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들리는 속마음
출근길 불쑥 내 옆으로 걸어온 50대 여자선생님 A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길래 나도 그에 맞는 미소로 화답하며 인사를 했다.
서글서글해 보이던 그녀는 초면부터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키지 않고 내 영역 안으로 훅 들어와 교무실까지 향하는 내내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꼭 거침없이 하이킥에 박혜미 배우님이 떠오르는데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느낌의 대화로는 억양과 톤이 조금 과장되었다. 나와 걸으며 마주치는 다른 선생님과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과장되게 인사를 건네어 도리어 옆에 걸어가는 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각자의 실로 향하며 하루를 잘 보내시라고 인사하는 나에게 마치 나에게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너야라는 느낌의 반짝반짝 눈빛을 보내는 것도.....
삐뽀
마음속에 사이렌이 울렸다.
그녀는 나와 인사를 나눈 그 이후로 어김없이 내게 꽂힌 사람처럼 행동했다. 회의를 가면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과장한 손짓으로 본인 옆에 앉게 하거나, 뜬금없이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본인의 실에 초대하였다. 부서별로 2인 1조 짝을 지어 연수를 들을 때도 심지어 같은 성씨라는 핑계로 규칙을 깨고 담당자에게 우기듯 (협박하여) 나와 짝이 되어 연수를 듣기도 했다.
아직 새 학기라 적응이 되지도 않을 무렵부터 그녀는 내게 자취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조식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나의 바쁨과 상관없이 매일 아침 그녀가 수업이 없는 시간에 초대해 먹을 것을 주기 시작했다.
커피, 빵, 과일, 옥수수, 감자 등 종류는 다양했다. 항상 그 음식들에는 액세서리가 따라왔는데 '남편이 아침에 쪄 준 감자', '서울 사는 딸이 주말에 사다준 원두', '친구가 주고 간 과일' 등 사연 없는 음식들이 없었다.
어느 날은 곧 급식 시간이라 배가 불러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음식들에 대한 사연을 말하며 권할 때면 그야말로 귀한 음식이니 잔말 먹고 먹으라는 무언의 압박 같기도 했다.
처음 몇 번 정도는 베풀어주는 호의라 오지랖이 넓은 아주머니라고 생각해 감사했고 나 또한 얻어먹은 만큼 값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기에 주말에 의무감으로 산 롤케이크를 가지고 별다른 연락 없이 그 실로 향해 문을 두들겼다. 수업이 공강인 걸 확인했기에 안에는 A 선생님만 계실 거라 생각했었다.
문을 연 실 안에는 다른 선생님이 앉아 A 선생님과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말도 없이 온 것이 불편했는지 아님 나의 방문이 대화의 흐름을 깬 건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눈은 웃지 않고 표정은 굳었는데 목소리만 친절하게 나를 맞이하며 옆에 앉으라 하길래 그냥 주말에 선생님이 생각나서 롤케이크를 사 왔다고 두 분 대화하시며 드시라 말하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내 자리에 도착하니 A 선생님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선생님~ 다음부터는 이런 거 사 오지 말고 그냥 오세요~ 00 선생님이랑 같이 잘 먹었습니다. 같이 먹고 가면 좋았을 텐데 바쁘셨나 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며 깜찍한 스티커까지.....
오소소 싸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내가 보고 온 싸늘한 표정을 지은 그분이 보낸 메시지가 맞는가?
그 뒤로 나는 A 선생님과 조금 거리를 두었다.
새 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날 문자 메시지가 왔다.
A선생님이었다.
요지는 지역 교사를 대상으로 공예 프로그램을 하는 게 있는데 내 생각이 나서 커리큘럼을 보낸다고 했다.
싸한 느낌이 들었던 사람이라 정중하게 거리가 꽤 있어 괜찮을 거 같다는 거절의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다. 본인의 차로 같이 가면 되니 1회만 들어보라 권유와 함께.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기에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고 또 기존에 배워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이라 우선은 1회만 받아보기로 말하고 신청을 부탁했다.
나는 금요일에 퇴근하면 바로 본가로 향했기에 토요일 오전 수업이 조금 불편했지만 1회만 받아볼 생각이었기에 멀리까지 태워다 주실 A선생님을 위해 집에 있는 캡슐 커피를 내려 집을 나섰다.
우리 집 앞에 시간 맞춰 주차되어 있는 A 선생님의 차를 타고 커피를 전해주며 공예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그녀는 내가 준 커피 향기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마치 나와 데이트하는 사람처럼 들떠서는 가는 골목골목의 풀들과 꽃들을 찬양하며 그냥 평범한 시골길을 마치 여행지로 바꾸듯 거리에 대한 예찬을 도착하는 내내 해대었다.
공예 수업은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연령층은 40-50대 여교사로 구성되어 있어 30대인 나는 조금 어린 편에 속해 어디 학교인지 어떤 과목을 맡고 있는지 질문이 종종 들어왔는데 그때마다 A 선생님은 마치 내 대변인인 것 마냥 내 대답보다 빠르게 대답을 했고 가끔은 나를 너무 부풀리거나 거짓말을 섞어 말하기도 했으나 내가 정정하기도 전에 대화는 마무리되어버려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조금은 기묘한 공예 수업을 마치고
그녀는 다시 나를 그녀의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준다며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예수업이 끝나면 본가에 가야 한다고 말을 했기 때문에 정중하게 다시 말하였다.
오늘은 어려울 거 같으니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말이다.
A 선생님의 얼굴 표정은 굉장히 다양했는데
순간 내 말에 스치는 그녀의 표정에 인상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조금은 신경질적인 말투로 다시 경로를 수정하여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
그녀는 30대인 나에게 여전히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철부지 프레임을 씌우고 집에 자주 가지 않아야 부모님이 좋아하신다는 헛소리를 시전 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나는 그날 이후로 그녀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확신했고 그녀 입에서 나오는 "자기야~"라는 단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주말이 지나고 그녀는 본인이 나를 데려다주며 표정관리를 못한 게 생각이 났는지 월요일 아침부터 나를 본인의 실로 불러 세상 다정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며 먹을 것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슬슬 나의 신상을 캐묻기 시작했는데 정말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물어볼 정도로 디테일했으나 나 또한 숨기기에는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라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제공했으나 그녀는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내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혹은 내 부모님이 내 돈을 관리해 주는지 보험은 몇 개나 들었는지 등의 이상한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고 나의 대답은 그녀가 행복해지는 대답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로 더 이상 묻지 않았기에...ㅎ)
그렇게 나는 주마다 그녀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불구하고 10회기의 공예수업 중 n번의 결혼식 참석과 n번의 가족행사를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고 내가 그녀를 피한다는 게 느껴질수록 학교에서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가 느껴졌다.
코로나가 한창이 무렵 나는 관련 업무 담당자라 꽤나 바빴었고 그녀는 어느 날 교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창문을 내리더니 버리듯 봉투하나를 "이거 공예 선생님이 선생님 가져다 주라 하더라고요?" 하면서 던져주었다. 누가봐도 하고 싶지 않게 생긴 괴기한 은공예 브로치였다.
그 뒤로 10회기는 끝났고 나는 그녀에게 거리를 둔 만큼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여러 고비가 있었고 N년차 근 무하는 이 공간에서 그녀는 정말 나르답게 다사다난하게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교묘하게 어려운 상황을 잘 빠져나가기고 했다.
그녀를 보면 어떤 교수님이 교양시간에 해준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도 그녀는 해마다 본인의 키링(?)을 찾아서 새 학기 때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먹잇감이 발견되면 "자기야~~~" 하고 부른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알고 과거의 나처럼 친절하고 상냥한 신규 선생님이 온다면 조심히 다가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