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글 번역]
Tristan Harris 의 How Technology Hijacks People’s Minds — from a Magician and Google’s Design Ethicist을 번역한 글입니다.
포스팅 읽기 완료 추정시간: 12분
기술(Technology)은 어떻게 심리적 나약함을 교묘하게 이용하는가?
어린 시절 나는 마술을 즐겨하였다. 이때 사람들의 인지적 한계(맹점, 약점)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래야 나의 마술이 상대방에게 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또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사용자들의 관심을 얻고자 할 때 취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당신의 인지능력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구체적인 방법 10가지를 소개하겠다.
서양 문화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에 근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의 권리를 지키려고 하지마는 정작 제한적인 메뉴에 의해 우리들이 조종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마술의 법칙 역시 이러하다. 관중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을 선택하여도 마술사가 원하는 데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설계되어진 선택지를 제공받는 것이다.
주어진 메뉴에 대하여 우리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선택지에 없는 건 무엇인가?"
-"왜 이 선택 안 들만 제공된 것인가?"
-"선택지를 만든 사람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선택지가 나의 본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가? 실제로는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예. 너무 많은 치약들이 놓인 마트 선반)
화요일 어느 저녁, 당신이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눌 수 있는 장소로 옮기고 싶다. 그래서 Yelp 앱을 실행시켰고 근처 추천 장소로 술집 목록을 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친구들은 각자 찾은 술집 및 칵테일의 사진을 서로 비교하느라 바쁘다. 이 상황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는 장소를 찾고자 했던 처음에 갖았던 의도와 얼마나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술집이 물론 이야기를 하는 장소로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초의 의도 (어디서 이야기를 계속하면 좋을까?)가 Yelp 앱이 던져주는 추천 콘텐츠들 (선택지)에 의해 다른 의도 (가장 근사한 칵테일을 파는 술집은 어디인가?)로 바뀐 것이다. 즉 선택지 그 자체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Yelp는 모든 선택들이 담긴 메뉴를 제공하는 듯 현혹시켰다. Yelp에 정신이 팔린 그 시각, 바로 저 건너편 공원에서 라이브 밴드 뮤직의 연주가 있었고 크레페와 커피를 제공하는 팝업 갤러리가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다. 지나친 어떤 것들도 Yelp가 제시한 선택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기술이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정보, 이벤트, 장소, 친구, 데이트, 직업 등)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스마트폰이 최적의 선택이 가능하게 만드는 유용한 선택지라고 점점 더 믿게 된다. 과연 그럴까?
최고의 선택지는 많은 선택이 담긴 선택지가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선택지만 맹신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결국에는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 저녁 한가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은 최근에 문자를 주고받은 사람들이 담긴 선택지에서 해결된다.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라는 물음은 뉴스피드 스토리라는 선택지에서 해결된다.
-"나와 데이트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호기심은 데이팅 앱 틴더(Tinder)에 가입한 사람들이 선택지가 된다. (야외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대신)
-"메일에 답장해야 해"는 답장 작성을 위해 타이핑하는 키보드가 선택지가 된다.(상대방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택하는 대신)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간에 쌓인 알림 목록을 확인하는 행위는 '어제 이후로 놓쳤던 모든 것들'이라는 디지털이 제공하는 선택지 안에 '아침 기상'이라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경험을 가둔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Joe Edelman’s Empowering Design talk)
기술(technology)은 선택지를 형성하여 선택들에 대한 인지하는 방식을 통제하고 새로운 선택들로 대체시킨다. 하지만 주어진 선택들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것들이 우리의 본질적인 니즈에 실제로 부합하지 않는걸 깨닫게 될 것이다.
상상해보라. 당신이 앱이라면,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슬롯머신과 같은 앱이 되어야 한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150번 폰을 확인한다. 왜 이러는 것일까? 그들은 150번 확인하고자 의식적 선택을 한 것인가?
그 이유는 슬롯머신이 인간 심리를 이용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에서 찾을 수 있다:
슬롯머신이 간헐적이고도 가변적 보상 에 취약한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중독성이 극대화된 앱을 디자인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사용자의 행동(레버를 당기는 행동)과 예측 불가능한 보상 간의 관계를 연결시키면 된다. 레버를 당기기만 하면 매력적인 보상을 받거나 받지 않게 된다. 보상에 대한 예측률이 다양할수록 중독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정말 이 방법이 통할까? 그렇다. 야구, 영화 및 테마파크 산업에서 나오는 이익을 다 합쳐도 슬롯머신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된 중독(Addiction by Design) 저자인 Natasha Dow Shull NYU 교수에 따르면 다른 종류의 도박보다 슬롯머신을 할 때 3-4배 더 빠른 속도로 '(문제가 있을 정도로) 게임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지금 우리의 주머니 속에 이러한 슬롯머신이 존재한다:
-어떤 알림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폰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슬롯머신을 돌린다.
-새로운 이메일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래로 당겨서 새로 고침하는 것은 슬롯머신을 돌리는 것이다.
-어떤 새로운 사진이 업로드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하는 것은 슬롯머신을 돌리는 것이다.
-나와 커플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고자 데이팅 앱인 Tinder에 보이는 사진을 왼쪽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하는 것도 슬롯머신을 돌리는 것이다.
-알림 개수가 적힌 빨간 원형 배지를 탭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을 위한 슬롯머신을 돌리는 행위이다.
앱과 웹사이트는 사업적 이익을 위해 예측하기 어려운 슬롯머신을 여기저기에 디자인한다.
하지만 때때로 슬롯머신 효과가 우연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즉 어느 기업도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이 슬롯머신처럼 작동하게 만들지 않았음에도 당신은 계속해서 이메일을 새로 고침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슬롯머신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구글과 애플과 같은 주요 IT 기업들은 이 같은 상황이 오늘날 만연하다는 데에 책임을 갖아야 한다. 더 나은 디자인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보상을 예측하기 쉽고 중독성을 줄여야 한다. 예를 들어, '슬롯머신'처럼 작동하는 앱에서 알림을 확인하는 시간을 사용자가 예측하고 지정할 수 있도록 사용자에게 선택 권한을 주는 것이다.
앱과 웹사이트가 당신의 마음을 흐리는 또 다른 방법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칠 것 같다는 가능성 1% " 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취약함을 이용하는 것이다.
매우 중요한 정보가 담긴 플랫폼이라고 확신한 당신은 이를 종료시키거나 구독을 그만두거나 계정을 삭제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랬다가는 매우 중요한 것들을 놓칠 것이다:
-최근에 딱히 유용한 정보를 보지 못했지만 뉴스레터 구독은 지속시킨다. ("나중에라도 중요한 정보를 놓치면 어쩌지?")
-연락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들과 "친구"상태를 유지한다. ("그들에게서 중요한 것을 놓치면 어쩌지?")
-실제로 만날 생각이 없지만 데이팅 앱에서 계속 스와이프를 하며 사람들을 물색한다.("날 마음에 들어하는 근사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자나")
-계속해서 SNS를 이용한다. ("중요한 이야기를 놓치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될 수도 있어")
그러나 이 현상을 좀 더 자세히 들어다 보면 이러한 두려움은 끝이 없다고 깨닫게 될 것이다: 오프라인 시점부터 많은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에 접속하지 않아 매우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수 있다. (예.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 놀러 온 친한 친구)
-틴더에서 스와이프 하지 않아 700번째의 커플 매칭을 놓칠 수 있다. (예.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꿈꾼 이상형)
-하루 종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위급한 전화를 놓칠 수 있다.
무엇인가를 놓친다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즉시 이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Camp Grounde를 간다고 해서 우리들이 걱정하는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보지 않은 건 놓칠 수 없다.
"만약 중요한 것을 놓쳤으면?"이라는 생각은 당신이 계속 접속의 상태에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지 접속 종료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주요 IT 기업들이 위 상황을 고려하여 우리를 돕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값지게 보내는 것(time well spent)"과 같이 우리 본연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인정에 약하다. 소속되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가장 강력한 인간 욕구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적 인정은 IT 기업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
내 친구 마크가 나를 태그 하는 데 있어 그의 의식적인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어떻게 그의 행동을 조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또는 스냅챗은 사진 속에 있는 모든 얼굴들을 자동 인식하고 태그 하기를 추천함으로써 사용자들이 태그 되는 빈도수를 조작할 수 있다.(얼굴이 인식된 박스와 '사진 속 Tristan을 태그 할까요?'라는 질문을 보여주며 확인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마크가 나를 태그 할 때 사실 그는 페이스북 제안에 응답한 것이지 그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디자인된 선택들을 통해 되도록 많은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사회적 인정을 더 자주 경험하도록 그 빈도수를 배가시키는 것이다.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꿀 때에도 이 같은 상황은 일어난다. — 프로필 사진을 변경할 때 나타나는 우리들의 사회적 인정에 대한 민감성을 페이스북은 알고 있다: "친구들이 나의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어떻게 생각할까?"
콘텐츠가 상단에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친구들이 좋아해주고 댓글을 남겨주므로 페이스북은 새롭게 교체된 프로필 사진을 뉴스피드 상단에 위치시킨다. 이로 인해 많은 친구들이 댓글을 남기거나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는데 이때마다 우리는 페이스북에 다시 머물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소셜 승인에 반응한다. 그런데 십대의 경우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민감한 성향을 이용하는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주목해야 한다.
당신에게 빚졌느니 — 꼭 보답하겠다.
"고마워"라고 말하면—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이메일을 받았는데 — 답장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나를 팔로우 한 사람을 — 팔로우 안 한다면 무례한 것이다. (특히 십대는 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의 제스처에 반응해야 하는 필요성에 민감하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인정과 마찬가지로 IT기업들은 우리가 이를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 조절할 수 있다.
일부는 우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메일, 문자, 메세징 앱들은 사회적 호혜가 항상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민감함을 기업들은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링크드인(LinkedIn)이 가장 극명하게 이를 이용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호혜를 베푸는 데 의무를 갖도록 만든다. 왜냐면 사회적 호혜가 일어날 때마다 (지인 연결 요청이 승인되거나 메시지에 응답하거나 지인의 능력을 보증하며 추천할 때) 사용자들은 링크드인(linkedin.com)으로 방문해야 되는데 이때마다 그들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페이스북과 같이 링크드인 역시 우리가 가진 인지의 불균형을 이용한다. 누군가의 지인 연결 요청에 대해 수락하는 당신은 상대방이 당신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은 링크드인이 추천 한 목록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응답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링크드인은 무의식적 욕구(지인 추가하기)를 새로운 사회적 의무로 바꾸어 수많은 사람들이 보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링크드인에 접속하여 소비되는 사용자들의 시간을 통해 그들은 수익을 창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서로에게 호혜를 베풀어야 하는 정신없는 상황에 시달린다면 어떨까? -이 모든 것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이게 바로 SNS의 본모습이다.
만약 IT 기업들이 사회적 호혜 현상을 최소화시키는데 책임을 느낀다면 어떨까? 혹은 사용자를 대변하는 기관—산업 컨소시엄 혹은 테크놀로지 관련 FDA—이 있다면 IT 기업들이 우리들의 성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계속해서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설사 그들이 더 이상 원치 않을 때에도 말이다.
어떻게? 쉽다. 어느 시점에 종료될 수 있는 경험을 가져다가 끊기지 않도록 지속시키면 되는 것이다.
Brian Wansin 교수는 줄지 않는 그릇을 주어 계속해서 수프를 먹도록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라는 연구를 발표하였다. 계속해서 채워져 양이 줄지 않는 그릇을 가진 자들은 보통 그릇으로 먹은 자들보다 73%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하였지만 그들은 140 칼로리만 먹었다고 과소평가하였다.
IT 기업은 똑같은 원리를 적용한다. 뉴스피드는 자동적으로 계속 늘어나 당신이 스크롤을 멈출 수 없도록 고안되었다. 즉 페이지 보기를 중단하거나, 이를 재고하거나 더 나아가 떠날 이유를 고의적으로 없앤 것이다.
이런 이유로 넷플릭스, 유튜브 및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사이트들은 당신이 계속 볼지 안 볼지 스스로 선택하기도 전에 지정된 몇 초가 지나면 다음 동영상을 자동 재생시켜 흐름을 이어지게 만든다.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을 때에도 물론이다) 웹사이트들은 이 같은 자동재생 방법을 통해 높은 트래픽을 보유할 수 있다.
IT기업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용자들이 시청하고 싶어 하는 동영상을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박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용자들의 "소비한 시간"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것이 기업 간 경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만약 기업들이 시간의 양이 아닌 질에 집중하고 당신의 "시간이 알차게 소비" 될 수 있도록 당신이 의식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 어떨까?
기업은 메시지들이 갑작스럽게 방해하는 형태를 취한다면 사용자로부터 응답을 이끌어 내는데 좀 더 효과적임을 알고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스냅챗과 같은 메세징 앱은 사용자들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시간을 서로 간에 존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보다는 채팅 박스를 화면에 바로 띄움으로써 상대방을 순간적으로 방해하고자 한다.
방해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긴급함과 사회적 호혜성를 높이기 위한 그들의 의도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당신이 메시지를 '확인하면' 메시지를 보낸 상대방에게 당신이 '읽었음'을 자동적으로 알게 한다. 이 때문에 메시지를 읽었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내가 메시지를 확인한 걸 상대방이 아니까, 답장을 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감이 느껴져..")
이와는 다르게, 애플은 사용자를 고려하여 그들이 "메시지 확인" 기능을 토글로 켜거나 끌 수 있도록 하였다.
문제는, 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이러한 방해가 최고조를 이루게 되면서 국제적 관심 척도를 망치는 동시에 날마다 불필요한 방해 요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공유 디자인 기준에 맞추어 우리들이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Time Well Spent 이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앱이 당신의 약점을 이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앱을 이용하는 당신의 원래 목적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앱에 당신을 최대한 오래 접속시키고자 하는 기업들의 목적을 충족시키려 한다.
디지털 세상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마트를 가는 가장 주된 이유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는 약품 재구매 둘째는 우유 구입이다. 그런데 마트는 사람들이 다른 상품들도 구입하길 원하기 때문에 약품과 우유를 마트의 맨 뒤쪽에 위치시킨다. 다시 말하자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과 기업이 원하는 것을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마트가 소비자들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돕기 위해 계획되어졌다면,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앞줄에 놓아야 한다.
IT기업 웹사이트 디자인도 이와 동일하다. 오늘 저녁에 있을 페이스북 이벤트를 찾고자 할 때 (당신의 이유) 페이스북 앱은 당신이 우선 뉴스피드를 보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유) 당신의 접근을 허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의도적이다. 페이스북은 당신이 가진 목적을 신경 쓰기보다는 그들의 목적으로 탈바꿈시킨다. 즉 당신이 페이스북에 최대한 오랫동안 접속하여 시간을 소비하게 만든다.
그 대신, 아래와 같이 된다면..
- 페이스북에서 지인들을 검색하거나, 지인을 추가하거나 혹은 어떤 사람의 연락처를 찾고자 한다면 뉴스피드 페이지로 인도하기보다는 별도의 주소록을 제공할 수 있다.
- 페이스북 이벤트를 주최하거나 찾아볼 때에도 위의 방법을 적용한다.
- 페이스북을 거치지 않고 타 앱, 웹사이트에서 계정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별도의 페이스북 접속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
- 새 메시지들을 모두 읽지 않고도 특정한 메시지를 찾을 수 있고 답장할 수 있는 별도의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는, 기업이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앱이 언제나 사용자가 원하는 것에 바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디자인 표준을 담고 있는 디지털 '권리장전'이 있다면 사용자들의 목적이 더 이상 침해받지 않도록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 말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제품을 사용하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다면 구독하지 않아도 된다"
"앱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면 지워버려도 된다"
기업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마주하게 될 선택을 쉽게 만들고자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마술사에게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마술사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도록 관중을 인도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 닷컴은 디지털 구독을 쉽게 취소할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였다. 구독 취소의 경우에는 간단히 버튼을 눌러 취소하면 되지마는, 만약 계정을 해지하고 싶을 경우에는 특정한 시간에만 운영하는 전화 서비스 정보가 담긴 이메일을 보내어 전화로 계정 해지를 하기를 요구한다. 즉, 당신의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보다는 선택을 지연시킬 수 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선택이 충족되는데 얼마나 어려운지에 따라 분류된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측정하는 공식 기관이 세워질 것이고, 얼마나 쉬운 방법으로 만들어질지에 대한 기준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앱은 클릭의 결과를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한다.
보통 우리는 클릭을 하게 됨으로써 나타나게 될 실질적 비용에 대해 직관적으로 가늠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자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을 이용하려 든다. 가벼운 요청으로 시작하여( "막 리트윗 된 트윗을 클릭해 보세요") 단계적으로 이를 부탁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좀 더 머무는 건 어떤가요?") 사실 거의 모든 웹사이트들이 이러한 형식이다.
만약 수많은 선택이 이루어지는 웹 브라우저 및 스마트폰에서 사용자들에게 참된 경고를 주거나 클릭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 실제 데이터에 근거하여 어떤 이익이나 비용이 들 것인가? )
이런 이유로, 내 포스팅 상단에 "포스팅 읽기 완료 추정시간"을 표시하였다.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드는 "정확한 비용"을 노출시킴으로써 구독자를 배려하고자 하였다. 지금 이 순간을 값지게 보내는 것 에서는 비용과 이익으로 인해 사용자들이 마주할 선택의 상황들이 조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사용자들은 불필요한 추가 작업 필요 없이 초기값에서 최선의 선택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는 기술들을 알고 난 지금,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화가 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 언급된 열 가지는 극히 부분이라는 것이다. 현재, 서점이나 세미나 및 트레이닝 워크숍에서는 이 같은 방법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궁극적인 자유는 마음의 자유이다. 그리고 살면서 겪는 다양한 활동들에 있어서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충동이 아닌 진정한 가치가 투영된 대인 관계와 사려 깊은 생각이 담긴 스마트폰, 알림 화면 그리고 웹브라우저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우리들의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 및 다른 디지털 권리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기준의 잣대를 대어 우리의 시간을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