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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아 Feb 17. 2024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쓸쓸함

위대한 수업의 앤서니 브라운 편을 보고..


십수 년 전, 20대에 접어들었던 나에게

그림책 작가를 꿈꾸게 하였던 작가 4인방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함께 현존하는 소중한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

-찰스키핑, 에릭 칼에 이어 존 버닝햄 작가도 2019년에 별세한 관계로...-

방송에서 그의 목소리로 직접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감회가 새로웠던 또 다른 지점 중에 하나는

노년의 작가 모습인 앤서니 브라운이었다.

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할 때만 해도 브라운 헤어컬러의 중년 작가였는데 말이다.


위대한 수업 앤서니 브라운 편은

총 네 편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제와 어제 두 편의 강의가 방영이 되어 이제 2강이 더 남은 상태다.


어젯밤에 그 방송을 보고 난 뒤,

이어 편성된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는

유앤미 블루의 지난 2009년 무대가 재방영되었다.


며칠 전, 회색 머리칼로 54번째 생일을 맞은 멤버 승열 님이

저 무대에서는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찰랑 거리며 기타를 치고 계셨다.

또 다른 멤버 준석 님은 이제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유엔미 블루 이후엔 우리의 마왕, 해철 님의 지난 무대도 방영됐다.

아, 그도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그리고 잠깐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요즘에 읽고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에세이집이 눈에 띄었다. 아, 그도 이젠 이 세상분이 아니다.


요 바로 직전에 읽은 책은

히사이시조가 2002년에 집필한 에세이와 요나스메카스의 인터뷰집이었는데,

에세이집에서 쉰이던 히사이시조도 지금은 칠순이 넘었고,

요나스메카스도 몇 년 전에 영면하셨다.


이제 내가 좋아하고 친숙한 아티스트들이 줄줄이 다 주름과 흰머리가 장착되는 것은 물론,

다른 세계로 가셨다는 소식도 점점 잦아지고 있음에...


결코 길지 않은 인생의 유한함도 더 깨닫게 되고,

더 이상 적지 않은 내 나이도 실감하고 있다.


마왕의 라디오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며

푸른 청춘과 찬란한 인생을 꿈꾸며

그렇게 파란밤을 지새웠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거울을 볼 때마다 보이는 나의 흰머리 조차 아무래도 참 익숙지가 않다.

이미 이십 대부터 새치를 갖고 있어 이젠 익숙해 질만도 한데..

볼 때마다 “이 무슨 한 여름에 서리를 뒤집어 쓴 꼴인가” 싶다.


내 삶에서 숙성의 시간은 가져 본 적 없거늘

중간 단계를 바로 스킵하여 바로 노화단계로 가는 건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소피에게나 일어나던 저주 마법같은 일이 아니던가?


새치가 영역을 확장해 나갈 때마다

나의 머릿속 ‘우주먼지’ 생각도 확장 되는거 같다.


“난 이대로 끝까지 빛 한번 내보지 못 한채 우주먼지 중 하나로 소멸 해 가는 것인가?“ 하는..


요즘 읽고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에세이 집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어머니의 건강이 심상치 않아

예지력을 가진 지인에게 연락해서 이런 부분을 상담했는데,

그 지인은 1월9일이란 특정 날짜를 언급하며 어머니의 별이 자취를 감춘다고 했단다.

류이치사카모토는 반신반의하면서 그날까지 어머니 곁을 지켰는데

정말로 그의 어머니는 딱 그 날짜에 영면하셨다고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41-42p

그 구절을 읽는데

며칠 전, 조부모님의 상을 치른 동생이 내게 말 해 준 일화도 생각이 났다.

동생이 장례를 치르다 중간에 잠깐 담배 피우러 나와 밤하늘을 봤는데 별이 하나도 눈에 안 보였단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단다.

 "죽으면 하늘나라로 간다는 말도 있던데, 어쩜 밤하늘에는 별도 하나 없냐..."라고...

그때 별안간 아주 빛나는 별 하나가 나타나 세차게 반짝반짝 거리더니 스스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다. .

그리고 그는 그 별이 마치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정말 별은 생명의 죽음과 탄생처럼

반짝이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는걸까?


어릴 적 나는 내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인 줄 알고 지냈다.

그럼에도 내 빛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아직 나의 온도가 세상에 눈에 띌 만큼 무르익지 않아서 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 온도가 뜨겁게 달하기만 하면

날 발견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 항성이라 일컬어 지리라..그렇게 되면 나도 당당히 세상에 항성이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난 애초에 빛을 낼 수 없는 존재였단 걸...


그러나 내가 항성이 아니란걸 알게 된 깨닮음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유용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후로 나는 늘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게 되었으니까...


"난 빛을 낼 수 없는 존재고, 내 주변에는 빛을 비추어 주는 천체도 없으니 나의 별은 이대로 암흑 속 홀로 동떨어져 추위에 바들바들 떨다 사라지게 되는 건가? "


그래도 생애 한 번쯤은 그들의 빛을 받아서라도

행성 행색을 내며 발광해 보고 싶다.


누구의 눈에 띄던 말던 그건 상관없다.

그저 발광해 본 기억을 가지고 소멸해보고 싶은 것일 뿐..


십여년 전 만들었던 자작곡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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