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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아 Feb 06. 2024

한 장의 종이

책장을 넘기다...

내가 요나스 메카스의 국내 전시를 보았을 때만 해도

그는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살아있는 현시대의 아티스트였다.

그때만 해도 누가 알았으랴

그 전시가 그의 살아생전의 마지막 전시가 될 줄을..

전시가 있던 다음 해, 그는 역사 속 인물이 되었다.


지난주에는 내 생일이 있었다.

그리고 전 날, 별안간 어느 분 생각이 났다.

오늘 아님 내일 명을 달리 할지 모른다 하며 중환지실을 오가신지도 1년이 넘은 거 같은데..

아직 어떤 특별한 소식 없이 무사하시니...

참 사람 명은 참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의 탄신일 여분을 앞두고

그분의 영면 소식을 듣게 됐다.

나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는 축하의 말을 들었다.

생일날 지인의 영면 소식을 들은 것이 벌써 두 번째다.


그저 세상 모든 것들이 한 장의 얇은 종이의 앞뒷면 같단 생각이 든다.


앞뒷면 두 페이지로 구성된 종이는 참 얇은데도 불구하고

앞만 봐서는 뒤를 알기 어렵다.

또 뒤만 봐서도 앞을 알기 어렵다.

물론 앞뒤가 예상대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마는..


앞장에는 수차례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뿐이었는데

페이지를 넘기자 구구절절마다 단숨에 심장을 파고드는 문장들을 만나기도 한다.


세상사 인생사가 종이 한 장, 종이 한 페이지로 좌지우지 하기도 하니..


어느 날엔 얇은 종이 한 장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한 장을 쉽사리 넘기질 못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에 보면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바람결에 휘리릭 절로 넘어가 있기도 하고.. 바람에 두둥실 떠밀려 먼 곳으로 홀로 날아가 있기도 하고..


또 종이는 금방 찢어질 것 같다가도 질기기도 하고, 또 질긴 것 같아 방심 하는 사이에 쉽사리 변형 되거나 사라지곤 하질 않는가..


모든걸 가로짓는 건

그저 다 얇은 종이 한장의 차이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낮에는 비였었는데..

비에서 눈으로 변하게 되는 기온도

복(福)과 화(火)의 기운도

실직의 시간과 안식의 시간도

한량과 예술가의 타이틀도

궁핍과 여유의 형편도

냉소와 감사의 태도도

인간혐오와 인류애의 감정도

생과 사를 가로짓는 운명도


만일 내가 한 장의 종이라면

지금 내 앞 뒷면엔 무엇이 어떻게 새겨져 어떤 형태를 띠고 있으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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