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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Dec 10. 2017

과자종합선물세트

오랜만에 아침 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일하기로 한 삼일 중 첫날, 춥고도 아주 추웠던 그 날, 지하철 역을 향해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살고 있는 그 와중에도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뭐냐면 한기가 반갑도록 느껴지는 긴장감이랄까. 멋이고 치레고를 떠나 일터에 적합한 차림으로, 하얗게 일어나는 입김을 불어가며, 찬 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렇게 지하철역에 들어섰다.


농익은 듯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어 요리조리 작은 이 존재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의지는 아니고, 두 발과 몸이 수직으로 지탱하는 그 한 자리가 만들어지고 나면 나는 모두의 숨소리와 짙게 배어있는 점퍼의 바깥 냄새를 피해 이어폰의 볼륨을 한 단계 올린다.  


각 역마다 우르르 내리고 타는 사람들 모두를 실어 나르는 직사각형의 상자 속에서, 어릴 때 사촌들과 받던 과자종합선물세트가 오버랩된다. 한두 봉지 정도 반갑고 대부분은 별로 반갑지 않은 복합 감정의 오픈 순간처럼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동안 결코 작고 반갑지 않은 내 존재가 사그라졌다 도드라졌다를 반복한다. 


피할 수 없는 일터의 시간에서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 


누군가 오른쪽 날갯죽지를 송곳으로 쿡쿡 찌르는 느낌으로 문을 나서면, 그간의 무료함 덕분에 반갑기까지 느껴졌던 아침의 한기가 지금은 매서운 싸대기를 날리는 채찍처럼 느껴진다. 나는 오늘 살았는데 열심히 살았는지 보람껏 일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침, 함께 몸을 부대끼던 다른 과자 봉지들도 매일 이렇게 울고 웃으며 시간의 쏜살같음을 무심코 느끼겠지. 유리에 비치는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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