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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11. 2017

나 혼자 오키나와

첫째날

얼마 전 오키나와를 우연찮게 두번 방문할 일이 있었다. 얼떨결에 다녀온 첫번째는 나 혼자의 여행이었고 버스와 걸음이 주된 수단이었다. 두번째는 가족과 함께였고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더 흔한 형태의 깔깔호호 친목 도모가 목적이었다. 


워낙 낯선 곳이기도 했고 혼자 이 생소한 곳을 다니려니 출발 전부터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게다가 승용차가 주요 운행 수단이라 거의 대부분 렌트카를 이용하는 와중에 버스, 지도, 구글맵, 다리를 믿고 떠나려니 약간 겁이 났으나, 그것의 배로 혼자라는 사실에 설렘이 꿈틀대었다.  


입국심사까지 마치고 나서 아침부터 굶주린 배를 좀 채웠고 비는 시간 동안 탑승구까지 천천히 걸어가려고 했다. 매번 느끼지만 공항은 차분해지기 참 어려운 곳이다. 많은 이가 들떠있어 시끌벅적하고 그 넓고 바쁜 곳을 산책하듯 움직이다보면 정신을 놓치게 된다. 아무리 넉넉한 시간을 두고 도착했다 하더라도 각종 귀하고 인기 있는 물품들 속에서 오감이 쉬이 피로해지고 카드는 바쁘게 긁혀댄다.


일년 정도 쓴 시계의 밥을 먹이는데 한달이나 기다리라는 말에 손목이 허전하던 차였다. 느리게 걸어보려했던 나는 직선으로 길을 잇지 못하고 갈지자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느덧 시계 코너 앞에 발을 두었고 틈틈이 봐오던 시계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정말 빠르게 탑승구까지 걸어갔다.    



오키나와는 생각보다 조금 멀고, 정말 많이 더웠다.

두시간 반 남짓 날라오는 동안 여행책의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버스로, 체력으로 갈 수 있는 곳과 가고 싶은 곳을 찍었다. 오키나와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은 편이고 아직 많이 어린 아가들도 적지 않게 동행했다. 비행시간의 삼분의 이는 소음으로, 삼분의 일은 설잠과 여행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도착해서 한 일은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는 것이었는데, 공항에서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시내에서도 주택가에서도 현지 사람들은 이만한 더위에 기대하는 복장을 입고 있지 않았다. 여행객들은 나시나 꽃무늬, 숏팬츠, 쪼리 등을 걸치고 있었으나 내가 본 여기 사람들은 두껍지 않은 긴바지나 긴팔을 입고 있었고 위, 아래 중 대부분 한쪽만 살을 드러내었다. 혼자 버스와 모노레일, 도보로 다닌 덕분에 출퇴근 시간을 함께 하고 조용한 주택가를 주구장창 걸어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예약해둔 호텔까지 오는데는 그리 멀지 않았으나 이미 서울의 여름을 어느정도 나면서 체력이 더 고갈되었던터라 오키나와의 쨍한 햇빛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다. 도쿄나 오사카 등 다른 도시에서의 지하철은 빠르고 바쁘고 신속한 느낌이었다면, 오키나와의 모노레일은 햇빛에 이불을 말리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러니까 조금 느릿느릿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했으며 기다리는 동안 절로 calm down이 되었다. 기다렸지만 일단 타기만 하면 30센티 자 위에서 치수를 재며 달리듯 정확한 시간에 바로 그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호텔 옆 편의점에서 오키나와 지역 맥주라는 오리온 두캔과 데운 야끼소바 한 그릇을 사와 점심 식사를 하였다. 국제거리가 있는 나하시 주변이라 번화한 곳에 위치하였으나 호텔 뒤로 가면, 백화점 건너편으로 가면 여지없이 소음이 사그라드는 주택가가 나왔고 드물게 보이는 사람들은 참으로 조용 조용 거리를 지나다녔다. 모노레일에 내려 호텔까지 가는 중간에 횡단보도가 하나 있었는데 머물렀던 삼일동안 얌전히 켜지던 초록불을 보고 달리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쉬러 온 곳에서 초록불을 보고 달리는 내 모습이 우스워 다 건넌 후 홀로 숨을 골랐다.



미나토가와는 주인의 취향이라던지 특색을 담고 있는 상점 몇몇이 골목골목을 따라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 중 오하코르테는 타르트로 유명한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햇빛 아래 반짝이는 돗자리 위에서 바짝 말려지는 홍고추 같은 느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길을 따라 걸어갔다. 믹스과일 타르트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곳곳을 구경했다.  



아메리칸 빌리지를 거쳐 선셋 비치에 도착하니 장관인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서로 어깨를 내어주는 관광객들과 연인들 옆에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가만히 보고 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행을 오기 전에 나는 온 우주가 나와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 작정하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는 해를 보고 나는 정면에서 그 기운을 받아내며 아, 내가 그랬었지. 피식 웃게 되는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여행의 좋은 점은 내가 엄청난 미물임을 깨닫는데 있다.

때로는 엄청나게 흥분하고 때로는 땅으로 꺼질 듯 

온 우주가 나와 함께 움직인다고 생각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서 우주 하나씩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으로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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