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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리아 Mar 16. 2024

터진 호떡을 굽는 법

오늘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었어요.

나는 눈 뜨는 것조차 늘 이렇게 하곤 해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지만,

오늘도 눈 앞엔 미뤄 온 것들로만 한가득.


그것들을 어떻게 하면 또 다시 미룰 수 있을까 생각하다,

일단 카페인과 당충전을 하기로 했어요.


정신 못 차리고 빠져들

구수한 커피를 내리고,

달콤한 호떡을 구울 거예요.


몇 차례 호떡을 만들어 보고 알아낸 것이 있어요.

호떡을 터지게 굽는 법.


처음엔 잘 구워보겠다고

앞 뒤로 힘주어 열심히 눌러댔는데

굽는 족족히 터졌어요.


그런 경험 때문에

호떡은 초반에 앞면만 제대로 찍어 눌러주면,

뒷면은 누르지 않고 냅두기만 해도

아무 힘 들일 필요 없이 알아서 잘 익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도 초반에 제대로 잘만 눌러줬어도 안 터지고

그럴싸한 모양새로 구워졌을까요?


엊그제 동생 앞에서 내 눈물샘이 터져버렸어요.

동생은 내게 강박이 있는 거 같데요.

어려운 건 알겠지만 그래도 떨쳐보는 게 좋겠데요.


하지만 몇 번이나 강하게 찍혀 눌린 호떡을

다시 매끈하게 되돌릴 방법은 도무지 모르겠는걸요.


오늘은 힘을 더 빼고 호떡을 눌러보았어요.

정말 안 터지고 멀쩡해 보였어요.

그렇게 뒤집어 설렁설렁 구웠는데...


막판에 또 터져버렸어요.

애초에 속에 설탕이 과도하게 들어가 너덜너덜해진 반죽은

아무리 살살 달래도 터져버리고 말죠.


거슬러 오르다 보면 문제가 끝도 없이 계속 나와요.

과연 내 손으로 안 터진 멀쩡한 호떡을 구워내는 일이 가능이나 할까요?


이제는 뭘 해도 각잡긴 글른거 같아요.

그래도 불판에 들여 온 이상,

내빼기 전까진 긴장을 늦출 순 없겠죠.

막판에 불조절까지 잘 못 했다간

호떡 아닌 시꺼먼 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멋스럽진 않아도 노릇노릇하게라도 구워봐야죠.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생각도 잠깐 따뜻해져요.


“터진 호떡도 다른 매력이 있는걸...

그럼 앞으로 난 터진 호떡이나 구워 팔며 살아 볼까?”


하지만

생각은 호떡보다 더 빨리 식어버려요.

”이런걸 누가 좋아하겠어.. “


아무도 안 좋아할 거 같아서... 그래서...

오늘도 그냥 나 혼자 터뜨리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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