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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Mar 04. 2020

대운의 행방


작년에, 그러니까 벌써 작년이 된 19년에 나는 일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아 가을이 지나고 날 무렵에는 사주보기에 탐닉했다. 20대, 명확한 것 좋아하고 논문보며 흠집 찾아내는 것이 일과였던 몇 년의 대학원 생활 동안 합리, 이성, 객관, 과학적 이런 말들에 강박처럼 시달리다가 20대 후반이던 어느 날,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인건지 호떡 뒤집듯 실험실 외의 공간을 갈망하였을 때 운명이라는 것,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무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8년, 19년 일이 어쩜 이렇게도 안풀릴까 싶었던 때에 이렇게도 노력했으면 이제는 운이다. 조금 덜 열심히 하려고 게으름을 피던 찰나 '그래 사주 10개보고 과반수 이상이 잘 된다고 하면 이 상태로 go다.' 마음먹고 괜찮다는 곳을 수소문해 사주와 신점을 통틀어 10번을 봤는데 이 와중에도 카드 뽑는 타로는 쳐주지 않겠다며 제 멋대로 인생을 점지우려다 한 사주가를 만난다. 자신은 신점을 위주로 사주명리까지 통틀어 조언을 한다는 사람이었는데, A4용지 여덟장으로 내 사주 풀이한 결과를 한달만에 보내 왜 내꺼 안보내주냐고 불평글을 쓰다 이렇게 자세히 풀이해줄지 몰랐다며 감사의 리뷰를 남기게 하는 상술의 대가였다. 


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 이 것의 배치를 그때 알게된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 자료를 토대로 다른 사람 9명이 하는 말들을 조합하기 시작한다. 몇만원, 몇만원 모이니 조금 큰 돈을 소비하고 결국은 상승과 하강의 풀이가 다소 다를 뿐, 판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님을 깨달았다. (근데 사실 그것보다 인상깊게 배운 것은 상담 스킬인데, 우리 나라에서 아마 말 제일 잘 하는 직업군일거다.) 


'자, 지금은 힘들지만 좋은 때가 곧 온다.'


대운아 어디있니
대운아 내 말 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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