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iss Oct 08. 2020

술과 공진단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술과 공진단이라고 말하겠다.

음식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맛있는 건 물론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다.

그런데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음식 종류 중에서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라

퇴근 후 소주 한잔 넘길 때 속을 달랠 수 있는 음식이다.

예를 들어 흰쌀밥을 한 숟가락 가득 얹어 소주 한잔을 넘긴 다음, 혹은 그전에 한 움큼 입으로 넣어 씹으면

약간의 단 맛과 고소한 맛이 솔솔 난다. 단정하게 그런 맛이 난다. 김도 잡곡도 김치도 필요 없는 그 맛.

그리고 회 한점도 좋다. 껍질이 우툴두툴 약간 들러붙어 있고 붉은빛의 선이 그 밑에 있고 또 그 밑에 투명 빛 하얗게 뽀얀 살이 듬직한 도미가 좋다.

초고추장은 아니다. 좋은 고추냉이에 간에 세지 않은 간장이 좋다.


공진단은 없어서 못 먹지, 한번 먹으면 입안 한가득 퍼지는 그 향이 엄청난데

천천히 꼭꼭 씹다 보면 금박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던 그 약재들이 사그락 사그락 부서지며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일단 밀봉되어 있던 것을 열면 저 자태부터 영롱하다.

저 한 알을 손바닥에 얹어 굴려볼 때 나는 여의보주를 얻은 것처럼 건강과 소망의 성취를 생각한다.

조심스레 입 안에 넣어 정성스레 씹을 때 사향의 은은하면서 강렬한 향이 코 끝, 앞이마, 정수리로 퍼지는 느낌을 사랑한다.


술은 기액(氣液)이다. 영양소는 부족하고 빠르고 기쁜 에너지를 낸다.

공진단은 정신 기혈(精神氣血)을 보한다. 술과 밥이 채우지 못하는 힘을 돕고, 먹고 채운 것이 효율을 발휘하도록 한다.


머리로 이해하는 효과와 마음으로 만족하는 영혼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먹이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회의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