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설명은 왜 어려운가

설득력의 기술

by Aria mind



2-3년 전 강사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는 가장 큰 과제가 생겼다.

나는 늘 ‘쉬운 설명’을 통해 확실히 이해하는 수업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그조차도 움직임으로 옮기기 어려워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이건 회원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였다.


‘하늘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에요’,

‘긴 상자가 내 몸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런 식의 설명은 이미저리(imagery), 즉 형태를 의인화하는 방식이었다.

가장 쉬운 접근법이자, 몸으로 흉내 내기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조차 통하지 않을 때,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운동을 안 해본 분이라서 그렇겠지.’ ‘다른 큐잉을 쓰면 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직접 보여줘야지.’

물론 이런 접근 중에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내 안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식의 부족이라 믿었고, 체육학 학위를 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위를 마쳤을 때 놀랍게도 내 갈증은 그대로였다.

‘공부’는 이해의 해답이 아니었다.

물론 공부에 투자한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쉬운 설명’으로 이어지는 방향은 아니었다.

누군가 말했다.

“진짜 이해한 사람만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공부와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

나의 해소되지 않는 의문에 답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그때까지 '그대로'여야만 하는걸까.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어린 참여자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면, 내 의문점이 풀리지 않을까..?

하지만 필라테스는 정교한 운동이다. 횟수와 힘의 크기로만 단정 지을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기술적 설명보다 놀이 중심의 접근, 간단한 설명이 집중력을 줄 수 있고

참여도와 동기부여를 할 수 있었기에 내 정보를 세밀하게 전달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완벽한 나의 의문에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야 실마리를 잡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돌봄이 필요한 시니어들의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 이라면 먼저 시도해 보고 싶다는

'희소성'에 가치를 두는 편이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그 안에서 데이터를 얻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아마 그 때문에 어릴적 부터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넌 분명 잘해내긴 할 텐데… 위험해 보인다”라고 늘 걱정했다.


그래서 올해 나는 시니어 사업에 운동강사로 참여하겠다고 스스로 제안했다.

돌봄이 필요한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고령자 분들을 방문해 운동을 가르쳐 드리는

말 그대로 복지사업의 일환이다.

체계가 잡혀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나선 것.

그리고 어느새 5개월째, 나의 프로젝트로 잡아가고 있다.


간단하게 시니어를 가르치면서 느낀 점을 몇가지 적어보겠다.

첫 번째, 정이 넘쳐나는 분위기다.

국가사업이라 비용이 들지 않아서인지, 어르신들은 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신다.

“젊은 선생님이 건강을 위해 애써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며

딸처럼 챙겨주시기도 한다.

어른들께 그런 정을 받는다는 건, 이 나이에 생각보다 참 따뜻한 일이다.


두 번째, 세대적·신체적 한계다.

70세 이상의 시니어분들은

운동이 생활화되지 않았던 세대를 살아오셨다.

그래서 운동에 대한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다.

한쪽은 새롭고 재미있다고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은 근육통이나 미세한 통증에 대한

두려움으로 거부감을 가진다. 집중력 또한 체력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운동 텀(운동 중 휴식을 주는

리듬)이 중요하다.

게다가 완벽한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문화가 젊은 세대만큼 강하지 않다.


세번째, 운동 그 자체를 ‘소통의 시간’으로 즐기시는 분들도 많다.

운동 자체의 참여도 참여지만 이야기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그 운동이 그래서 그런 거래~”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관심을 보이고, 정보의 창으로 소통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신다.


시니어 수업에서 느끼는 핵심은 대략 이러했다.


어렵지 않게, 운동하는 것 같게,내몸에 주는 이점을 명확히.

‘어렵지 않게’는 기초에 충실해야 하고,

‘운동하는 것 같게’ 하려면 자극점을 정확히 느끼게 해야한다.

그리고 ‘내몸에 주는 이점’는 곧 이해와 동기부여로 이어진다.

움직임이 당신의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걸 함께 아는 순간, 참여의 질이 달라진다.


이런 핵심적인 부분에 노력을 기하다 보니,

완벽하진 않지만 서서히 느껴진다.

내 설명이 단순해지고 명료해짐을 말이다.

전달력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분명한 변화다.



어쩌면 ‘쉬운 설명’의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지식이 아니라, 이해와 설득력이었다.

어떻게 내가 가진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그것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만나는 순간, 비로소 설득력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니어를 지도하면서 깨달았다.

단순함은 깊이에서 나온다.

어른들은 정보를 원하지만, 복잡한 설명은 원하지 않는다.

섬세하게 설명하되 어렵지 않게,

절묘한 경계를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의 반응과 리듬 속에서

‘쉬운 설명의 기술’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이전엔 까다로운 고객에게 쓰던 기술이 나의

무기였다면, 지금은 이해와 호흡, 그리고 온도가 내 도구가 되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 설득력을 가지고

회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온도를 조절하는 중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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