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쓰는 사람
직장생활을 10년쯤 하며 나는 어느새 주변인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의 싱그러움과 풋풋함을 지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모든 걸 해결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조직이 굴러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해내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한 포지션.
해마다 새로운 조직이 꾸려지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가운데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특유의 반짝임이 있다.
긴장과 기합이 공존하고, 나름대로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그 눈.
그 눈을 보면 내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괜히 마음이 쓰인다.
이 조직에 적응하는 동안만이라도 마음이 조금은 편했으면 하는 마음.
어쩌면 오지랖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쌓아온 좋은 인연들도 많기에, 해마다 남에게 관심 갖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반짝이는 눈을 보면 쉽게 돌아선 적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좋을 수는 없다.
좋지 못한 인연은 결국 마음 한구석에 콕 박혀 오래 남는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괜히 궁금해 잠이 오지 않는 밤도 있다.
그땐 왜 그랬을까.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월급이 따박따박 꽂히는 통장의 기쁨도 있지만, 사회와 조직에는 여전히 부조리함이 있고 때로는 뒷맛이 씁쓸하다는 걸 상처 주지 않으면서 알려주고 싶었다.
일도 조금 더 융통성 있게 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답답해하지 않도록, 내 기준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왔다.
힘은 없지만 대신 커버도 해보았다.
부자는 아니지만 나를 잘 따르던 후배들의 사정도 고려해 가며 베풀었다.
점심시간엔 커피를 나누고, 때로는 밥을 사주며 그들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선배인 나’라는 정체성에 투자한 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임기가 끝에 다다르면 좋은 인연과 좋지 않은 인연이 나뉘는 시기가 찾아온다.
좋지 않았던 인연들은 마치 클론처럼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스쳐간 인연들을 곱씹어 보면 어떤 이는 나보다 훨씬 많은 나이의 사람이기도 했고,
요즘 세대를 대표하는 Z세대의 네거티브함만 가득 담은 사람도 있었다.
조직에서 상처받고 너덜 해진 마음의 분노를 이유 없이 나를 찾아와 이곳에서 삐딱하게 표출하기도 하거나
심하면 자신의 자아를 잃고 나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거나, 반대로 자기 수하로 두고 통제하려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해주지 않고 버티면 그들은 하나 같이 그 간에 쌓아온 모든 걸 한순간에 삭제하듯 굳은 얼굴과 움츠린 몸짓을 하며 회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떠난다.
상처는 이제 두꺼운 딱지가 앉아 흉이 졌는지, 예전처럼 아프진 않다.
그저 뒷맛이 씁쓸했던 한 해로 기억될 뿐이다.
성장통은 아프다.
조금은 아픈 성장통을 지나 다시 봄이 찾아왔다.
새 학기를 준비하며 달력 옆에 세워야 할 계획서 목록을 포스트잇에 빼곡히 적어두었다.
올해는 아무에게나 친절하지 않아 보겠다고, 괜히 다짐해 본다.
그러면서도 혹시 나의 작은 친절이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 더 멈춰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한 번 누군가의 첫 봄을 조심스레 응원하게 될 것이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성장통이라면 기꺼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