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놈의대형마트' 온라인 앱에서 장을 보고,
다음 날로 맞춤 배송을 예약을 하고,
내일은 갔다 주겠지 하고 기다린지가 벌써 8일째.
배달 지연이야 가격 역주행 프로모션 기간이었어서 그렇다 쳐도
배송 절차도 역주행시키고 상품들 퀄리티까지 별 걸 다 계속 역주행시켜 버릴 줄이야...
자꾸만 허위 송장을 등록 해놓고선
출발한 적 없는 배송 출발 안내 메세지를 보내더니
한밤중에 도착하지 않은 배송건에 대해 배송완료 메세지를 보냈다.
-그러면 그 시간에 문 앞과 집 주변을 샅샅히 찾아보는 일로 허탕을 치는 일 말고는
어디에 문의도 못하고 문제도 제기도 못한채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그렇게 요 며칠을 '이놈의대형마트' 고객센터 직원 여럿분과 수차례 이메일과 메시지와 통화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있는 중이다.
-일이나 연애를 이렇게 했었더라면...-
사실 나는 전달하기 편한 시간에
텍스트로 간결하게 언제어디서어떻게무엇을왜 육하원칙에 따라 문제와 요청사항을 전달 하고 편한 시간에 답변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걸 선호하는지라
이번에도 전화통화는 딱히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이미 글로 다 적어서 전달한 내용을 통화로 두번 세번 다시 말하는 일에 내 시간을 1초도 할애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또 통화를 할 때마다, 응대하는 직원이 바뀔 때마다 내가 겪은 불쾌한 경험들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노라면 그 자체가 너무 큰 스트레스인거라... 이미 겪은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또 직원들 사과를 들으면또 시키는데로 움직이는 것 뿐인 고달픈 노동자들의 처지가 너무 가여워져서
스트레스 만땅인 나의 불만을 제대로 못 표현하고 통화를 빠르게 마무리 시킬테고
그러면 또 늘 내 불만과 요구사항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자책으로 하루를 날릴게 뻔하지 않는가...
그래서 모든 요청 사항을 세세하게 텍스트로 적은 뒤 답변은 텍스트로 달라고 적어 마무리한 뒤에
답변 전달 방식 선택란에서도 이메일과 문자 메세지에 체크를 하여 전송하였으나
마트측에선 통화로만 일처리가 가능하다고 마트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전화를 걸었고
나와 통화 연결이 된 후에서야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메일과 문자 메세지론 간단하게 전화 통화 하였다며 형식적인 간단한 문장을 복붙하여 전달 했다.
문장 완성 창의력들이 없어선건지, 손가락 움직이기 싫어서 그런건지, 기록이 남는게 싫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어쩌면 연민이나 귀찮음으로 대충 마무리 시키려는 의도한 큰 그림일지도...
여하튼 참으로 여러모로 작은 불편을 더 크게 만드는 시스템인것은 분명했다.
열불이 나서인지, 시원한 수박을 와구와구 먹고 싶어져서
엊그제 '이놈의대형마트'서 2만 원짜리 수박도 주문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수박은 배달시각에 맞춰 재깍 도착했다.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 가슴 속 열기가 조금 잠 재울 수 있겠다 싶어 반가웠다.
그리고 박스를 열었는데
깔끔한 포장 박스와 선별 수박이라는 프로모션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크기도 좀 작고 색도 누리끼리했다.
내 눈 앞에 있었다면 절대 돈 주고 고르지 않을 모양새였다.
일단 박스에 손을 넣어 수박을 꺼냈는데,
박스에서 꺼내자마자 무언가 툭튕겨 떨어져 나가 떨어졌다.
그 정체가 뭔가 싶었는데 썩어서 문들어져 있던 수박 꼭지의 끝 부분이었다.
그래도 '선별 수박' 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래도 맛은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않고
잘라 맛을 봤다.
그러나 왜 항상 나쁜 예감에는 반전이 없는 걸까?
설탕물에 살짝 담궈 놓은 오이 맛이 났다.
내 얼굴이 점점 수박색이 되어갔다.
다들 조금씩 가난하던 나 어린 시절에도
밥은 굶어도, 수박 만큼은 비싸지 않게 실컷 먹으며 살았던거 같은데...
물론 그 시대엔 아무리 돈을 많이 들고 나가도 길거리에서 수박쥬스를 사마실 수는 없었다.
그러니
혹자는 몇천원만 주면 어딜 가도 미세 플라스틱 우러나오는 컵에 부어진 설탕 시럽 잔뜩 들어간 수박 쥬스를 그란데 사이즈를 마실 수 있고, 십만원만 주면 금가루 뿌려진 멜론빙수도 먹을 수 있는
지금의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몇 해 전 호주 멜번 중심가 숙소 옆 마트에서 수박을 본 기억이 났다.
검은얼룩무늬가 진하고 선명하면 맛이 좋다는데 자연 풍부한 나라 수박은
허연반점 조차 한 곳데도 없이 아에 색깔 자체가 검은얼룩무늬 색으로 뒤덮인 듯
찐초록이었고,
크기는 얼마나 큰지... 거기 있는 수박들 평균 십키로정도는 되어보였다.
얼핏 봐도 작은 수박을 고를래야 고를 수 없었다.
먹고 싶어도 선뜻 손을 뻗기 어려운 압도적인 무게와 크기의 수박의 가격은
단돈 50센트.
당시 환율이 800원 전후를 왔다갔다하고 있었으니..
한국으로 치면 이마트에브리데이에서 400원 정도 가격으로 대왕수박을 판매하고 있던것이었다.
-특별세일도 아니었다-
그때가 코로나 직전 해로, 당시 호주 최저시급이 약 2만 원 전 후였고 지금은 시급이 더 올랐다고 들었다.
그러나 평균이 연봉이 두배 이상인 나라 국민들은 대왕꿀수박을 400원에 줘도
수박은 그다지 인기 품목이 아닌듯 했다.
내가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그 수박을 들고 가는 사람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위치가 가정집들이 밀집한 동네가 아닌, 사무실과 호스텔이 즐비한 중앙 기차역 근처였는데
그래서 주요 고객층이 업무차 들린 직장인이나 관광객 등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인거라 그런듯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주로 가볍고 간편한 식품들을 찾는 듯 보였다
호스텔에 머물던 나도 같은 가격의 맥도날드 소프트콘으로 더위를 달랬다.
당시 한국에선 500원인가 600원이었는데
가격만 호주 맥도널드가 좋았던게 아니라
양또한 한국 소프트콘의 두 배였다.
대형마트라 저렴한건가 싶었으나
멜버른보다 약간 작은 도시인 애들레이드의 로컬 장으로 가니,
대형마트 식품들이 풍미도 덜하고 가격도 더 비싼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와 함께 동행한 사람은
먼저 달콤하고 싱싱한 바나나를 한 박스에 2유로(약 한화 1600원)에 구매했다.
두 박스를 샀더니 트렁크를 가득 메우고도 남았다.
멜론은 바나나를 사고 장을 나서는 길에 공짜로 두 개 집어 왔다.
마감정리 한다며, 무료로 그냥 가져가는 게 아닌가?
멜론의 맛은 비싼 돈 주고도 아깝지 않을 정말 내 인생 가장 달고 맛있었던 멜론이었다.
친환경 계란, 호밀식빵 등의 보다 건강을 위한 식품들도 딱히 사치를 부리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었다.
한국보다 조금 더 비싸다 싶은 건 신라면 정도?
그래도 지금 한국 가격보단 안 비쌌던 거 같기도하고...
그런데 어째서 한국 라면 퀄리티 조차 호주가 더 좋은걸까?
스프 건더기 양도 더 많고, 더 얼큰해서 이제껏 먹은 그 어느 라면보다 가장 맛이 좋았다.
평소에 라면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는데 이런 신라면이라면 한국에서 자주 먹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 자체로도 가성비 좋은 식품 가격들을 접하면서
더불어 되새겨지는 부분은 그들의 최저임금도 평균임금도 우리의 두 배가 넘는 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50센트의 수박 가격은 어떤 느낌일까?
-어느 나라에서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센트는 거지도 안 줍는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만...-
얼마 전 갔던 오스트리아 또한
길거리 음수대나 화장실엔 알프스물 에비앙이 흘러서 물은 사 마실 필요가 없다.
코로나 이후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있었지만 그래도 마트 식료품이 한국보다 다 저렴했고,
국내보다 비싸더라도 불만이 있을 수 없는 게 모든
저렴한 식료품 제품들의 퀄리티가 한국에선 프리미엄을 붙여 주고 사야 하는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행객인 난 대충 먹고 버려야 하는지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경우에는 최대한 양이 적고 가장 저렴한 걸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
최저가격의 후추 올리브유 치즈... 이런 거 사도 풍미가 현저히 다르고, 대충 제공되는 싸구려 공짜 원두커피조차 맛이 좋았다.
-독일 공항까지 싸들고 가서 결국 용량 때문에 폐기처리 된 발사믹 소스가 아직도 떠오른다-
그런데 모든 것들이 먹고살만한 가격의 나라도
평균 연봉 소득이 -세금제외, 순 소득-오천만 원 넘은 지 오래된 나라라는 거다.
공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고 시급 좋은데 식료품까지 좋은 나라선
그냥 아침에 눈떠서 사과 하나 집어 먹어도 원기가 회복되는 느낌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이토록 아침 식사가 내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몰랐다.
나는 먹는 거에 별로 안 연연해하는 사람인 줄 알며 살아왔는데..
아침에 먹는 신선한 식단이 그날 내 여행의 컨디션이 심하게 좌우되었다.
해외서 쉽지 않은건 장보는거 자체였다.
아무래도 마트 갯수도 한국보단 작고, 마트가 일찍 문을 닫아서 말이다.
반면에 한국에선 마트는 늘 항상 열려있는데, 문제는 닫힌 내 지갑뿐인거 같다.
-돈만 있으면 내가 칭찬 하는 먼나라 이웃나라들 물건들 구하는게 대수겠나 싶은...-
그러나 문제는 마트로 들어가서 부터다.
기본적인 식생활을 위한 장을 보는게 참 어렵다.
맛 풍미 뭐 퀄리티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머리 싸매고 최저가만 눈에 불을 키고 골라 쑤셔 넣어도
사도사도 딱히 먹을만한 게 없다.
한없이 빈약한 장바구니와 긴 영수증에 어쩐지 큰 사치만 한 느낌이 들고...
돈을 암만쓰고 장을 암만 봐도
눈뜨면 "뭐 먹지?"가 된다.
-아니, 사실 그냥 눈 떠서 아침 먹을 생각이 하는 거 자체가 여유지만...-
벌써 눈뜨는 동시에 이렇게 하루의 퀄리티가 결정되고
하루의 퀄리티가 일주일, 한 달..
인생의 퀄리티가 되는 건가 싶다.
-심지어 오스트리아는 가장 번화한 대도시 비엔나에서 조차
어디서든 아침에 창을 열면 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말 말 그대로 '노래'-
자꾸 비교하면 불행만 초래하는 꼴인 거 잘 아는데도
마지막 남은 비엔나커피 원두도 다 떨어져 가선가
번번이 일주일 넘게 아무런 배송을 받지 못해 먹어 보지도 못한 닭가슴살처럼
삶이 너무 퍽퍽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수분 보충하려 수박을 시킨 건데..
당도 싹 빠진 물 먹은 수박 덕분에 내 혈당은 덜 올랐겠다 싶다.
하지만 혈압은 상승...
이쯤 되면 이런 비싼 가격에 썩은 수박을 판매하고
주문한 물건을 일주일 넘게 말로만 갖다 준다 하고 안 주는 마트의 문제가 아니라
더럽게 수박값이 비싼 이놈의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 인생이 썩어 빠진 수박 꼬다리처럼 느껴진다.
"이게 그렇게까지 어려울 일인가?
난 인생... 어째서 이딴 장 하나 보는 것 하나도 이리 수월하지가 않은 거지?"
유튜브에 구독한 사주 풀이 영상을 다시 보았는데, 사주에서도 딱히 좋은 말은 없었다.
근데 나뿐만 아니라 다들 열딱지 나서 힘든 시기란다.
-하긴 나와 통화를 한 많은 이마트 직원들 목소리도 매우 곤란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수박 가격처럼 내 인생 그래프도 올리고 싶은데...
자꾸 혈당과 혈압만 상승하는 나날의 연속.
하지만 내가 태어난 이 수박 비싼 나라도 또 하나의 여행지일 뿐인게
아닌가?
나는 온갖 기술을 끌어다 써도 백년안에는
그렇게 오십년 안에는 이 지구별에서 떠날텐데..
언제까지 이 여행지에선 다른 여행지에서 먹었던 풍미 가득했던 기억으로 오늘을 버티는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