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좀 편한 타입이잖아?

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by 아름답게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첫 주간.


본인을 ‘늦깎이 교사’라고 소개한 S는 다양한 사업을 하다 아이들 육아에 전념했고, 뒤늦게 대학에서 이수한 교원 자격증으로 2년 차 기간제 교사가 된 새싹 교사였다.


“아무것도 몰라요, 잘 부탁드려요.”
그녀는 늘 그 말과 함께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은 유명 인플루언서가 판매한다는 떡을 공구해 왔다며 건네고,
또 어느 날은 자타공인 ‘떡볶이 귀신’이라며 가장 맛있는 밀키트라며 주었고,
또 다른 날에는 어떤 카페의 원두인데 주말 내내 내 생각이 났다며 선물했다.


나는 원래 받기만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S의 미묘하게 ‘비싼’ 선물세례에 나 역시 개인 카페의 고급 원두를 선물하거나, 주말여행에서 산 특산품을 건네곤 했다.
여러 차례 선물이 오가다 보니 부담이 되어 텀을 두고 답례를 했지만,

그녀는 “저는 주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에요, 부담 갖지 마세요.”라며 바로 다음 날 또 무언가를 들고 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자연스레 두루두루 어울리게 된다.
어느새 S도 공강 시간마다 내가 내리는 커피를 마시러 오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수다를 떠는 ‘편한 사이’가 되어갔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하염없이 잘해주다 보면 결국 자기 색을 드러낸다고.


처음에는 특정 학생들을 향한 비난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동료들을 비난하는 말로 번졌고,
마침내 내가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까지 험담하며 나와의 관계를 더 단단히 묶어보려는 듯한 기류가 느껴졌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이제는 거리를 둬야겠다고.








그즈음, 함께 근무했다 다른 학교로 옮겨간 Y와의 저녁 약속에 S도 함께 오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S는 나와 Y의 친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나와 Y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려는 행동을 반복했다.


식사 자리에서는 Y의 컨디션만 유독 챙기고,

이동할 때는 각자 차를 가져왔음에도 굳이 Y를 자신의 차에 태워 이동하자고 하며 관계를 ‘조정’하려 했다.
훗날 Y는 그날 식사가 무척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때 S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좀… 편한 타입이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줄 필요는 없겠구나.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마음을 먹은 걸 아는 듯 S는 되려 나를 통제하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내가 마시지도 않는 차를 “신상이에요”라며 건넸고,
그 ‘신상’에 대한 답례를 하지 않자 뿔난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느 날은 다른 동료를 시켜, 내가 가진 물건을 마치 자기 것인 양 “빌려준다”라고 말하게 했다가, 정작 그 동료는 상황을 모르고 와서 곤란해하며 사정을 털어놓는 바람에 어이가 없어 웃기도 했다.
학생들이 남기고 간 과자를 마치 호의라도 베푸는 듯 “저 자리에서 가져가라”라고 지시하듯 말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녀의 통제권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점점 뿔이 나더니 결국 ‘무시’ 모드로 전환했다.


그 무시는 오히려 편했다. 나를 소모시키는 에너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S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예전처럼 굴었다.
물론 그 초기화는 오롯이 그녀 기준의 초기화였다.


현재 S는 또 다른 ‘서플라이’를 찾아 헤매다, 본인보다 무려 20살 어린 교사를 붙잡고 다니고 있다.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하지만,
Z세대인 그 교사가 꽤 단단한 친구라 금방 알아채고 빠져나오리라 믿는다.






학부 시절 정신과에서 일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만큼,

이런 인간관계에서 오는 현타가 때로는 힘들지만,
지금 이렇게 그 경험들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기쁨이다.


물론 이런 사람을 애초에 만나지 않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하지만 운명처럼 나타난다면—
나는 이제, 그마저도 글감으로 삼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관계의 진짜 주도권은 ‘누군가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휘둘리지 않는 사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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