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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Mar 10. 2020

오늘 내 곁에 머문 사람


상가 1층의 식당 사장님은 목소리가 크다.


사모님은 요리를 잘 하신다. 특히 사모님이 끓여 주는 김치찌개가 일품인데, 일주일에 7일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상가에서 근무하고, 상가에서 장을 보고, 상가에서 학원을 다니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식당에 모여드는 점심시간이 되면 사모님 이름을 크게 부르시며 “가희야! 비빔밥부터 하랬잖아!” 아저씨는 호통을 치기 시작한다. 상가 곳곳에 점심을 배달하고, 식사를 마친 상을 닦고, 나 같은 단골 손님의 안부를 묻고, 계란찜을 주시거나 계란후라이를 서비스로 날리신다.


사장님은 늘 얼굴이 붉다. 키가 크시고 체격도 있으시다. 마치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생기셨다.


처음 낯선 동네의 상가에서 작은 병원문을 열었을 때 모든게 어색하여 출근하는 것이 고역이고 환자를 만나는 것이 긴장과 부담이었던 때가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며칠 내려가 인사를 드린 이후로 사장님은 식당에서 만나는 단골 손님들께 나의 명함을 대신 돌려주고 나를 소개시켜 주셨다. 상가에 수많은 부동산과 학원과 약국, 세탁소, 인테리어가게, 꽃집을 돌며 일일이 새로 오신 한의원 원장님이라고, 명의라고 추켜세우며 얼굴을 익히게 도와주셨다.


사모님은 얼마 전 한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오셨다. 침대 모서리에 발등 바깥쪽을 부딪쳐 붓고 피멍 든 자국이 시퍼런 상태로 오셨다. 침과 부항, 뜸을 하고 덜 움직이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치료 베드에 누워 뾰족한 란셋으로 사혈을 하는데도 곯아떨어지시는 걸 보면, 늘 뜨거운 불 앞에 서서 일을 하다가 퉁퉁 부은 다리와 발로 잠깐 틈을 내 침을 맞으러 오는 일도 사치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쌍화탕을 달이는 날엔 늘 무겁게 음식 그릇을 나르는 어깨와 등이 조금이라도 풀리시라고 몇 팩을 가져다 드린다. 그러면 사모님은 천혜향이 달다며 한 박스를 올려 보내 주신다. 공진단 몇 알을 챙겨드리면 다음날 우리 김치찌개 냄비엔 라면 사리가 통째로 들어있고 시키지도 않은 제육볶음이 식탁에 올라온다. 보약을 드리고 보약을 받는 일이 빈번하다.


병원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 날들이 며칠 이어지다 보면 사람 만나기도 벅차고 누구와 얘기하고 웃는 인사를 하는 일이 그리 즐겁지가 않다. 그런 날은 혼자 김밥으로 점심을 먹거나 커피 한잔으로 마음 내려 놓는 연습을 한다. 며칠 식당에 가지 않으면 사장님이 안부를 궁금해한다고 만나는 다른 사람이 말을 전한다.


일하고 있는 이 동네는 돈과 이재(理財)라면 우리 나라에서 제일 가는 곳일 텐데, 그래서 그런가 왠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가 깍쟁이 같고 손해라면 한치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 와중에 원장님 명의다 해주시고, 원장님 예쁘다 해주시는 엄마아빠 같은 분들이 계셔서 한 끼 식사 집밥처럼 든든히 먹고 또 하루를 살아낸다.  


돈이 통장을 스쳐가듯 복이 나를 지나치나 의기소침해지면 퇴근하다 아저씨네 간판을 본다. 인복이 오늘 내 곁에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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