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리피시 Jul 23. 2020

9. 전원생활 판타지 척살기_목공의 시작

나는 목수가 되겠다.


누수가 부른 나무 복(福)    

몇 년 전 일이다. 

회사 1층 커피숍 바닥에서 지하 중앙감시실로 물이 새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바닥 방부목을 걷어 내고 방수 칠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게 방수 전문가 의견이었다. 회사는 고맙게도 공사 과정에서 걷어낸 방부목이 쓸 데 없다며 모두 폐기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그것, 내게 버리시오.”    


나는 웬 나무 횡재냐 싶었다. 회사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뜯어낸 방부목 전체를 고은리 내 다차로 옮겼다. 어찌나 많은지 1톤 화물차 2대 분량이었다. 두께는 한 5cm, 폭은 한 20cm, 길이가 3.6m는 나가는 녀석들은 바닥에 깔린 지 14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베어온 것처럼 성성했다.

욕심에 서둘러 걷어오기는 했지만 처음 한두 해는 나무를 쓸 곳이 없었다. 언젠가 요긴하려니 하고 마당 한 구석에 눈비를 맞추며 그저 쌓아두기만 했다. 그 사이 발견한 유일한 쓸모라고는 추운 날 지인들과 고기를 구울 때 난방용 땔감으로 조금 끊어 쓰는 게 고작이었다. 나무에 방부재가 칠해 있어 불쏘시개로 던져 넣으면 매캐한 연기와 독한 냄새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연기를 한 번 흡입하면 생명이 단축되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화력은 좋았고, 대신 톱질로 한 번 끊는데 평균 15분이 걸렸다. 나무가 원체 강하다 보니 톱질할 때마다 구차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톱 외에는 마땅한 장비조차 없던 때라 나무를 잘라 뭔가를 해보겠다는 욕구조차 솟아나지 않았다. 

초급 목공     

세월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나는 마당에 화분 몇 개를 올려둘 받침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겨우 떠올렸다. 톱질하기는 영 싫으니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이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꼼수가 ‘나무를 2m 길이로 자르면 끝’인 초 간단 받침대 제작이었다. 자른 나무 두 개를 나란히 눕혀놓고 1,300원짜리 시멘트 블록 4개를 사다 받치니 화분 받침대가 뚝딱 완성되었다. 원시인도 해낼 수 있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으나 내 목공 인생의 미약한 출발이요, 장차 목수가 되고 싶다는 장쾌한 빅 픽처의 서막이 시작된 계기였다. 이 과정에서 톱만 쓰다간 진이 빠져 진도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1초 만에 나무를 절단할 수 있는 각도절단기를 구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재소 쇼핑

공짜로 얻어온 큰 나무를 만지는 데 힘이 부친 나는 가까운 목재소 쇼핑에 도전했다. 그곳은 지게차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목재를 쉴 새 없이 실어 나르는 신세계였다. 나무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 지, 나무를 찾는 사람이 또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그중 간단한 책꽂이나 수납함을 만들 수 있겠다 싶은 얇은 적송(레드파인) 판재 몇 개를 샀다. 어차피 배운 기술도 없고 성공도 장담할 수 없으니 비싼 고급 목재부터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일 단짜리 작은 수납장을 짜 보기로 했다. 갓 사온 각도 절단기로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나무를 무엇으로 붙일까 고민하다가 서랍장에 오랫동안 굴러다니던 오공 본드가 생각났다. 본드로 나무 붙이기를 시도했고, 멍청한 짓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다. 아무리 본드칠을 해도 네모 나무는 금세 마름모가 되었다. 

본드를 내 던지고 3cm짜리 목재용 나사못을 사다가 드릴질로 나무 접합을 시도했다. 나사못은 그런대로 튼튼하게 잘 들어갔지만 박을 때마다 나무가 쩍쩍 갈라졌다. 전문가 기훈이에게 물었더니 먼저 드릴로 구멍을 낸 뒤에 나사못을 박아야 탈이 없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구멍 한 번, 나사못 한 번 했더니 과연 나무는 더 이상 갈라지지 않았다.

작은 진열대 하나, 조금 큰 진열대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나무 다루기에 한결 자신감이 붙었다. 여세를 몰아 휑하던 한쪽 벽을 꽉 채울 책꽂이 겸 수납장을 짜고 샛노란 수성 스테인을 발랐다. 집안 분위기가 당장 유치원으로 변했지만, 소소한 성취감은 꾸준히 도모하는 데 좋은 자양분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행여 책꽂이가 넘어갈까 봐 영 팔리지 않는 내 책들을 꽂아두었다.



마루 깔기 

 나의 세 번째 목공 도전은 마루 깔기였다. 회사에서 얻어온 나무들을 오래 방치했더니 더러 썩고, 더러 휘고, 더러 덩굴식물들이 올라타 폐기물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저렇게 구석에 버려두느니 마당에 가지런히 펴서 보관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역시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나무 몇 개를 잘라 흙바닥에 얼기설기 깔고, 그 위에 깨끗한 녀석들 십여 개를 골라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나무와 나무는 6cm짜리 나사못으로 고정했다. 굵고 억센 나무를 연결하는 피스질에 갓 구입한 보쉬 해머드릴이 큰 역할을 했다. 

이 작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나무를 깔기 전에 반드시 흙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바닥 평탄 작업을 하지 않았더니 마루 바닥도 기울기가 생겨버렸다. 마루 위에 설치한 테이블과 의자를 이용할 때마다 뒤로 넘어가는 불안감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여세를 몰아 정화조 위에도 마룻바닥을 한바탕 깔았고, 자투리 나무를 버리기 아까워 에어컨 실외기 뚜껑을 만들어 붙였다.         


그늘막 도전 

11평짜리 내 다차는 컨테이너 박스처럼 네모반듯하고 처마가 없어 한여름이면 더위를 피할 곳이 없다. 게다가 서향이어서 8월의 맑은 오후 2시에는 집이 지글지글 타들어갈 지경이 된다. 2차원에 머물던 나의 목공 열망은 좀 더 큰 사이즈에 좀 더 복잡한 산수가 들어가는 3차원 그늘막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갔다.   


‘약간의 그늘이라도 맛볼 수 있는 지붕을 만들어보자.’    

목재소에서 그저 ‘각목(각재)’으로만 알던 나무를 몇 개 샀다. 혼자 작업해야 하는 특성을 고려해 폼은 덜 하겠지만 가능한 가볍고 얇은 녀석들로 골랐다. 목재소를 들락거리며 각재의 종류는 수입해온 나라의 이름을 따서 뉴송(뉴질랜드산), 미송(미국산), 소송(러시아산)으로 구분한다는 것을 나이 오십에 겨우 배웠다. 휘었거나 금이 가있는 나무를 꼼꼼하게 살펴 골라낼 경우 목재소 주인이 역정을 낸다는 사실과 내가 뜻밖의 불친절은 그 자리에서 되갚아주는 성품이라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되었다.  

 

•뉴송 각재: 가공이 쉬운 반면 변색 균에 약하다.
•미송 각재: 나무 색이 밝아 가구 목공재에 적합하다. 
•소송 각재: 재질이 연하고 부드럽다. 
•나왕(羅王) 각재: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목재. 광택과 빛깔이 좋은 반면 습기와 벌레에 약하다.


현관문 높이에 맞춰 나무 기둥을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하고, 지상에서 미리 만들어놓은 네모난 지붕을 얹었다. 나무가 얇아 흔들면 흔들려도 강풍에 날아가거나 스스로 자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나무가 썩지 않도록 녹색 수성 스테인을 칠하고, 태양광을 축전해 불을 밝히는 반짝이 조명을 걸었더니 밤에만 제법 운치가 돋아났다. 그윽하게 바라볼 때마다 머릿속에서 진추하 누님의 'one summer night'이 저절로 플레이됐다.    

이 공사는 아직 드릴질이 서툴러 나사못이 고르지 않고, 마감이 깔끔하지 않다는 숙제를 남겼다. 또 한 가지, 칠하고 남은 수성 스테인을 버리기 아까워서 계속 덧칠하게 마련인데, 마지막까지 다 소진하고 나면 전혀 칠하지 않는 곳이 그제야 보인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능소화 지지대

나의 다섯 번째 목공은 좀 더 큰 사이즈, 그늘막 겸 능소화 줄기를 올릴 지지대 제작이었다. 그동안 작업에는 겨우 몇 만 원 정도의 재료비만 들어갔다면 이 공사는 수십만 원이 넘는 대공사였다.

구입 품목은 가로 세로 9cm 방부목과 주춧돌, 녹이 슬지 않는다는 아연 나사못, 오일스테인, 화스너라고 해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알고 보니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는 조임쇠 또는 꺽쇠의 개념인 패스너(fastener), 그리고 볼트나 너트가 풀리지 않게 함께 끼워 박는 도넛 모양의 워셔(washer)까지 합해 23만 1,880원이 들어갔다. 이 작업을 위해 7만 7천 원을 주고 3단 접이식 사다리까지 구입했으니 총제작비는 30만 원이 훌쩍 넘어가고 말았다.

가장 마음에 든 제품은 콘크리트 주춧돌이었다. 아마추어가 어떤 구조물을 세울 때 가장 고민스러운 대목은 콘크리트 기초다.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 중인 콘크리트 주춧돌은 ‘시멘트 포대를 사다가 모래와 함께 철판 위에서 비벼야 하나?’라는 원초적인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주었다. 묵직한 콘크리트에 철심이 박혀있어 기둥을 바로 묶을 수 있는 데다, 심지어 예쁘기까지 해 굳이 땅에 묻지 않아도 익스테리어 효과를 볼 수 있다. 능소화 지지대를 제작하며 만 원이면 살 수 있다는 수평계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의 어설픈 목공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8. 전원생활 판타지 척살기_가난한 호모 파베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