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몇 해전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학교로 옮겨 와 아직 결이 맞는 동료를 찾지 못했을 때 교무실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창고 같았던 내 실에 에코백을 들고 와 조금 어색한 얼굴로 인사를 한 그녀는 대뜸 내게 수제비누를 건네었다.
당시 같이 어울렸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분들의 몫까지 챙겨 와서는 나에게 전해주라며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제비누를 주었다.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혹시 그분들 주기 싫으시면 선생님 다 가지셔도 된다며 웃어 보였다.
H와의 첫 만남이다.
수제 비누를 주고 난 뒤로부터 그녀가 내 실로 와서 말을 걸기 시작하는 빈도수가 늘어나면서 H와 짝꿍처럼 다니던 E도 소개를 받았는데 E는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이후 셋이서 제법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E와도 따로 티타임을 가질 정도로 잘 지내었다.
가끔 먼저 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있던 E를 보며 H는
라며 왕언니(?) 포스로 E와 내가 잘 지내는 것이 좋고 뿌듯한 마음인 것처럼 말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H의 입에서 여럿 반복되고 나서 관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서 현관을 들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H였다. 요지는 혼자 사는 자취생들끼리 번개로 저녁을 먹자는 제안이었는데 피곤해서 뭘 시켜 먹을까 했던 차라 제안에 응했고 H와 만나기로 한 자리로 향했다.
H는 고맙게도 우리 집 근처까지 운전을 해서 왔고 H와 3년 넘게 짝꿍이라던 E도 당연히 함께 올 거라 생각했기에 뒷자리에 앉으려던 나는 조수석에 E가 없는 걸 보고 의아해했다.
물어보니 오늘 E는 야자감독이 있어서 식사가 어렵다고 했단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다음에 셋이 함께 먹자 하고 H와 둘이서 식사도 하고 근처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E를 만나 어제 H와 식사자리에 함께 못 만나서 아쉬웠다며 야자감독을 잘했냐 물으니 E의 얼굴이 갸우뚱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자기는 H에게 식사 제안 이야기를 못 들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셋이서 먹자고 말을 아끼며 자리를 떠났다.
3년이나 짝꿍으로 지냈던 사이를 괜히 파고드는 불편한 생각이 들어서 H와 E 두 사람에게 거리를 두었다.
약간 환승연애(?)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관계를 환승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어서 거리를 두었는데, 역시나 H는 E와 셋이 만남 후 정산을 위해 만들었던 단톡방을 말도 없이 나간 뒤에 나에게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본인이 단톡을 나간 이유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서 말이다.
그 뒤로 H는 나에게만 따로 찾아와 구애(?) 아닌 구애를 시작하였는데 나를 향한 구애의 몸짓과 더불어 철저하게 E를 배제하려고 하는 H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던 나는 E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E는 알고 있었다고 조금 상처를 받았다고 했으나 나는 E와의 관계도 잘 유지해 나갔다. 이 모습을 H는 굉장히 싫어했던 거 같다.
어느 날 H는 본인이 늘 나에게 험담하던 교무실의 기존 형성된 무리에 갑작스럽게 끼면서 나와 E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았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H가 나에게 잘해준 것도 또 갑자기 나와의 관계성이 묘하게 틀어진 것도 오랜 시간 이곳에 근무하던 분들은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모르는 척 이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된 뒤에는 조금 충격을 받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H의 과거 업적들이었다.
그녀는 꽤나 공격성을 가진 사람이었나보다. 특정 1명~2명의 사람들을 해마다 갈아가며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데 같이 근무했던 분들 중 피해자가 꽤 많았다. 모두들 그녀에 대해 입을 모아 말하는 키워드는 #수제비누 #갑자기 #돌변 이었는데 이건 나도 겪은 키워드라 매우 공감하는 바였다.
더 심한 이야기로는 몇 년 전 옆자리에 앉았던 J 선생님의 이야기인데 J는 H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했고 H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었다고 한다. (H의 말로는 고급 마카롱 같은 것들을 늘상 나누었다고 한다. J가 그걸 원했는지는 미지수...) 어느 날 어떤 계기로 J가 H와 갈등이 생겼는데 그 뒤로 H는 옆자리의 J의 의자를 매일 발로 걷어찼다고 한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참다못한 J는 H에게 소리쳤고 그제야 H의 행동은 사라졌는데 그게 자그마치 1년간 지속된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H는 해마다 본인이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골라서 괴롭혔던 모양인데 E와의 3년간의 관계성도 이해가 안 갔고 또 나를 만만하게 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고 다음 해가 되어도 나는 E와 여전히 잘 지내고 있었고, H는 여러 무리에 끼어들려고 도전(?)했으나 강제 하차를 당했고 결국 이전에 글을 썼던 "자기야 포비아(Phobia)"의 주인공 A에게 간택(?)되어 그녀의 *플라잉몽키가 되었다. (* 나르시시스트의 조력자이자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종하는 주변 사람들)
E와의 관계성도 꽤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E는 H에게 자신을 빛나고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도구였고 조금 무딘 성향의 E는 그걸 꽤나 늦게서야 눈치챘던 모양이다.
중간중간 H의 못된 행동들은 끊임이 없었고 주기를 타듯이 어느 날은 상냥한 모드로 또 어느 날은 세상 차가운 모드로(우리끼리는 악귀가 씐 거 같다고 농을 던질 정도로...) 기복이 심했다.
나는 안다. 그녀의 다음 타깃도, 또 한 조각의 계절처럼 찾아올 거란 걸....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