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을 수 있으면 접어봐"
생애 첫 텐트
“형님들, 네모네모 마트에서 세모 세모 맥주를 한 박스 사면 아 글쎄, 원터치 텐트를 사은품으로 준대요!”
사업하는 동생 지훈이의 숨넘어가는 단톡 방 문자가 당도했다. 나이 오십에 나도 이제 버젓한 내 텐트 하나쯤 갖고 싶다는 욕망을 어떻게 눈치챈 것일까. 지난 주말에도 아웃도어 매장 텐트 코너에서 수십만 원 하는 텐트를 그저 만지작만지작 하다 돌아온 나였다.
“뭣이! 휙 던지기만 하면 2초 만에 공중제비를 돌며 스스로 텐트로 변신한 뒤 나비처럼 내려앉는다는 그 신비로운 원 터치 텐트를 맥주 사은품으로?”
“네, 저는 텐트 욕심에 맥주를 다섯 박스나 샀다니까요! 한정 판매이니 어서 달려가세요.”
나는 뭣에 홀린 듯 마트로 달려갔다. 마트에서 사은행사를 한다고 욕심 내 달려가 보기는 내 생애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그래도, 전원생활을 한다면 텐트 하나쯤 있어야 대내외적으로 '예의'지 싶었다.
네모네모 마트는 가끔 들러 맥주를 사던 곳이니 주류 판매코너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현장에 당도하고 보니 과연 너른 마트 한복판에 쑥색 원터치 텐트가 보무도 당당히 에어컨 바람에 나풀거리는 중이었다. 텐트 안에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원터치들이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어서 빨리 데려가 달라고 교태를 부리며 누워있었다.
나는 그중 마음에 든 쑥색 원터치 텐트를 냉큼 집어 들었다. 맥주 한 상자는 아무렇게나 둘러메고 계산대로 달려가 기쁘게 외쳤다.
“겨우 이걸 사면 와우 저걸 사은품으로 준다는 거죠!”
“사은품이긴 한데, 공짜는 아니고 54,000원짜리 텐트를 19,900원에 드리는 행사인데요.”
이런, 텐트를 그냥 주는 게 아니라 할인해 준다는 거였다. 조금 김이 샜지만 이미 지지직 카드 긁히는 소리까지 난 마당에 물리기도 민망한 노릇이었다. 어차피 갖고 싶던 텐트이니 이 참에 싸게 샀다 치자, 생각하고 고이 모셔 집으로 가져왔다. 이제 나도 어엿한 집주인이 되는구나 싶어 뿌듯한 기분이 잠깐 들기도 했다.
굴욕 텐트
잠시를 못 참고 원터치 텐트를 벗겨 허공으로 휙- 집어던졌다. 과연 듣던 대로 텐트는 약 2초 동안 허공에 머물며 트랜스포머처럼 촤라락- 날개를 펴더니 3인용 텐트로 변신해 나풀 착지했다.
“오, 경이로운지고.”
기이하게도 막 처음 펼친 새 텐트인데도 텐트 특유의 오래 묵은 냄새가 났다. 내부는 적당히 아늑했고, 사방으로 방충망이 뚫려있어 소풍용 소품으로 딱 좋아 보였다. 얼마 전 다차에 놀러 온 아이들을 위해 일반 텐트를 빌려다 혼자 낑낑대며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애나 어른이나 야외 활동에서 텐트만큼 좋은 추억거리도 드물다. 이제 텐트 치느라 애쓸 필요 없이 집어던지기만 하면 된다니 다시 한번 뿌듯한 기분이 잠시 들었다.
‘자, 이제 슬슬 텐트를 접어 볼까!’
손바닥만 한 텐트 하나 접는 데 무슨 역경이 있겠나 싶어 이리 주물 저리 주물 해보았다.
‘어라? 왜 안 접히지?’
나는 성격이 꼼꼼하지 못해 새 물건을 사도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는다. 대충 눈대중으로, 그럴 것이라는 짐작으로, 감으로, 손가는 대로 뚝딱 조립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안 되면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원터치 텐트가 오랜만에 제대로 신경을 긁어댔다. 둥그런 가방에 들어갈 정도의 알맞은 크기로 접혀야 하는데 무슨 짓을 해도 텐트는 절대 작아지지 않았다. 30분 동안의 헛손질 끝에 ‘텐트를 부숴서 넣을까’하는 막다른 생각의 골목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항복하고 텐트 안쪽 벽에 붙여놓은 ‘사용설명서’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 봐도 사용설명서가 지시하는 바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세종 창제 한글에 친절한 구분동작 그림까지 첨부해놓았는데도 당최 모르겠다. 불친절하기 짝도 없는 사용설명서는 마치 ‘비행기 만드는 쉬운 방법 - 비행기를 만드세요. 끝’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저 설명서를 읽고 원터치 텐트를 단숨에 접은 인류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텐트 접기 자습
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텐트를 실컷 노려보았다. 그리고 분명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과연 마음이 통해야 접히는 인공지능 텐트임이 분명하리라.
조금 전의 우악스러움을 감추고 태세를 전환해 천천히 원터치 텐트의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안에 단단한 뼈도 간질이듯 어루만져보았다. 낭창낭창한 유연함이 어디로 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몸 가는 대로 두어도 보았다. 텐트는 접혔다 싶으면 튕겨 나가고, 이렇게 휘는가 싶으면 저렇게 휘어 나가며 밀당을 계속했다. 그러기를 약 30분이 흘렀다.
“어엇! 돼, 됐다!”
뜻하지 않은 순간 텐트가 마침맞은 둥근 크기로 접히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어쩌다 텐트를 접게 되었는지는 절대 모를 일이었다. 이대로 가방 안에 넣어두면 다음에 꺼냈을 때 다시 헤맬 게 분명했다.
‘기왕 배우는 김에 확실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텐트 쥔 손에 힘을 뺐다. 텐트는 기다렸다는 듯 역발산의 기개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다시 펴졌다. 그걸 다시 접는데 30분이 흘러갔다.
“오오, 이번엔 정말 제대로 접혔다!!”
두 번째 텐트 접기에 성공하면서 약간 짜릿한 손맛이 왔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접히더라는 느낌이 온 것이다. 원터치 텐트를 접어본 사람만 알겠지만 눈앞에서 보여줘도 따라 하기 어려운 묘한 구분 동작이 하나 있다.
나는 잊어버리기 전에 양 손을 이용해 활대를 이중으로 접어 넣는 그 순간을 반복했다. 몸으로 익혀야 오래 잊어먹지 않는 법이니까.
원터치 텐트를 접는 구분 동작은 다음과 같다.
1. 텐트의 양 날개를 접어 들어 올린다.
2. 텐트를 모아 살짝 털어주며 안심시킨다.
3. 바닥의 둥그렇게 구부러진 부분을 양쪽 발로 야무지게 밟아 고정한다.
4. 오른손으로 쥔 활대를 안으로 밀어 넣는다. 텐트를 쥔 양손의 모양이 중요하다.
5. 동시에 왼손에 쥔 활대는 앞으로 넘기듯 접는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6. X자로 접힌 활대 전체를 아래로 꾹 누른다.
이 구분 동작 가운데 가장 어렵기도 하고, 핵심이 되는 동작이 4번과 5번이다. 이 오른손과 왼손의 콜라보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텐트는 반만 접혀서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큰 원이 되고 만다. 이 부분을 숙지하지 못한 원터치 텐트 오너들은 망신을 당하다 못해 텐트 접기를 포기하거나 내다 버리거나 큰 텐트채로 들고 다니는 불행한 운명의 길로 접어들고 만다.
나는 스스로 터득한 원터치 텐트 접는 법이 너무 경이로운 나머지 후배에게 텐트 접는 장면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유튜브 계정(How to you do)을 만들어 동영상을 첫 업로드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는 미지의 동지들을 위해 'how to fold up a onetouch tent'라는 설명도 붙여놓았다. 원터치 텐트를 접지 못해 웃음거리가 된 전 세계 가장들을 위한 박애주의의 발로였다. 인류공영에 이보다 더 이바지하는 길이 있을까.
단언컨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류가 있다. 원터치 텐트를 접을 줄 아는 인류와 그렇지 못한 인류.(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