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나라 Dec 31. 2019

판타스틱 데칼코마니 야경, 동궁과 월지

판타스틱 경주여행


'경주여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늘 중학교 경주 수학여행으로 소환해버리고 만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봤던 첨성대와 안압지, 천마총, 경주 국립 박물관 등. 지루하고 피곤했던 공식 경주 일정들이 밤에 있을 친구들과의 왁자지껄 신나는 순간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더더 재미없게 추억되곤 한다. 빨리 밤이 왔으면 하는 바램과 더불어 눈에 총총히 들어왔던 첨성대, 안압지의 모습은 우리나라 옛모습 그 자체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다고 경주여행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으나 경주가 '판타스틱'하다거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11월, 이제는 겨울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느 늦은 가을 날. 동궁과 월지에 다녀왔다. 동궁과 월지(안압지)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입구 주차장은 이미 차를 세울 수 없을 정도였고 멀리 떨어진 곳에 간신히 주차하고 도착한 매표소는 또 인산인해. 우왕좌왕 표를 사고 줄을 섰고 입장을 한다. 야경이 멋지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니....어디랄것도 없이 인파를 따라 흐르고 흘러서 동궁에 도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궁궐유적으로 신라의 태자가 살았다는 곳이다. 왕이 살았던 월성과도 꽤 가까운 곳. 신라때는 이곳에 수십개의 전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달랑 3개의 전각만이 복원되어 서있다. 그리고 월지는 동궁을 둘러싼 인공호수. 잘 알려진 것처럼 풍류와 연회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야경을 보러 몰려온 사람들


멀리 보이는 전각이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마치 불나방들처럼 우르르 불 켜진 동궁으로 몰려간다. 아래에서 위로 센 빛으로 비추어진 전각은 기왓장 아래 갈비살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궁과 월지의 그 유명하다는 야경은 이것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동궁과 월지의 찐 야경은 무엇일까.


사람들로 정신없는 틈에 전각 안을 대충 둘러보고 서둘러 월지를 끼고 코너를 돈다. 코너를 도니 새로운 신세계가 펼쳐졌다. 우와! 이거였어. 완전무결하게 백퍼센트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고풍스런 고대 건축물이 좀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똬아~나타났다. 이럴수가 있나. 심지어 사진을 뒤집어도 똑같다니!!!

연못 위에 있는 전각이 연못 속에 거꾸로 쳐박혀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똑같다. 색감까지 그대로 살아있으며 서 있는 사람들까지 거꾸로 연못 속에 들어가 버린 것.




정말 판타스틱한 풍경이다. 우리나라 옛 건축물들이 이렇게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었나 싶다. 늘 익숙한 색감과 모습이어서 안봐도 훤히 그려지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지금 이 야경은 보고 또 봐도 새롭고 신비롭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몽상에 사로잡히게 하는 마력을 뽐내고 있었다. 동궁의 살짝 들어올려진 처마가 아래서부터 온 몸으로 받아들인 빛을 깜깜한 하늘 쪽으로 슬쩍 무심한 듯 끌어올린다. 이로인해 날렵하지만 과하지 않은 곡선의 미학이 살아나며 오래된 건축물에 누구도 범접치 못할 우아한 카리스마를 한껏 선사한다. 이런 야경에 서양의 건장한 석조 건축믈들은 재미가 없을것이다. 주변의 나무들도 역시 위아래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며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물에 비취진 전각의 색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


담벼락도 그대로 연못속으로
나묻르도 연못속에 머리를 박고



세상 어디에 이런 야경이 또 있을까 싶다. 새까만 하늘과 새까만 연못이 완벽한 대비를 이루며 그 안에 전각을 위아래로 담아버렸다. 그 밤에 만난 동궁의 모습은 고대 건축물로 늘 보아왔고 늘 예상해왔던 그 모습이 절대 아니었다. 연못을 만나서 아름다운 불빛을 입어서 판타스틱하게 다시 태어난 것.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오롯이 혼자서 멋진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멋진 사진을 건져보리라.

태어나서 처음, 우리나라 기와지붕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입덕해 버린 듯.

너무 흔들림 없이 도도하게 서 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 아니 사진같이 느껴진다. 입체감이 사라지고 평면적으로 굳어버린 묘한 느낌이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는 진짜인지 확인해보러 연못 물에 발을 디딜수도 있겠다 싶었다.

멋진 야경과 더불어 우리나라 목재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 곳.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차가운 공기와 더불어 도도하고 시크하지만 한없이 우아하게 판타스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겨울이 되어 월지가 꽁꽁 얼어붙기 전에 꼭 한번 그 매력이 빠져보시기를. 야경의 신세계를 영접할 것이라 확신하다.



2019년 많은 추억을 남겼던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곧 '2020'년 이라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겠지요.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소망하고 계획했던 일 꼭 이루시는 멋진 한 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래스카 크루즈, 어떻게 예약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