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자리
손등을 보며 검지 손톱에서 부터 손가락을 따라 아래로 죽- 내려오자.
툭, 걸리는 느낌이 있다. 그 자리를 기억해.
그리고 엄지 손톱부터 손가락을 따라 죽 내려와.
두번째 뼈를 지나 어, 끝나는 곳인가 느낌이 드는 곳을 기억해.
아까, 그리고 지금 기억한 그 자리에서 손금이 보이는 곳을 향해 조금 올라가.
골짜기 같은 곳이 있을거야.
나이키, 마치 나이키 모양을 만들었을때
엄지와 검지 사이로 손바닥부터 손등으로 건너온
담쟁이덩굴같은 손금이 끝나는 그곳.
골짜기 같은 그곳.
만날 합, 골짜기 곡 바로 그곳이 합곡(合谷)이다.
나는 침을 놓을때 이 곳을 가장 좋아한다.
이 곳은 왠지 만병통치혈같은 느낌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로가 이어지는 사람의 몸에서
딩동하고 초인종을 누르면 문이 열리고 막힌 곳이 뚫리는 곳.
이 곳에 침을 놓을때 일일이 상대에게 엄지와 검지를 있는 힘껏 벌려보라고 할 수는 없다.
묘미는 이 때부터 시작이다.
환자의 손등이 정확하게 하늘을 보고 있지 않은 상태,
새끼손가락은 바닥에 있고 엄지는 위쪽에 있는 대다수의 자세에서
합곡 자리를 찾는 것.
그것은 마치 수많은 외국인 중 월리와 우프를 찾는 것처럼,
색각검사의 적색 숫자가 떠오르는 것처럼
매직아이의 정답을 발견하는 것처럼 반갑다.
정확한 곳에 침을 수욱- 하고 밀어넣는 침감은
바늘귀에 실이 한번에 통과하는 느낌이며
귓볼에 귀걸이침이 이미 들어가 있음을 발견할 때의 기분이다.
마지막 남은 몇 씨씨의 물이 꾸루루루룩하며 하수구를 빠져나갈때의 그것처럼 침은 빨려 들어가고 꽃힌다.
아 이곳이다, 내가 힘을 주어 침을 밀어 넣는 기분이 아니라 마치 몸의 그 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
그렇게 맞는 상대도 놓는 나도 아프지 않다.
손은 빠르고 정확해야한다.
밥 아저씨의 붓놀림과 능숙한 미용사의 가위돌림처럼
침을 놓는 손과 침관을 잡는 손은 두렵지 않게 움직여야한다. 이것은 술(術)이다.
이 곳은 침이 아니어도 양 손으로 서로를 눌러줄 수 있다.
힘이 많이 부치는 퇴근길에는 이 곳을 누르며 두 정거장 전인 분당선을 기다린다.
엄지 검지를 쫙 펴지말고 계란 집듯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검지, 엄지 손가락 뼈가 손등에서 만나는 곳으로
뼈 더 가까이 꾹꾹 눌러준다면
묵직한 신호가 온 몸에 퍼진다.
머리는 무겁고 어깨는 늘 한짐은 수험생들과 직장인들에게 단비같은 혈자리다.
배가 아프고 소화가 안될때 효과적임은 당연하다.
초인종을 눌러도
똑똑똑 두드려도 문 열기 어려운 세상을 산다.
일은 일일 뿐이지,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대부분이고 기쁨은 조금 있는 날, 손을 꾹꾹 누르며 위로한다.
머리에서 다리로, 다리에서 머리로 나는 막힌 길을 슬며시 내어준다.
* 의감(醫感) : 이것은 혈자리를 바라보며 제가 느낀 사사로운 감정이므로 한의사분들과 의사분들의 학문적인 시시비비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의술도 사람의 행위이며 머리 말고도 감정으로도 발전합니다. 따뜻하면서 냉철한 마음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