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y sister Han Eugene
어릴 적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종종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언니의 영향을 받아 내가 모르는 신문물(주로 음악이나 아티스트)을 알려주던 친구, 소풍날이면 언니의 아이템으로 멋지게 차려입고 나오던 친구, 고민이 있을 땐 언니랑 이야기한다던 친구들까지. ‘나도 언니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알았다. 내 옆엔 그녀가 있다는 것을.
감히 이야기한다. “언니보단 동생이지”라고!
늘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나와는 다르게 묵직하고 곧은 성정의 소유자인 그녀는 내게 동생이자 친구이자 언니 같은 존재였다. 부모님께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삶의 소울메이트인 동생을 낳아주신 것이 아닐까 싶다.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지구 반대편에서 수화기 너머 전해져 오는 숨소리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온도를 알아챈다.
육아에 일에 촘촘하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말이면 액정이 뜨거워질 만큼, 어느 한쪽은 새벽이 되어버리는 그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빈 곳을 채워나간다.
언젠가 동생이 대학생이 되고 방학 때 처음 한 아르바이트비로 당시 유명했던 피자집에 가서 피자를 사주었다.. 부모님 품에서 나와 둘이서 지내고 있던 그 시절 우리에게 피자는 꽤 스페셜 한 메뉴였다. 동생은 언니인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데이트 기분을 내고픈 마음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나는 그때 그게 잘 먹히지가 않았다. 엄마도 아닌데 이상하게 어린 동생이 사기엔 많이 비싸게 느껴졌던 그 피자를 도무지 마음껏 즐기며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동생의 눈가에 서서히 차오르며 반짝하던 눈물과 연이어 터져 나온 버럭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니 맛있게 좀 먹어!
나 언니랑 이거 정말 먹고 싶었단 말이야!
이 순간에 좀 집중하면 안 돼?!
속상해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동생의 모습에 민망하고 부끄러워 나도 같이 삐쭉 성화를 냈었지만,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좋은 곳을 갈 때면 동생의 그 말이 떠오르곤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여유를 잃은 채 살아가는 성향의 나와는 다르게 어릴 적부터 현재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동생을 보며, 일상의 반짝임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동생의 모습이 참 좋았다.
천천히 더디지만 뚝심 있게 해내고 마는, 미국 땅에 혼자 남아 외로움과 싸워가며 공부를 마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동생이 대견했다. 그렇게 힘들게 오랫동안 한 공부를 써먹지 않고 엄마로만 살아가고 있는 동생을 보며 늘 잔소리를 해댔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본인의 생각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본인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몇 년 전 제부가 한국으로 파견 온다는 소식이 참으로 반가웠었다. 어릴 적처럼 엄마와 셋이 쪼르르 거실에 누워, 살을 비비며 빈둥빈둥 이 얘기 저 얘기할 생각에 동생네의 입국 날만을 기다리던 그 시간이 참 행복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허락된 만큼 '모든 것이 축복이었던 함께인 그 시간'을 누렸다. 비록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아팠던, 엄마를 보내던 마지막 순간을 오롯이 감당한 동생에게 나는 부채감이 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랜 시간 의료계통 공부를 한 동생은 그 순간 본인이 엄마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무거운 죄책감을 가졌었다. 슬픔은 죄책감과 뒤엉켜버렸고 연 이어 다가온 출산으로 인해 정신없이 지나가버려 그 아픈 맘을 제대로 돌보지도 드러내지도 못했었다.
차디찬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엄마를 눕히고, 임신한 몸으로 심폐소생술을 하며, 두려움 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을 했을 동생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져 온다. 늦어지는 구급차를 기다리며 꺼져가는 호흡과 엄마의 눈가에서 떨어지던 한 줄기 눈물을, 언니인 내가 마주했다면 과연 너처럼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엄마를 보내고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때, 볼록하게 커진 배 위에 한 손을 얹은 채 동생은 말했다
언니, 나 엄마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 그 순간 내가 심폐소생술을 잘못한 건 아닐까 수도 없이 돌려봤어.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마지막 순간을 맞닥뜨린 게 우리 언니나 민우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 생각을 하면 좀 나아.
울컥하는 맘에 목이 메어와 제대로 된 대답도 못한 채 흘려보냈지만, 이후로도 그 말은 계속 마음에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동생이 할 말은 아니었다.
동생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다.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다고, 엄마의 긴 여행길을 너와 제부가 함께 배웅해 줘서 참 다행이었노라고. 어쩌면 혼자 감당해 냈을 깊은 아픔들을 다 헤아려주지 못했음이 미안하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사랑한다고.
그리고 오늘 하루는 이렇게 불러보련다.
“한유 언니!” 멋있으면 다 언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