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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Jan 29. 2021

한겨울, 하동은 멋있고 맛있다

쌍계사에 눈이 내리면, 봄날 소환 하동차밭, 하동대봉곶감



한겨울 하동에 펑펑 눈이 내렸다. 

여행지에서의 눈은 춥지만 않다면 반가운 존재다. 특히 겨울에는 더 그렇다. 앙상하게 드러낸 겨울의 속살들을 하얗고 폭신하게 덮어줄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린다. 아마도 하동에서는 흔하지 않은 풍경일지도 모른다. 눈이 오면 어디가 가장 멋질까. 비 오는 날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는 쌍계사로 향한다. 눈 덮인 지리산이라니. 생전 처음이다. 악양면에서 화개장터에 이르는 19번 도로는 이미 눈이 녹았지만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오르는 길은 여전히 도로에 눈이 쌓여있다. 양쪽편으로 야생차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을텐데 그 차밭을 함박눈이 모두 삼켜 버렸다. 온통 흰 눈이 점령한 세상이다. 유후~


쌍계사 일주문


쌍계사에 눈이 내리면


쌍계사 일주문에 도착하니 길이 아닌 곳은 발목까지 쑥쑥 빠져버린다. 고개를 들어 보니 뼈대만 남은 나무에 눈꽃이 활짝 피어 모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아주 가느다란 나뭇가지에도 공평하게 살포시 눈이 내려 앉았다. 너무너무 사랑스런 풍경이다. 이런 눈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오늘만큼은 아무리 겨울여행이라 하더라도 '정신승리'따위는 필요없다, 이 풍경이야말로 한겨울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것. 겨울여행자가 승자가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런지.


대나무에 눈이 내려 서늘한 느낌이다
천왕문


쌍계사는 723년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한 절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화엄사에 비해 소박하고 친근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찰. 다른 사찰과 달리 쌍계사는 경사가 급한 비탈진 곳에 세워져 있고 다소 좁게 느껴지는 공간에 비대칭으로 건물들이 배치되어 공간 자체가 흥미를 자아낸다. 마치 큰 한옥집에 들어가는 듯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타박타박 계단을 몇개 올라가면 곧바로 금강문이 나온다. 대숲에 쌓인 눈을 올려다보며 아치형 작은 다리를 건너면 천왕문. 천왕문을 지나면 팔영루가 나온다. 일자형으로 주욱 배치되어 있어 하나씩 통과하는 맛이 있다. 팔영루에 다다르면 누구나 한박자 쉬고 하늘 위로 높이 뻗은 9층 석탑을 바라보게 된다. 9층 석탑에 가려서, 혹은 비탈진 경사때문에 대웅전이 한 눈에 쏘옥 들어오진 않는다. 하지만 그게 더 매력이다. 

팔영루 처마 밑은 한박자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대웅전을 조망하면 뒤로 지리산의 멋진 기세와 대웅전 지붕과 9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한컷 장면을 완성한다. 요걸 볼 수 있는 자리. 팔영후 처마 밑. 쌍계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좋고, 날씨가 맑으면 맑은대로 좋다. 눈이 오면...이것도 정말 색다르구나.


쌍계사 9층 석탑
함박눈을 품은 나무들
쌍계사 대웅전


한바탕 내린 눈으로도 부족했는지 함박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한층 더 아름답지만 내려갈 생각에 발걸음이 급해진다. 눈 쌓인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여기에 탐스런 눈이 다시 내리니 이런 풍경 언제 다시 마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다음 번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뒤덮인 모습으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얼른 하산한다.


일주문


화개면 야생차밭 


날이 눈부시게 좋은 날. 화개면을 다시 찾았다. 야생차밭을 보기 위해서다. 눈 덮인 차밭은 마치 흰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함박눈 두터운 옷을 가차없이 벗어버린 차밭은 그야말로 봄날이 소환된 듯 아름다웠다. 겨울에, 그것도 엄동설한에 초록이 웬 말인가. 한겨울 하동여행에 대나무와 차밭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르는 아름다운 길 양옆으로는 차밭이 천지다. 쌍계사를 향하며 왼쪽으로는 화개천과 차밭, 오른쪽으로는 구릉지에 차밭이다. 차밭은 대부분 다원을 끼고 있어 차 한잔 음미하기에도 좋다.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좀 더 깊이 들어가도 계속 차밭이 이어진다. 생각보다 큰 규모다. 



섬진강의 지류인 화개천 주변으로 정말 차밭이 지천이다. 차밭하면 보통 '보성차밭'을 떠올리게 된다. 대규모로 정말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차밭이다. 그에 비해 이곳 화개면의 차밭은 야생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진짜 '차의 밭'인 느낌이다. 주변의 모습과 잘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모습. 차를 타고 가다 맘에 드는 차밭 앞에 차 를 세우고 차밭사이를 걸어본다. 정확하진 않으나 보성차밭의 차보다 이곳의 차가 높이가 낮다. 위로 올라갈수록 전망이 좋아진다. 겨울이라 '초록'만으로도 기분이 급상승된다.


초록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차밭


거의 낮은 산 하나가 다 차밭인듯하다. 차밭 사이 걸어가기 좋게 길이 나 있다. 산책하는 맛이 정말 쏠쏠하다. 



겨울에 이 정도의 초록이라면 봄이라면 어떨까. 여기 하동 차밭은 벗꽃이 지고 나면 차를 딴다고 한다. 정말 쉴 틈을 주지 않고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뼛속까지 아메리카노를 원하지만 가끔은 차향을 음미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동 대봉곶감
 곶감은 곶감인데...곶감맛이 아니다. 천상의 맛이다


내가 묵고 있는 하동군 악양면운 곶감이 유명한 곳이다.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신 곶감을 먹어보라고 주셨는데...색감은 다소 어두웠지만 맛은 정말 끝내줬다. 평소 곶감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곶감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동곶감은 대봉감으로 만드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이즈가 크고 실하다. 그리고 보통 곶감이 유황으로 훈증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주신 곶감은 유황훈증을 하지 않아 다소 색이 검다고 한다. 유황훈증을 하면 곶감이 주황색으로 아름답게 보인다고 하는데...여태 내가 먹었던 곶감은 유황훈증 곶감이었나보다. 하여간 하동곶감은 정말 진하게 맛있다. 가운데 부분이 조청처럼 진득한데 정말 달고 달면서도 달지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으면 천상의 맛이다. 사실 이 곶감을 먹을때는 정말 다이어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청난 칼로리일텐데 천상의 맛 앞에서 다이어트는 길을 잃었다. ㅜㅜ


대봉감으로 만든 대봉감말랭이도 정말 두툼하고 쫀득하게 맛있다. 곶감처럼 극강의 강렬한 맛은 아니지만 한번 손을 대면 자력으로는 끊을수 없는 맛. 누군가 봉지 입구를 막아야만 멈출 수 있다. 그리고 또 아주머니가 주신 단감 피클. 와우! 진짜 새콤 달콤 아삭, 이 3종세트가 입안을 사정없이 어택하면....신세계가 열리고 만다. 어찌 이리 상콤한지 원....하동을 다녀와서 '감'에 입덕하고 말았다. 단감 사다가 내가 한번 만들어 볼까 생각중이다 겨울 하동은 정말 맛있는 곳. 겨울여행이 점점 좋아진다.



대봉곶감
단감 피클과 대봉곶감






여행 메모: 1. 쌍계사-불일폭포 구간이 가벼운 등산으로 좋은데 겨울에는 금지.

2. 화개면에 많이 있는 다원을 방문하면 차를 한잔 마시고 딸려있는 차밭을 구경할 수 있다. 물론 화개천 주변에 있는 차밭은 모두 내눈으로 들어오니 구경은 자유. 겨울이라 그런지 길가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성수기에는 힘들듯. 화개장터 앞 주차장은 한시간만 무료다. 화장실도 깨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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