시 뉴스와 기사마다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밀레니얼과 Z세대를 가르는 출생연도는 매번 달랐고, 최근 포털에 다시 검색해 보니 밀레니얼은 1980~1996년생, Z세대는 1997~2012년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학술적으로 명확히 합의된 용어가 아니기에, 넓게 보면 MZ세대는 1980~2012년생을 아우른다고 한다.




그중 나는 1990년대 초반 출생자다.

밀레니얼의 끝자락이자 Z세대의 문턱에 걸쳐 있는, 이른바 ‘질리니얼(Zillennials)’이다.




그렇다면 왜 유행도 한참 지난, 이제는 너무나 보편화된 ‘MZ’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이 단어가 직장 내에서 결코 긍정적인 맥락으로 불리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현상은 비단 우리 조직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신규 시절을 지나며 보낸 10년의 시간은, 원로 선배들이 말하는 산전수전공중전육탄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서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눈빛이 반짝이는 후배들을 만나면, 괜히 더 잘해주고 싶어졌다.




나 역시 그런 선배들을 만나며 성장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명 ‘Z후배’에게 일 적으로만 좋은 선배가 아니라 언제든 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되어주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었다.

초롱한 눈빛과 예의 바른 태도는, 선배로서 이끌어주고 싶은 후배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정확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 번 함께 보내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변질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고작 1년인 관계 같아 씁쓸했고, 1년을 바짝 정신 차리지 못하고 힘을 풀어버리는 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며 스쳐간 Z세대 동료들은 꽤 많았지만,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특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




텅 빈 복도에서 마주쳐 눈이 마주쳐도, 고개를 숙이거나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피한 채 그대로 지나간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사이인데, 그 어색함이 오히려 그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혹자는 꼰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인사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인사가 아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다’라는 최소한의 인정, 1초의 눈 맞춤이나 목례 정도다. 짧은 스몰톡조차 바라지 않는다.

그마저도 꼰대라면, 더 할 말은 없다. 나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적응해 가던 어느 해,

Z세대라 불리던 동료들이 하나둘 조직을 떠나며 이 느슨한 조직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어느 부서의 창고 열쇠가 필요해 자리에 갔다가, 주인 없는 책상에서 열쇠만 가져가기가 애매해 옆자리에 앉은 신규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컴퓨터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는 듯한 기운이 역력했다.




그게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그녀는 토끼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저는 신규라서 아무것도 몰라요.”

10년 전의 나도 선배들 눈에는 저렇게 보였을까.



이미 이 조직의 무미건조함에 익숙해진 나와 달리, 그녀는 아무 색도 묻지 않은 흰 도화지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말을 더 붙였겠지만, 그동안 충분히 다양한 인간군상을 겪어온 터라 열쇠 이야기만 하고 자리를 떴다.




몇 주가 흘렀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열심히 인사를 하던 그녀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업무에 대해 묻고 싶다는 이야기였고, 그 일을 계기로 가끔 함께 점심을 먹고, 조직 생활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었다. 점심을 먹지 않는 타입이라 입사 후 두 달 동안 주변의 점심 권유를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식대가 아깝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내가 먼저 말했다.

“밥 먹고 싶은 날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부담 갖지 말고.”



그날 이후, 그녀는 식사를 하고 싶은 날이면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늘 정중하게 허락을 구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왔다.

장마철이 되자 그녀를 괴롭히던 만성 두통이 심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주 내게 와서 불평을 쏟아냈다. 허락을 구하던 메시지는 점점 사라졌고,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나를 찾는 날도 늘어났다.

또래 동료가 없다는 말에, 그저 들어주는 것밖에 해줄 수 없었다. 여전히 그녀는 겉으로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가을이 되었을 때였다.



근무 중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서로 근무실이 가까운 사이였기에 의아해하며 받았는데,

서럽게 우는 목소리로 1층으로 가방을 가져다줄 수 있냐는 말만 남기고 전화가 끊겼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가방을 들고 내려갔다.

그러나 1층에는 아무도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에 계속 전화를 걸던 중, 다시 전화가 왔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회사 밖인데요. 회사 아래쪽으로 가방을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이해되지 않았지만, 떨리는 목소리에 더 묻지 않았다. 회사 밖으로 나가던 중, 그녀의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이 내려갔고, 울어서 화장이 번진 얼굴로 그녀는 말했다.


출장 전, 흐트러진 화장을 고치기 위해 가방이 필요했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그녀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유는 납득이 갔지만, 충동적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선택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묻었다. 사회 초년생인 그녀에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 뒤로 그녀는 손 편지를 쓰고, 쿠키를 사다 주며 나름의 감사 표현을 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열 살이 훌쩍 넘는 나이 차이 때문인지, 밖에서 밥이나 커피를 마실 때 그녀에게 계산을 맡긴 적은 없었다. 사회 초년생에게 얻어먹을 만큼 야박한 선배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 새로 생긴 카페에 갔고, 커피 값을 한꺼번에 결제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카운터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보였다. 무언가를 사 오는 그녀를 보고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말했다.


“뭐 하러 그런 걸 사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아… 제가 ○○님께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분 드리려고 산 디저트예요.”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90년 대생들의 벙찐 표정과 묘한 눈빛 교환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는 동시에 무언가를 느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 내 태도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종종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월요일 오전 8시 40분.

아직 한참 남은 겨울 휴가 연차를 써야 한다며, 예전에 내가 귀띔해 준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어디에 물어보면 되냐는 메시지가 왔다. 바쁜 월요일 아침에 보낼 만한 내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건 내가 처리해 줄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일에 필요한 도움을 준 사람이었지,

누구의 개인 헬프데스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그녀는

조건 없이 커피를 사주던 동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외부 업체를 위한 커피를 사러 간다며 자리를 뜨고,

커피를 좋아하는 동료들 앞에서 혼자만 새로 생긴 카페의 컵을 들고 회의에 참석했다.



나는 생각한다.



과연 이것을 세대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배려를 비용으로 여기지 않는 감각의 문제일까.


어쩌면 MZ의 잔혹사는,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호의를 ‘관계’가 아닌 ‘자원’으로 소비하는 방식

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도움은 관계를 만든다고 믿었는데,

어떤 이들에겐 그저 사용법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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