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저의 힐러세요!

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by 아름답게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를 기억하는가?




그녀는 꼭 그 고양이의 눈망울로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40대 초반이라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려 보였으며 추구하는 스타일이 젊은 스타일이라 그런지 가끔은 10대들이 입을 거 같은 영(young)해 보이는 옷도 제법 잘 소화해 내었다.



그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 큰 목소리로 웃으며 조금 과장한 손짓과 발걸음을 탑재하고 교무실을 종횡무진했다. 굉장히 빨리 출근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녀는 이미 교무실에 도착하여 출근을 갓 마친 다른 선생님들의 자리를 기웃거리며 안면을 개방한 무해한 미소와 함께 주전부리를 나눠주거나 대화를 시도했다.




올해 새로 온 40대 선생님 J이야기이다.



J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과거 외국계 회사를 본토에서 다니다 한국지사로 들어왔고, 유명 기업에서 총망받는 비서일을 했으며 사랑 하나를 택해 이 지역으로 왔는데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상표권을 등록해 둔 게 있어 먹고사는 건 지장이 없었으나 혼자 일하다 보니 사람이 너무 그리웠단다.

원래는 행정직을 희망했었는데 교원자격증이 있어 덜컥 이곳에서 기간제 제안을 받았고 이를 덥석 물어 교사로서 데뷔를 한 케이스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3월 회식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퇴근길 회식장소로 가던 중 유독 마음에 쓰이던 선생님 Y를 만났다.

Y에게 회식 장소는 어떻게 가냐 물어보고 같이 차를 타고 가겠냐 제안하였다. Y와 실을 나가던 중 굉장히 울적해 보이는 얼굴로 우리 뒤를 걸어오던 J 선생님이 보였다.

그래도 모두 도착 장소가 같으니 예의상 묻기는 해야 해서 혹시 어떻게 이동하시냐 물어봤고 택시를 탄다는 대답에 괜찮으시면 함께 이동하자며 함께 회식장소로 했다.



그리고 함께 회식을 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새로 오신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회식 자리! E로써는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J선생님도 Y선생님도 또 합류한 다른 선생님들과도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오래간만에 즐겁게 회식 자리를 보낸 거 같았다.



오랜 기간 뚜벅이로 지내온 나에게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께서 베풀어주신 사랑 중에 하나는 이동 시에 본인들 차를 많이 태워주셨다는 것이다. 나의 감사에 선배 선생님들은 그 감사를 나중에 내가 차를 사면 차 없는 다른 선생님들께 베풀어라 가르치셨고 그 사랑을 나 또한 최대한 전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마침 집 방향도 같은 뚜벅이 선생님들을 한 분씩 댁에 모셔다 드리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를 공유하고 싶어 동의를 구하고 그곳에 들려 커피까지 야무지게 한잔씩 샀다. 아니 정확히는 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기분에 취해 과한 친절을 베푼 거 아니냐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맞다. 아마도 그 새로운 분들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올해도 작년처럼 좋은 분들을 만나서 학기를 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날 J는 느꼈을 것이다.

내가 본인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거라는 걸.









그 뒤로 그녀는 뜬금없이 내 실에 자주 방문했다.

처음엔 물어볼 게 있어서 그다음에는 몸이 아파서 그 다다음에는 학생들에 대한 고민이 그 다다다음에는 휴지를 빌리러 오거나 혹은 과자를 주러 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저의 힐러세요"

"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힐러시잖아요"



그녀는 나에게 "힐러"라는 별명을 본인 맘대로 붙이며 저 말을 반복했다.

듣기 좋은 별명은 아니었다. 본인에게 힐링공간이 되어주라는 의미인가 싶기도 했고 유독 나에게 저 단어를 반복학습 시키듯 그녀는 올 때마다 나를 힐러라 지칭했다.

묘하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같은 느낌에 나는 슬슬 그녀에게 경계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와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조금 이상했다.

E력이 들끓는 나는 사실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도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인데 왜 그녀가 와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말 미안하게도 졸음이 오고 하품이 날까.....



몇 번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J가 돌아가면 에너지가 급격히 저하되는 걸 느끼고 그녀와의 대화가 즐겁지 않다는 걸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00쌤 놀러 가도 되나요? +_+"




J의 메시지이다. 처음엔 미리 연락을 줘서 바쁘지 않은 시간에 놀러 오고 싶었나 보다 생각했지만 불쑥 오는 날도 있었기에 나중엔 이런 메시지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의 응답에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와서 어느 날은 자기의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답도 없이 중얼대다 뜬금없이 교무실로 복귀한 몇 분뒤 멋쩍은 얼굴로 'PMS였나 보다.' '그날이 시작되었다.'는 등 TMI를 남발하거나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본인의 전공과목과 연결된 일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하다 내 앞에서 충동적으로 장학사에게 전화를 걸더니(그것도 스피커폰으로...) 학생 비치용으로 가져다 둔 팸플릿에 아무렇지 않게 낙서를 하고 그 종이를 든 채 실을 나가기도 했다.




조금 엉뚱하다? 4차원이다? 그땐 그녀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의 사회생활이니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밀려와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갈수록 대화는 그녀의 한풀이이자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목적의 대화이고 정작 나는 그냥 소소하게 일상을 나눌 동료가 아닌 감정쓰레기통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흑화 한데요"



어느 날 주말에 타로카드를 보고 온 그녀는 그 특유의 순진한 눈망울로 타로를 봐주시는 분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했다며 남편에게도 말했더니 말도 안 된다고 했다며 나뿐 아니라 그날 본인을 만난 모든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두의 반응은 "선생님이 흑화를요?" 하며 그녀의 순수한(?) 이미지와 상반되는 일이라 웃어넘겼다.




복선이었을까?




며칠 뒤 그녀는 타로점의 예지(?)대로 흑화 했고 본인이 너무 사랑하는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며 타로점이 기가 막히다고 또 이야기를 하러 왔다.


나는 그녀보다 어리지만 교직생활의 1/3 지점에 왔기에 그녀가 학생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 혹은 집착하는 것들에 대해 그녀가 교사로서 바라보는 시선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몇 번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뭐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뒤에 가서 생각하는 타입인 거 같아 나 또한 더욱 말을 아꼈다.





"선생님~ C선생님이 선생님에 대해 안 좋게 말하시던데요?"




이간질 모드가 돌입되었다.

나는 C선생님과 아무 접점이 없다. 오히려 있다면 상반기 내내 C선생님과 식사를 했던 그녀일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음.. 뭐 나라님도 욕하는 세상에 욕 좀 하면 어때요 저도 누군가가 미우면 욕 하는걸요 제가 뭘 잘못했나 보죠"




나의 애매한 대답에 그녀는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고 아마도 본인의 모드가 먹히지 않아서라는 것쯤은 나도 이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익혔기에 느낌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뒤로 그녀는 다양한 이간질 모드를 내게 적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는지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과 만날 때는 상냥한 미소로 그리고 복도에서 단 둘이 마주치면 사나운 맹견이 공격전 대상에게 포인팅을 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전 같으면 굉장히 당황했을 거고 속상해했을 거지만 이곳에 글을 쓸 소재가 넘치게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바로서 이런 경우는 그냥 개무시가 정답이라 가끔 함께 그 눈빛에 맞서 그윽하게 바라봐줄 때도 있지만 더 이상 그녀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더니 아주 놀랍게도 바로 소거행동이 되기 시작했다.

원래 몰랐던 사이처럼 말이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벗은 가면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 또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평행선처럼 그렇게 우리는 간다.

3개월.. 고작 3개월이면 벗겨지는 가면이 야속하다.




가면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짜는 결국 드러나고, 나는 그 진짜를 기억한 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자기야 포비아(phob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