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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피시 Jun 20. 2020

5.전원생활 판타지 척살기_게으름의 역습

쌈채소의 재발견  

       

다차(Dacha)

러시아에 가면 ‘다차’라는 농장이 있다. 가족과 시골에서 한여름 더위를 피하는 러시아식 주말농장이다. 

다차는 18세기에 나타난 개념으로 ‘주다(give)’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차르가 공을 세우거나 충성하는 신하에게 농노가 딸린 땅 조각을 선물로 하사한 데서 시작됐다.

다차(구글)

다차 문화는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소련 정부는 공을 세운 국민에게 보답으로 땅을 분배했다. 땅의 크기는 대략 600m²(180평 남짓)였다. 다차를 짓고 남은 자투리땅은 채소와 과일, 꽃을 심는 생계형 농업에 이용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차를 소비에트 내부의 망명 섬, 안식처로 여겼다. 일종의 범국민적 유희였다. 러시아 여론 조사 센터에 따르면, 모스코비치의 62%가 주말에 다른 취미보다 다차 휴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자연을 한 모금 빨고 싶어서” 대도시를 탈출하는 차량 행렬이 줄을 잇는다.     


루틴 한 품목들 

나는 회사에서 15분 거리 시골에 11평 규모의 작업실을 지었다. 지인들을 모셔다 달과 별과 바람과 시원한 공기를 안주 삼아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시는 사설 놀이터다. 2년에 걸쳐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러시아의 매력에 빠져버린 나는 지극히 프라이빗한 내 놀이터에 ‘다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11평형 국산 다차

아닌 게 아니라 나의 다차에도 딸린 자투리땅이 있다. 내 소유의 땅이 198m²(60평), 농사를 지어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옆 땅이 1,008m²(305평)이다. 그 땅을 모두 사용하기란 불가능해서 마을 이장님에게 무상 재임대해 드린 상태다.


경험칙상 내가 정해놓은 텃밭과 농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9.917355m²(3평)이다. 농작물을 심은 땅의 크기가 3평 안쪽이면 전원생활의 미덕을 흠씬 향유할 수 있는 텃밭이고, 3평을 넘어가는 순간 고달픈 농사의 길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전원생활을 즐기러 시골에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눈곱의 접착력 때문에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고, 팔다리도 욱신욱신 고되고, 지구의 과도한 중력에 하루하루 지친다는 느낌이 든다면 주저하지 말고 나가 영토의 크기를 재보라. 인생이 왜 고달파졌는지, 욕심이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작물을 심을 수 있는 땅의 크기가 어떻든 초보 농부가 심는 품목은 대동소이하다. 고추는 매운 고추, 안 매운 고추, 아삭이 고추, 가지 고추로 골고루. 다음 오이, 토마토, 가지, 호박, 각종 쌈 채소, 부추, 비트 정도. 나는 여기에 당근과 양파를 더했고, 뒤뜰에 대추나무 다섯 그루, 아로니아 스무 그루, 감, 앵두, 포도, 자두, 체리나무 각각 한 그루를 심었다.     

위대한 게으름이여 

문제는 바쁜 직장생활 탓에 텃밭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너무 바쁠 때는 일주일에 한 번 가보기도 어려울 정도다. 풀을 뽑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주일이면 온갖 풀이 나의 사랑스러운 다차를 뒤덮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바쁘다가 오랜만에 다차로 들어간 그런 날이었다.

내 기름진 문전옥답 텃밭이 있어야 할 자리에 어쩐 일로 꽃이 지천이었다.


‘으응? 저것은 무엇?’


화단의 꽃들이 걸어갔을 리 만무한 데 뜻밖의 장소가 울긋불긋 꽃대궐이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각종 쌈채소들이 너무 오래 방치했더니 숫제 꽃나무가 되어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이파리를 수시로 뜯어주었어야 하는데, 너무 오래 자라게 둔 결과였다.

쑥갓 꽃
쑥갓은 개망초의 확장판처럼 잎은 하얗고 속은 노랗다. 치커리는 억센 나무줄기마다 수레국화를 닮은 보랏빛 꽃망울이 수북하다. 당귀는 소금을 쏟은 메밀밭인 줄, 방풍은 하얀 눈의 결정체를 확대해 들여다보는 듯, 부추는 초록바다에서 쏘아 올린 흰 빛줄기가 처음에는 독야청청 고고하다가 나중에는 지극히 풍성해졌다.- 채소밭 목격담  


나는 자못 놀라우면서도  마음 한구석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다며 별생각 없이 잎이나 따먹던 쌈채소들 역시 이렇게 예쁜 꽃을 품은 어엿한 화초였던 것이다. 

기회를 주지 않았고, 기다려주지 않았고, 설레며 바라봐주지 않았을 뿐, 때가 되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올리는 것을. 진짜는 못 보고 내가 편리한 부분만 들여다보니, 쌈채소들에게 의외의 반전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말하지 못하는 녀석들은 얼마나 섭섭했을까. 

치커리 꽃

내가 너무 부지런하여 쌈채소들의 이파리가 자랄 때마다 뜯어내거나 얼추 자란 것들은 이제 억세서 맛이 덜하다며 뿌리째 뽑아냈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늦게 피어오르는 꽃의 향연을 알 리 없었겠지.

지난해 심었다가 방치해둔 녀석들까지 기세를 올리며 꽃망울을 터트렸으니, 가히 나의 게으름이 가져다준 뜻밖의 절경이라고 해도 좋을 법하다.    


‘너희도 꽃이었구나!’   


내 쌈채소 텃밭은 어디보다 탐스러운 비밀의 화원으로 변태하여 오늘도 꿋꿋이 밤낮으로 꽃 피웠다 지길 반복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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