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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도 울고 갈, 벽 없는 박물관, 화순 운주사

화순일주일살기

by 별나라

화순 운주사에 대해 자세한 지식 없이 무작정 화순의 자랑 운주사에 도착했다.

어라? 꽤 큰 주차장이 아침부터 차들로 꽉차게 들어서 있다. 사찰에 많이 가 보았지만 이런 정도로 주차장이 붐비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더군다니 주차 안내를 해 주는 사람도 있다. 정식 자리에는 주차를 못하고 안내에 따라 갓길에 주차를 마쳤다.

무슨 일일까? 이날 운주사와 그 일대에서는 '운주유람'이라는 운주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오~~제대로 왔다! 화순 운주사는 노령산맥 자락 깊숙한 곳. 마치 세상과 거리를 두려는 듯 산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구름이 머무는 절'이라는 이름처럼, 평상시의 이곳은 시간마저 잠시 머물다 가는 듯한 고요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에는 우리가 사찰 입구에서 흔히 보는 것과 같은 번잡한 상가는 커녕 식당 하나 없는 고립된 공간이다. 마치 세속과의 밀착을 경계하려는 듯.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사람들이 입구에서부터 북적여서 마치 유럽의 유명한 관광지에 온 느낌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운주사 일주문

천불천탑이 있었다는 운주사 탄생의 비밀

일주문을 지나자 운주문화제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오래간만에 들은 우리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흥겨운 춤사위가 온 사찰에 가득한데..... 그 와중에 눈으로는 가장 먼저 9층 석탑이 들어왔다. 9층 석탑을 보는 순간 그 큰 음악 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진 듯 느껴진다. 마치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막 귀에 꽂은 거 같다. 문화재에 대한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오리지널 원작의 힘이 단박에 느껴지는 명작이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이 9층석탑 옆에는 '연장바위'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룻밤 만에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우려 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하기 싫어진 한 동자승이 새벽이 오기 전에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석공들은 날이 샌 줄 알고 연장을 두고 하늘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천불천탑, 이 장엄한 이름 뒤에는 깊은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구층석탑(좌), 석불군 가(우)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구층석탑 인근에는 석불군 가가 위치해 있다. 두손을 모으고 있는 비로자나불상옆에 입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1984년 출토 당시 비로자나불상 뒤편에서 8~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여래입상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운주문화축제의 흥이 거의 절정에 달했다. 귀에 짝짝 붙는 익숙한 소리들이 오래간만에 들어도 낯설지 않다.

대웅전으로 향하기 전에 먼저 운주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와불을 보기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생각보다 계단이 많아 살짝 숨이 차기도 한다. 가장 먼저 거북바위라 불리는 암반위에 세워진 오층 석탑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한숨을 돌리고 좀 더 올라가면 와불이 나온다.


와불가는 길(좌), 거박바위 오층석탑(우)
운주사 와불

운주사 와불은 너비 10m, 길이 12m의 대형 불상이다. 와불의 형태를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와불처럼 가로 누운 형태가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서 있는 형태라고 한다. 그리고 와불과 지면 사이에는 결이 나 있는데 이 결을 따라 암반을 쪼갠 흔적이 발 쪽을 보면 밑에서 보인다. 이 말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암반의 결을 따라 와불을 쪼개서 나중에 일으켜 세우려했던 것이라고 한다. 만약 계획대로 되었다면 운주사 와불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높이의 돌부처가 되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와불은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천년의 세월을 이곳에 이렇게 누워있다. 이렇게 거대한 불상을 그 시대 사람들은 왜 만들려고 햇던 것일까. 제대로 된 장비도 없던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을지, 그리고 이것을 만드는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지금으로선 완전히 혜아리기 어렵다.

운주사 칠성바위와 칠층석탑

와불에서 내려오다 칠성바위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의 방위각과 유사하게 가공한 바위를 배치하고 있다. 이 바위 인근에 있는 와불이 북극성을 나타내고, 7개의 바위가 북두칠성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운주사 주변의 탑들이 주요 별자리를 상징하면서 소우주를 이룬다고도 전해진다. 무언가 우주의 신비를 품은 정말 미스테리한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롭군!

석불군

인근에 있는 석불군이 또 있었는데 석불군 가, 석불군 나...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었다. 암석을 머리에 인듯한 석불군이 이제는 귀엽게 느껴진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은 화순 운주사, 이제 대웅전쪽으로 가볼까한다.

화순 운주사 대웅전

대웅전 앞에는 다층석탑이 서 있다. 세월의 흔적이 탑에 고스란히 남아 천년의 시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지만 보기 드문 귀한 석탑이라고 한다. 대웅전과 더불어 다층석탑의 모습은 가을 날 마치 한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따.

마애여래좌상 만나러 가는 길
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

화순 운주사 마애여래좌상은 풍화작용 때문인지 많이 깍이고 옅어진 듯 했다. 자세히 보아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훼손이 되어 있었다.

운주사를 이해하려면 이곳의 돌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운주사 일대의 암석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경도가 약한 응회암 종류인데 잘 깨지고 부스러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응회암은 중생대 백악기,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와 돌덩이가 켜켜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퇴적암이다. 이 돌로 크기가 큰 일반적인 형태의 불상을 조각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훼손됐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운주사에는 여기저기 벽에 기대어 간신히 서있는 불상이나 탑들은 모두 이러한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점점 지워지고 있는 마애여래좌상은 아닌지...걱정스럽다.

담쟁이 넝쿨을 배경으로 여유롭게 앉아 있는 석불군.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장면이라 한참을 머물렀다. 자, 그러면 이제 불사바위를 찾아 산을 올라가야 한다.

불사바위

운주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불사바위는 창전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도선국사가 운주사의 수많은 석탑과 석불을 만들 당시 이 불사바위에 올라 감독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불사바위에 오르니 운주사 전체가 한 눈에 조망된다. 불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기이하다. 석탑들이 줄 서듯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면서도 낯설고 신비롭다!!

불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화순 운주사 발형다층석탑

화순 운주사의 발형다층석탑은 돌 주판알을 층층이 쌓아올린 듯한 모습이다. 정말 내가 생각한 탑에 대한 상식을 깨뜨리는 '고려의 파격미'를 보여주고 있다. 정말 석탑 하나하나에도 다 눈길이 가는 운주사 석탑들...

천년 된 국보들이 비 맞고 눈 맞는 곳 — 이게 맞나 싶은 운주사

세상 어디에도 비슷한 곳 없는 신비롭고 미스테리한 사찰, 운주사

운주사 석조불감의 양면, 앞과 뒤

석조불감은 들어오는 길에 만날 수 있지만 문화축제 관계로 들어올때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나갈때 다시 만나보았다. 불감이란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이나 방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건축물보다는 그 규모가 작은데 운주사 석조불감은 석탑들이 즐비하게 자리잡은 곳에 만들어졌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신기한 것은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같은 불상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서로 달랐다.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정말 생전 처음 보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오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석조불감을 만든 유례를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등을 서로 맞댄 감실 안의 두 불상 역시 특이한 형식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비 오는 날 운주사를 찾았다. 그리고 천불천탑 전설이 너무나 경이롭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가 「운주사, 그리고 가을비」라는 시를 쓰기도 했는데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비는 천천히 돌부처의 얼굴 위를 흐르고, 오래된 세월의 이마를 닦아내린다.”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존재로, 돌부처의 표면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세월과 기억, 인간의 무상함을 상징한다.

“부처는 잠들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본다.”

운주사의 불상들은 눈을 감고 있지만, 프랑스 시인의 눈에는 그들이 오히려 세상의 모든 고요와 덧없음을 응시하는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


운주사는 고려시대인 10세기 후반에 창건된 이래 12세기에서부터 15세기까지의 중흥기를 거치면서 '천불천탑' 도량으로 명성을 이어가다가 정유재란 직후에 폐사되었다. 그리고 2017년 3월 13일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되었다.


현재 운주사의 수만은 석탑과 석불들은 천년의 세월을 지켜 온 자리에 여전히 머물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사실 중요한 문화 유산들은 원래의 자리를 떠나 박문관의 유리관안에 갇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보존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는데 그 유적이 원래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없고, 그래서 어쩌면 지루하고 현실과 동떨어지고 단절된 유물의 모습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운주사의 귀중하기 그지 없는 석탑과 석불들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그 긴 셰월을 온 몸으로 보여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관람객들이 걸을 때마다, 비바람이 불 때마다, 세월이 흐를 때마다 조금씩 변한다.

이곳은 박물관의 유리 케이스 안에 갇힌 유물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역사다.


루브르 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중요한 박물관 안에 있는 귀중한 유적들 못지 않게 중요한, 친근하고 귀여우면서도 그저 신비롭기만한 화순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들, 더 늦기전에 만나보러 가보시는거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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