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관찰기
우리는 그걸 월. 루(월급루팡)이라고 한다.
백 씨는 겁쟁이다.
늦은 나이에 괜찮은 직함을 얻었다.
얼렁뚱땅 들어온 자리였다.
문제는 그 직함에 비례하는 능력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서 오랫동안 육아와 살림을 하다가 마흔이 넘어 출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직함은 그럴듯했기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는 그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경력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붙어 있었다.
촌스러움이라고 해야 할까.
백 씨는 그 시선을 싫어했다.
아니, 사실은 두려워했다.
직함에는 결국 책임이 따라온다.
그 책임이 백 씨에게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그녀는 자녀뻘 되는 동료들에게 일을 조금씩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탁이었다.
"이건 네가 더 잘할 것 같아."
"한 번만 도와줄래?"
딸 같은 그 아이들은 내 일이 아닌데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했다.
그때 백 씨는 깨달았다.
업무 분장 시즌이 되면 백 씨는 늘 침착했다.
조금 아는 척을 한다.
조금 똑똑한 척을 한다.
몇 마디 전문 용어를 섞어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녀가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의 일은 여러 사람의 일이 된다.
그렇게
백 씨는 사람을 고르는 데 능숙하다.
특히 직장 생활을 오래 해보지 않은 사람들.
그들에게 선량한 엄마 같은 미소로 다가간다.
고충을 들어주고 위로를 해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곧 다른 자리에서 험담이 된다.
그리고 정작 도움이 필요해지면 이렇게 말한다.
백 씨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혜택들이다.
회식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남는 비품이 있으면 담당자를 찾아간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들고 가는 종이백도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누군가 더 많이 챙긴 것 같으면 곧 험담이 시작된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반복되면 사람의 품격이 드러난다.
가장 유명한 사건도 있었다.
사내 행사 후 우유가 남았을 때였다.
백 씨는 담당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집에 개가 있는데 우유를 좋아해요."
그리고 남은 우유를 거의 모두 가져갔다.
요즘은 개도 사료를 먹는다.
게다가 그녀의 개는 이미 다 큰 성견이었다.
시간이 흘러 백 씨도 퇴직을 앞두고 있다.
일은 하기 싫다. 하지만 개인연금을 채우려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매년 같은 싸움을 반복한다.
백 씨의 업무는 약간의 전문성이 있다.
그래서 질문이 들어오면 이 말로 끝낸다.
"개인정보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편리한 문장이다.
많은 질문이 거기서 멈춘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나의 능력은 생긴다.
백 씨는 특히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 다가간다.
아부를 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보고처럼 전달한다.
언젠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더 열심히.
얼마 전 작은 사건이 있었다.
아주 작은 사업 하나가 백 씨에게 배정됐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큰 공포였던 것 같다.
그녀는 익숙한 방법을 썼다.
누군가에게 일을 넘기려 하는 방법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 사람이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가 맡게 됐다.
그날 회의에서 백 씨의 얼굴은 유난히 붉어 보였다.
마스크 뒤에서 피해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 일이 그녀의 월급 루팡 인생을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다른 담당자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그 사람의 이력이 된다고.
백 씨의 얼굴에는 긴 시간 동안 쌓인 작은 계산들이 마치 심술보처럼 붙어 있다.
그래서 나는 늘 다짐한다.
오늘도 백 씨는 퇴직하는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일 어떤 일이 떨어질지 몰라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면서.
그게 그녀가 선택한 직장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