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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Jan 28. 2021

어쩌다, 하동

섬진강따라 백리길(평사리공원,송림공원,하동포구공원,선소공원, 수변공원)



칼바람과 강추위가 교차하는 한겨울 엄동설한, 어쩌다 어쩌다 하동에 흘러들었다. 엄동설한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에 꼭 떠났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모른다. 어쩌면 떠남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추운 한겨울에도 따뜻하고 아름답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동으로 향했다. 떠나는 순간, 떠남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신선했는지... 허파 깊숙히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는 칼바람도 최소한 이 순간 만큼은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동은 백두대가의 끝자락, 거대한 지리산을 머리에 이고 옆으로 기다랗게 섬진강을 끼고 있으며 발치에는 남해바다를 디디고 선 아름다운 곳이다. 초록은 커녕 아예 색감 자체가 빠져버린 그저 무채색의 산들이 채도를 달리하며 눈앞에 겹겹이 펼쳐져 있다. 산 넘어 산 넘어 산 넘어 산 넘어 산.산.산. 초록이었다면 얼마나 이뻤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머리 속에 아예 또아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겨울도 나름 매력있어!라고 외치며 '정신승리'해본다. 그래, 겨울여행에서는 '정신승리'가 필요하구나. 


하동 여행의 시작, 최참판댁


항상 그렇듯 낯선 곳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곳은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곳이다. 쨍하게 맑은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가졌지만 기온이 차디찬 날, 손을 호호 불며 '하동'하면 떠오르는 최참판댁으로 향했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무대로 한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다. 소설속 배경이 되었던 최참판댁은 사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건축물이 아니라 그저 드라마 세트장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진짜 잘 꾸며져 있지만 뭔가 영혼이 빠진 느낌이 없지않아 있다. 진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아니라서 그런지 감동도 덜하다. 요즘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만큼 딱 그정도의 흥미를 가지고 돌아보았다. 이곳의 백미는 집이 아니라 이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다. 평사리 들판이 발 아래에 펼쳐지고 있어 마치 이 집이 저 너른 들판을 호령하는 듯 위엄이 느껴진다. 얼른 저 들판으로 내려서고 싶어진다. 마음이 급해진다.


파란 하늘과 노란 빛, 색감이 아름다운 집


사실 한겨울 평사리 들판은 당황스럽다. 자신의 민낮을 보여주다 못해 속살까지 다 갈아엎어져있는 상황이다. 섬진강이 만들어낸 평평한 비옥한 들판이 시커면 속내를 드러내며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상황. 멀리서 부부송이 다정하지만 몹시 추워 보이게 우뚝 서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둘이 되기도, 하나가 되기도 한다. 평사리 들판에는 동정호도 있다. 이쁜 정자와 여름이면 아마도 이뻤을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사진찍기 좋다. 겨울에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위안을 하고 보면 나름 괜찮은 풍경이다. 아 또 정신승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 그래 겨울임에도 멋진 풍광이야.


평사리 들판에 있는 부부송
동정호


평사리 들판을 가로질러 평사리 공원에 도달하면 영롱하게 빛나는 물살과,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은모래사장이 내 발 아래 펼쳐진다. 섬진강이다. 우와. 아무리 겨울이라하더라도 섬진강의 멋지고 아름다운 자태는 숨길 수가 없다. 강변에 이렇게 모래가 많았던가. 섬진강변을 감싸는 은모래는 살짝 알이 굵은 설탕처럼 살짝 즈려 밟았을때 설컹하면서도 바삭거리는 느낌이 난다. 아 아름다운 모래밭이 사하라 사막처럼 넓게 펼쳐져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섬진강을 만난다. 햇빛을 한껏 받아들여 반짝 반짝 빛나는 섬진강은 경쾌하다. 물소리가 시원하게 귓가를 적시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러간다. 아름답구나! 최소한 섬진강 강가에서 만큼은 정신승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진짜 진짜 아름다우니까.

 

은모래 위에 섬진강물이 흘러간다~너무 맑아 물이 보이지 않는다능;;


대나무숲이 비추어진 섬진강


사하라 사막이 아니라 섬진강 은모래 해변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의 고퀄 페어링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을 따로따로 만나보았다면 이제는 이 둘을 함께 페어링할 시간이다.

스타웨이 하동을 가기 위해 산을 올라가면 스타웨이 하동이 나오기 바로 직전 전망대가 나온다. 차를 몇대 세울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곳에서 드디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된다. 그저 감탄사만 연발하게 되는 아찔하게 멋진 풍경이다. 평사리 들판은 누가 다림지을 한듯 정말 평평했고, 섬진강은 은모래를 옆에 끼고 유유히 흘러간다. 보기드문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이곳에 온 가치가 있는. 1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평사리 들판은 완전 무채색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초록의 기운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양파를 물에 올려 키우면 나오는 싹 같은데....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좀더 초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2월달만 되어도 제법 초록이 모습을 드러낼것 같은 느낌.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의 고퀄 페어링
하동군 마을들을 품고있는 겨울산


자세히 보니 겨울산은나름의 매력이 있다. 풍성하게 감싸주었던 나뭇잎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 오롯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이 가진 굴곡과 볼륨감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어 다소 생경하다. 원래 산이 저런 모습이었구나. 뱅그르르 둘러싼 산들 아래 살포시 내려앉아 하동군의 마을들. 내가 있던 악양면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뭔가 아늑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런 곳.


이 전망대에서 조금만 더 가면 스타웨이 하동이 나온다. 정말 기가막히게 좋은 자리에 들어서 있다.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의 페어링을 가장 좋은 각도에서, 가장 풍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는 삼천원. 카페도 있는데 카페이용하면 천원 할인. 커피값이 비싸다. 그래도 지리산, 섬진강과 함께하는 커피맛은 최고다. 하필이면 이곳에 가는 날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



카페
섬진강은 아름답다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구비구비 여유있게 돌아흐르는 섬진감은 정말 정말 멋지다! 하동에는 이 멋진 섬진강과 함께하는 는섬진강 100리 테마로드가 조성되어 있다. 하동쪽 걷는 길과 광양쪽 자전거길을 합쳐 100리길(41.1km)다. 하동쪽은 화개장터에서 시작해서 송림공원까지 20.9km로 마음만 굳게 먹고 날씨만 좋다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엄동설한이라 완주를 하진 못했지만 구간구간별로 차로 이동하며 짧게 걸어보니 너무 멋진 곳이 많다. 새순이 올라오는 봄날, 벗꽃을 머리에 이고 섬진강은 옆구리에 둘러끼고 싱싱한 공기를 흡흡 맡아가며 이 길을 걷고 싶다.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끝 송림공원
송림공원-한 겨울에도 푸르르다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의 마지막 장소는 송림공원이다. 송림공원은 백사청송으로 말그대로 은모래와 푸른 소나무 숲이다. 아름다운 섬진강변에 정말 빽빽하고 품격있게 한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숲이 자리잡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소나무가 800그루가 넘는다고 하니 송림공원 존재자체가 명품중의 명품이다. 이런 길을 걷는다는 건 정말이지 축복이다. 이곳에 서면 잠시라도 한겨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멋진 곳.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는 송림공원이 제일 하구쪽으로 마지막 코스지만 다시 이곳 송림공원에서 하동포구공원, 선소공원을 거쳐 수변공원까지 14.8km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축복같은 아름다운 길이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길들은 정말 작정하고 걷기 좋은 길로 만들겠다라는 강한 의지가 보이는 길이다.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는 느낌.


섬진교가 이쁘게 보이는 하동포구공원


하동 섬진강변에서 특히 좋았던 곳은 갈대숲이다.하동포구공원과 선소공원 사이에 있는 곳으로 지나가다 너무 멋져 무작정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갈대숲이 참 그림같이 아름다웠고 그 옆으로 난 나무 데크길도 좋다. 한겨울이지만 이날은 그리 춥지가 않은 날씨여서 아름다운 풍경에 스며들며 산책을 즐긴다. 간간이 조용한 갈대숲에 새들이 우루루 날아간다. 좋구나! 갈대숲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가본다. 이 길은 남파랑길이기도 하나보다. 군데 군데 리본이 붙어있다. 갈대숲을 만끽하면 걷다보면 겨울에도 담록색을 뿜뿜하는 대나무 숲이 나온다. 어찌나 대쪽같이 쭉 뻗어있고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지 대나무 숲 안쪽은 캄캄하다. 겨울이라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곳. 



섬진강변 갈대숲
새들이 우루루 날아다닌다
그림같은 풍경
갈대숲 옆 나무 데크길
나무데크길 끝 대나무 숲
대나무 숲 강변
색감이 이쁜 대나무 숲


갈대숲을 지나 수변공원쪽으로 계속 걸어내려간다. 게이트볼장을 지나면 조개섬이 나온다. 조개섬을 들어가는 길은 온통 재첩 껍질로 덮여있었다. 신기하다 강변에 조개.


조개섬가는 길 위에 덮인 재첩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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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사방이 점점 더 흑백으로 변해간다. 만약 하동에서 멋진 일몰을 보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선소공원에서 수변공원으로 걸어가다보면 섬진강폭은 점점 넓어지고 겹겹이 둘러싼 산들은 점점 더 낮아진다. 시원하게 시야가 넓어지며 어느순간 해가 떨어지는 것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게 된다. 아름답다 진짜로. 모든 사사로운 생각을 뒤로하고 오로지 이 풍경에만 집중하게 하는 매력, 아니 마력이 있는 곳. 딱 여기까지. 여기서 더 욕심을 내어 내려가다보면 어느순간 갑자기 광양쪽 수많은 공장의 굴뚝을 만나게 된다. 헉...당황스러웠다. 인생도, 풍경도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 욕심내지 않는 걸로.




여행메모: 섬진강변 각 공원마다 무료 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편하다. 섬진강 백리길 테마로드 중간중간 쉴만한 곳들도 많다. 단 화개장터 주차장은 1시간만 무료. 송림공원 건너편이 하동읍이고 하동읍과 화개장터 사이에 버스가 다닌다. 3월말, 4월초 섬진강 백리 테마길 하동쪽이 벚꽃으로 뒤덮이고, 3월초에는 광양쪽 매화꽃이 아름답다고 한다. 이때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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