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막연하게 시키기만 하면 100%, 아니 120%, 130%
마음먹기에 따라 200%까지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나 간절히 바라왔던 곳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통장에 찍히던 첫 월급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은 많지 않은데… 이렇게 큰 월급을 받아도 되나?”
그 시절의 나는 감격스러울 만큼 순수했고, 일터에 대한 기대도 컸다.
육아휴직 대체로만 계약직을 이어가다 보니,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마음부터 먼저 서늘해졌다.
원래 자리의 주인이 복직을 알리는 순간부터, 나는 정든 공간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집에서 가져온 커피 그라인더, 원두, 책들을 다시 박스에 넣고, 함께 일하며 웃었던 동료들과 아쉬움을 나누고 또다시 차가운 겨울 어딘가에서 새로운 계약직 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보내야 하는 내 모습이 때때로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려면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그 이유가 나에게는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공부가 너무 힘들 때면 이렇게 되뇌었다.
“계약직의 설움에서 벗어나려면, 정규직으로 가야 한다고.”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지난해 0.03점의 차이로 떨어져 쓰라림을 맛봤던 나를 위로하기라도 하듯, 나는 정규직이 되었고,
합격만 하면 하고 싶었던 해외여행, 버티던 몸을 위한 휴식…
그 모든 계획은 눈앞에서 아득하게 흩어졌다.
그래도 이전에 잘 지나왔던 시기들을 떠올리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첫 출근한 나를 반긴 것은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조직이었다.
직장에 들어와 몇 년을 버티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일도 힘든데, 정작 나를 지치게 하는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는 감정들,
말 한마디로 하루를 흔드는 동료들,
설명할 수 없는 왜곡과 침묵,
그리고 “그냥 넘겨”라는 말로 덮어지는 수많은 불편함들.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말투 하나가 나를 온종일 불안하게 만들었고,
어떤 날은 회의실에서의 짧은 댓글 하나가 머릿속을 며칠 동안 떠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일보다 사람의 에너지가 나를 훨씬 더 소모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현상’을 보려고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친절을 가장하며 경계를 무너뜨렸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가련하게 포장하며 모든 책임을 회피했고,
누군가는 권력을 이용해 조직을 자기중심으로 휘어잡았다.
사람들은 서로 달라 보였지만, 행동 패턴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건들을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무슨 일이었는지, 왜 그런 일이 반복되는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도로 바꾸기로 했다.
이 글들은 그런 과정에서 태어난 기록이다.
상처를 되짚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작은 지도를 그리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글들.
직장은 매일 오가는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결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기묘하다.
나는 그 결을 조금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고,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어딘가에 내비치고 싶었던 거 같다.
내가 본 사람들, 그들이 보여준 패턴,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비춰보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하루를 견뎌낸다.
이 글이 혹시,
오늘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상처받고 있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힌트라도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