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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 뱃살은 제 작품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살쪄있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by 집에서 조용히

"너 언제 살 뺄 거야? 그 뱃속에 다 병들어있는 거야!"

"너 얼굴은 그게 뭐야? 병원에 가 봐! 분명 무슨 병일 거야!"


시어머니가 뾰족하게 날이 선 말투로 아들에게 소리다.

아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데 선수인 걸 아실 텐데도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시겠나 보다.

사실 거기까지는 나도 어머니 편이었다.

살 빼고 자기 관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래서 어머니말씀에 맞장구를 치고 살짝 거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얘기가 좀 이상하게 흘러갔다.


"결혼하기 전에 같이 살 때는...

내가 아침마다 양배추 도시락을 싸주고

달걀, 고구마를 삶아서 싸줬는데

쟤가 결혼하고 나더니 저렇게 살이 찐 거야!"


듣자 듣자 하니 기분이 나빠진다.

타고난 체질을 지금 제 탓으로 돌리시는 건가요?



어머니는 처음부터 말씀하셨다.

본인은 자기 아들을 닦달해 '살을 쏙 빼게 만드는 며느리'를 원하신다고.

갓새댁일 때는 그 말씀에 부응하려 다이어트식단을 차려보았지만 어머니의 양배추 도시락에 질릴 때로 질려버린 그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양배추찜'이라고 했다.

그 뒤, 내가 뭘 차리든 자기가 먹고 싶은 건 사다 먹는 성격이라 식단관리는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행복하려고 결혼했지.

어머니 아들 살 빼게 하려고 결혼했나?


어머니 아들은 비만 빼고는 장점이 훨씬 많은,

내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남편이다.


상상이 안되지만 아주 어릴 때는 너무너무 말랐었다고 한다.

그래서 녹용을 먹였다고 한다.

왜 살 좀 쪘다 싶은 사람들은 다 녹용을 먹었을까?

녹용을 먹으면 다 살찐 자가 되는 건가.


어느 날,

"제가 보기엔... 땡씨 집안에는 '비만유전자'가 있어 보여요"

라고 시누이네까지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가

다들 발끈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말았다.


그래, 그게 아니라면 그가 살이 찐 원인은 아마도

스트레스성 폭식이었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아들을 야심가로 키우려 했던 엄마의 열정 섞인 잔소리와

타고난 식탐 약간(?)이 원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조금 먹는 줄로 아시지만,

지금이 맛있는 때라며 꼬박꼬박 제철 음식들을 챙겨 드신다.

신혼 때는 달마다 제철 회를 찾아 먹어,

서울에 바다가 있는 줄 알았다.


기본 식사에서도 메인요리를 두세 가지씩 차리시면서

"아까우니까 다 먹어라" 하시고는

"저 배 나온 것 어쩌냐..." 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반복하신다.


40대 후반의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가 이제는 옆에서 듣기에도 거북하다.

더군다나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그러시니 더욱 말이다.

그래도 참고 듣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화살이 내게로 날아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이것 봐! 결국엔 내 탓이라는 거잖아? 그러니까 좀 잘해봐아아"


"이것 봐!" 할 때 그를 보고 한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톤이 너무 높이 올라가 버렸다.

너무 솔직해 버린 것이다.

순간 '아차' 싶어 그다음 말은 톤을 낮추려고 해 보았지만

이미 '솔라시!'까지 올라간 음은 자연스럽게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이라도 다정하게 "잘해봐아아아아"

노력해 보았지만,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그때 갑자기 어머님의 화살이 아버님께로 날아갔다.

뜻밖의 전개지만 나로서는 다행이면서 한편으론 조금 아기도 했다.


그래서 조용히, 집에 와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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