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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Sep 19. 2019

피아노 일기_첫번째

피아노학원으로 들어갔다.


1년전부터 내가 사업자로 등록된 증을 가지게 되면서 속이 까맣게, 정말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혼자,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지낸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장사이고 사업이고 난 불편한 직원들과 하루종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이것은 즐거움을 논하는 일도 전혀 아니다. 물건을 구입하거나 즐거움을 경험하고자 돈이 오고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일이다.


사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밖엔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는지, 바람에 짙은 녹색의 나뭇잎이 펄렁이는지, 해가 너무 강해 아스팔트를 녹이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골방같은 곳에서 

그래도, 사람들을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나를 인정해주고 어떤 사람은 나의 노고를 짓밟아버린다.

그렇게 하루는 울고 하루는 조금 웃으면서 참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에 몸을 맡기면서 점점 입주위 턱 근육들은 

무엇을 섭취할때만 움직이게 되었다. 웃음기는 점점 사라지고 오히려 웃으면 볼이 아팠다. 


그냥, 일은 이런건가보다. 다들 이렇게 일하며 사나보다. 생각한다.

더 생각하면, 막 가치 의미 꿈 희망 이런거를 떠올리기 시작하면 불행의 늪에서 빠질 수 없을 것 같아 

웃지 않고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고 대신 다음날은 오니까 그렇게 산다.


다시 말해 피아노 학원을 갔다. 

빼곡히 들어선 연습실에서 처음엔 반쯤 건반을 누르며 수줍게 시작했다.

레슨도 있다던데 우선 혼자 쳐본다고 연습한다고 했다.

선생님 만나는 날을 기다리려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들어간 것은 아니고

그냥 오늘, 쉬는 날인 오늘 그리고 지금 무언가라도 해야 내일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좁은 방이었지만

30년전 학원을 다니며 한 곡을 칠때마다 선생님의 동그라미를 색칠하던 기억의 장소와 비슷했다.

피아노와 나만 있었고

앞과 뒤 그리고 밖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나만의 공간과 덜 외로운 관계가 학원 안에는 존재했다. 

점점 건반의 반보다 조금 더 아래로 손가락 힘을 주었고 

나는 꿍꽝대었고

후련했다.


처음보는 악보를 연습하다가

내가 외워서 칠줄아는 유일한 곡인 베토벤 비창을 쳤다. 

잔잔한 2악장은 외우지 못해

1악장과 3악장을 계속해서 쳤다.

점점 더 페달을 밟았고 나중에는 정말 힘있게 손가락과 발을 눌러대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다.


이것은 정말 별볼일 없는 피아노 일기이다.

한달동안 즉흥환상곡을 비창처럼 외워서 칠 수 있을까, 그 여정이다. 

되는지 안되는지는 상관 없다. 바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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