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BTS와 철학자들
누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아이의 등굣길, 차 안에서 아이가 선곡한 곡이었다.
가사를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뭐를 다 계속 태우라고 했다.
‘뭘 저렇게 태우라고 난리지?’
그게 그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들은 바로, 우리 딸의 사랑을 듬뿍 받던 청년들, 방탄소년단이었다.
‘불타오르네’를 듣던 딸은 사춘기를 앞두고 있었고,
이는 곧 나도 그 격동의 시기를 헤쳐나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처음이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벽에 붙은 포스터의 그 뽀얀 얼굴들을 보며,
최소한 저들의 이름을 다 아는 것이 그 준비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랩몬스터라고? 얘는? 슈가? 설탕이야 뭐야? 제이홉은 또 뭐니. 오 마이 갓, 이름이 V뷔? 지민? 정국과 진. 그나마 평범한 이름들도 있네? 그런데 얘랑 얘는 똑같이 생겼다?”
“으, 뭐가 똑같이 생겨! 아유 답답해.”
당연히 쉽지 않았다.
이히 리베 디히를 부르던 신승훈의 팬질을 조금 하다가, 그룹이 등장하던 시절부터 음악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던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일곱 난쟁이도 아니면서 다 비슷하게 생긴 일곱 청년들을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당연히 한 번에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잘 들어가지 않는 정보를 억지로 욱여넣고 그 정보들이 아직도 잘 들어있나 며칠에 한 번씩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젠 조금 알 것 같아. 다시 해보자. 쉬운 애들부터 해볼게! 얘가 알엠! 특색 있게 생겼지. 리더라며? 제이홉도 생긴 게 개성이 있고. 슈가하고 지민도 이제 알겠어. 걔네는 눈을 보면 돼. 음, 나머지 세 명은 쉽지 않아. 뷔는, 턱선이 꽤 날카로웠던 것 같아. 얜가?”
“맞아!”
“오! 그럼 진하고 정국이 남았네. 얘네가 제일 어려워. 정국이 약간 더 귀엽게 생겼던 것 같기도 하고, 진은 뭐랄까. 흠 없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얘가 정국이닷!”
“오, 맞아! 엄마 이제 제법인데?”
그렇게 기분 좋은 칭찬도 없다.
칭찬은 엄마도 춤추게 하는지, 뭘 그렇게 낄낄거리며 유튜브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잔소리 대신 궁금해서 슬쩍 옆에 앉게 되었다.
그러다 깜짝 놀랐다. 겨우 연결했던 얼굴과 이름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체격도, 말투도, 목소리도, 표정도 그렇게 각자 다를 수가 없었다.
“세상에! 유튜브였네! 진작 볼걸! 이거 하나만 봤으면 금방 다 외웠겠다! 다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그걸 구분을 못 했을까!”
캐릭터가 살아나니 목소리가 구별되고, 목소리가 구별되면서 가사도 귀에 감기기 시작했다.
힙합 청년들인 줄 알았더니 발라드도 많이 불렀다.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노래에 한 번도 정을 붙여본 적 없는 내가, 노래는 곧 죽어도 발라드라고 고집 피우던 내가 그들의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를 분석했고, 그들의 일상 브이로그에 빠져들었다.
유튜브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하던 엄마는, 도대체 내가 그런 헛소리를 했단 말인가 머쓱해하며, 종일 유튜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일곱 청년들은 노래도 잘했고, 춤도 잘 췄고, 상도 많이 받았다. 유엔에서 연설을 하더니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다. 12만 석의 스타디움 콘서트를 몇 분 만에 매진시켰고, 미국에서, 영국에서, 브라질에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아미(Army, BTS 팬클럽)들이 한국어로 떼창을 했다. 뭐 이런 아이돌이 다 있나, 하는 놀라움으로 시작해 나는 점점 그들에게 빠져들었다.
“엄마, 이 노래 알아?”
“어, 알아. 벌써 찾아들었지. 잠깐만, 진 목소리잖아. 뭐더라? 맞다. Awake!”
오 마이 갓! 을 외치며 찡긋 웃는 아이의 눈빛은 이제 우리는 함께 아미라는 인정의 눈빛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지민에게 빠졌다. 그 귀여운 눈빛, 매력적인 목소리, 황홀한 춤 선.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지민은 나를 매혹시켰다. 지민이가 불뚝불뚝 팔 근육을 드러내고 눈 밑까지 아이라인을 까맣게 칠하고 나를 보며 ‘너 지금 위험해!’(노래 ‘Danger’ 가사 중)라고 노려보는데,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그래, 이렇게 빠져들다간 위험하지, 정신 차려야지, 싶다가도 자기 전에 우리 지민이 얼굴 한 번 보고 잘까 싶어 이불속으로 폰을 들고 들어갔다. 기분이 안 좋으면 지민이 얼굴로 힐링해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또 유튜브를 열었다. 하지만,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말이 필요 없고, 이쯤에서 유튜브 댓글들을 살펴보자.
‘딸이 좋아해서 딸과 소통하기 위해 방탄 노래를 들었지만 지금은 제가 좋아서 들어요. 삶의 위로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가사들이 너무 좋아요.’
‘제 나이 45에 지금은 방탄 없는 삶은 생각해볼 수 없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정말 힘들 때 웃게 해 주고 위로해주는 우리 방탄이들 항상 응원하고 사랑해.’
‘가사 하나하나 새겨듣기도 하고 때론 위로를, 격려를 받는 기분입니다. 오십 대 아줌마가 방탄의 현재를 미래를 응원합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bts를 알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방탄이들에게 빠져 버렸네요.... (50대 남자입니다.) 멤버들 대부분 제 아들 또래고요. 참 바른 청년들인 것 같아서 좋습니다. 집사람한테 늙어서 주책이라는 말도 듣지만 전혀 창피하지 않습니다. 저한테 아직 20대 감성이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노래들 하나하나 너무 좋아요... 그리고 우리 탄이들 세계가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언젠가 콘서트 한번 보러 가고 싶은 50대 아저씨가.’
‘10대에 음악 듣고 감성에 빠지던 그때로 돌아갔다. 내 나이에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발라드 모음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난다. 전 53세 사업가입니다.’
‘우리 시어머님이 최고령 아미실 듯, 78세. 유튜브로 방탄의 모든 걸 알고 계시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서로 아는 정보 공유해요.’
이런 댓글들을 읽으며 툭하면 혼자 눈물 바람이다. 아유, 왜 우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된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영어로, 스페인어로, 불어로 전 세계에서 그들에게 열렬히 사랑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은 어쩌다 이 청년들을 알아서, 자막도 없는 한국어 영상에,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날이면 날마다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일까. 너희 때문에 행복하다고, 위로를 받았다고, 너희 말대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그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말이 유행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다.
누구나 알지만 가볍게 여겼던 그 말을, 이제는 그들 덕분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에, 그들 덕분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아진 것일까. 그렇게 세상은 조금 더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씩씩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의 평화, 거대한 질서’(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가사 중) 도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일 테니까. 그렇게 BTS는 오늘도 열심히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상품으로써의 아이돌로만 존재하지 않고,
철학하는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공부하고 철학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그 사회 안의 자신에 대해, 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에 대해서 말이다.
그 고민의 결과가 그들의 가사고 노래고 그들이 보여주는 삶이다. (사랑한다, 그들의 브이 라이브) 그렇게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사는 게 힘드냐고, 같이 고민하자고. 인생이란 뭘까, 훌륭한 삶이란 뭘까 같이 생각해보자고. 슬프면 같이 울고, 기쁘면 같이 웃자고. 하지만 그전에 말한다.
심지어 그 말을 얼마나 멋지게 하는지, 듣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내용을 담는 그릇 또한 가히 세계 최고다. 그들의 칼군무를 보면, 또 철학하게 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인가, 지금 내가 유튜브로 보고 있는 그들인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불러야 하고 또 부를 수 있는가. 그들의 춤이 예술이고 그들의 무대가 예술이다. 감동의 눈물로 마음이 정화된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그들이 흘린 땀을 생각하면 나 역시 한 번 더 힘을 내게 된다. 영감을 얻고, 더 많이 상상하고 꿈꾸게 된다.
“엄마 시간 날 때 이거 봐.”
딸아이가 방으로 불쑥 들어오더니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저장까지 해놓고 갔다. 매년 데뷔일(6월 13일)을 기념해 6월 초부터 멤버들이 직접 참여한 콘텐츠를 조금씩 공개하며 즐기는 페스타 Festa 기간이었다. 딸아이가 저장해 놓은 영상은 바로 그 콘텐츠 중 하나인 <방탄 다락>이었다.
‘55분? 꽤 기네. 보다 자야지.’
간식을 앞에 놓고 둘러앉은 멤버들이 차례로 질문을 뽑아 솔직하게 답하는 형식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방탄소년단의 나(ex. RM)와 나(ex. 김남준)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곱 멤버의 답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누구나 두 개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 두 가지 모습이 같아야 하는지 달라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것도 당연하고 실제로 고민도 많았다.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음악에 우리 이야기를 많이 녹여 넣으면서 비슷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대중이 좋아할 아이돌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던 그들이, 점차 그 옷을 벗어던지고 자기 다운 모습으로 무대에 선다. 그리고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들 고유의 색과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의 대답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내 모습과 그의 모습이, 각자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아내와 남편의 모습이, 처음에는 끔찍하게 충돌한다. 그렇게 폭발하고 또 잦아들면서, 결국 포기도 하고 감수도 하면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점차 서로 나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또 그 모습에 익숙해진다.
일도 다르지 않다.
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면 그로부터 내공을 쌓아 결국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조금씩, 꾸준히 방향을 틀어가야 한다. 혹은 해야 했던 그 일을 좋아하는 방향으로 틀어가야 한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답게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온갖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과 원래의 내 모습이 충돌하다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다운 엄마의 모습이 되고 또 되어야 한다.
누구도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는, 설령 엄마라는 자리에서도, 오래 버틸 수 없으므로.
그렇게 또 그들 덕분에 이불속에 누워 철학을 했다. 55분이 순식간에 지나 있었다.
그래, 그들은 그들답게 춤추고 노래하고
사춘기 아이는 사춘기 아이답게 엄마 속도 썩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나는 그냥 나다운 엄마가 되면 된다.
아이의 사춘기도 어쩌면 순식간에 지날 것이다.
아이가 이 시절을 통해 딱 하나면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서든 자기답게, 자기 삶을 꾸려가면 좋겠다.
“엄마 지민이 포토 카드 하나만 더 주면 안 돼?”
“안돼!”
“치, 넌 많잖아! 그리고 내가 앨범 두 개나 사줬잖아!”
“그래도 안 돼!”
“쳇!”
쳇, 포토 카드는 손에 못 넣어도 지민의의 목소리는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이 글도 지민이 목소리를 들으며 쓴다.
아, 나는 도대체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좋은 것인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들 말대로 내 안의 찌꺼기를 싹 다 불태우고 싶어서? 아니면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지민이 말대로 그저,
‘그냥, 그냥’ (지민의 솔로곡 ‘serendipity’ 가사 중)
그래, 좋은 데는 이유가 없다.
사춘기에도 이유는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