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쪽 끝,
트리에스테의 모닝커피

열대의 나라에서 겨울의 여행을 그리워하다

by 아리


아줌마! 여기 가리비 추가요!



그녀는 끝도 없이 가리비를 먹었다. 벌써 몇 번째 주문인지 모른다. 아무리 무한리필 조개구이집이라지만, 이렇게 한 종류만 끝없이 먹어도 되는 것일까? 괜히 가리비의 단가를 걱정하며 나는 일부러 사장님의 눈길을 피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동그란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실내 포장마차. 조개가 입으로 꿀떡꿀떡 들어갈 때마다 입김이 호롱호롱 새어 나왔다. 두꺼운 겨울 코트는 돌돌 말아 무릎에 올려놓고 가방은 그대로 멘 채였다. 신발을 끈적끈적 붙드는 시커먼 바닥에는 절대 아무것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것 중에는, 다섯 살이었는지 여섯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도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아슬아슬 앉아 연신 입을 벌리고 가리비를 받아먹었다. 겨울밤 아이를 데리고 갈만한 적당한 곳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제게도 강렬한 기억이었던지 아이는 훌쩍 크고 나서 까지 그 장면을 기억했다.


내 옆에 앉은 아이와 그 옆에 앉은 남편, 그리고 그 옆에는 까만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나의 친구와 머리가 살짝 벗어진 그녀의 파란 눈 남자 친구, 다시 나로 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다. 경기도 부천의 어느 겨울밤, 조개구이 무한리필 포장마차였다. 그녀는 파란 눈의 남자 친구를 데리고, 나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회포를 풀었다. 한국말을 잘못하는 그녀의 남자 친구를 위해 꽤 느릿느릿 대화를 하며 소주도 몇 병 마셨다. ‘아줌마, 여기 가리비 추가요!’라고 끊임없이 외치며.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입김을 후 불어 본다. 입으로 들어올 가리비는 없지만, 추억 때문에 왠지 안경이 뿌옇게 변하는 것 같다. 열대의 공기가 왠지 그때 그 포장마차 안의 후끈한 열기 같기도 하고.






몇 년 후, 다시 겨울.

꿀떡꿀떡 가리비를 받아먹던 아이는 어느새 자라 5학년이 되었고 우리는 함께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베니스에서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북동쪽 끝 트리에스테에 도착했을 때는 겨울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12월의 겨울, 하얀 눈에 덮인 유럽을 기대했지만 가는 곳마다 눈 대신 보슬비만 내렸다. 보슬비 내리던 기차역 앞에서 조개구이집의 그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꺄! 반가운 포옹을 나누고 보슬비에 안겨 트렁크를 덜덜 끌며 낯선 도시를 걸었다. 그녀의 차에 타자 그때 그 조개구이집에서처럼 다시 입김 나왔다. 비를 피해 들어선 차의 바닥은 조개구이집과 달리 깔끔했다. 가리비 소녀가 5학년이 되는 사이, 긴 머리 아가씨와 파란 눈의 남자는 부부가 되어 있었다. 트리에스테에서도 조금 더 들어간 마을 무지아 Muggia까지 어두운 밤길을 달려 그녀가 잡아준 다락방에 짐을 풀었다. 삐걱삐걱 밟고 올라간 낡은 계단 꼭대기에 천장이 낮은 아담한 다락방이 있었다. 다락방답게 하늘을 향해 난 창이 빗방울을 얹고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옆 건물의 낡은 지붕, 물에 푹 젖은 나무 기둥들이 비를 마시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엉거주춤 걸어야 했던 낮은 다락방의 침대는 포근했다. 유럽에 온 지 아홉째 날인가 되었을 것이다. 호텔 침대를 전전하다가 친구가 마련해 놓은 방에 짐을 풀고, 하얀 이불을 부스럭거리며 뒹굴뒹굴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달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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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아침이 밝았다. 비는 아침까지 내리고 있었다. 모닝커피를 마셔야지! 아침 일찍 건너온 친구와 함께 동네 산책에 나섰다. 집 바로 앞에 마을의 중심인 광장과 작은 성당이 있었다. 밤새 내린 비가 돌바닥에 고여 있어 걸을 때마다 처벅처벅 소리가 났다. 광장 한쪽에 있는 카페로 들어섰다.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잘생긴 이탈리아 남자들이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털어 넣는다는 그 바? 하지만 이탈리아 북동쪽 끝 한적한 시골 마을 바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인자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카포 인비 두 잔, 갓 짠 오렌지 주스 한 잔, 크루아상 세 개요!”


“카포 인비? 카포 인비가 뭔데? 카푸치노도 아니고 카페라테도 아니고 카포 인비?”


“응, 우리 동네에서는 카푸치노를 카포 capo라고 해. 유리잔은 비끼에리 bicchieri. 그러니까 카포 인비 capo in B는 유리잔에 담은 트리에스테식 카푸치노란 뜻이야.”


“오, 그렇구나!”


나는 괜히 카포 인비, 카포 인비를 중얼거렸다. 다음에 혼자 와도 시켜 먹을 수 있게.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우리 여기 처음 왔다는 표를 온몸으로 내며 커피를 마시고 빵을 뜯었다. 그리고 그치지 않는 보슬비를 맞으며 동네를 걸었다. 아기자기한 대문들과 앙증맞은 창문들을 보며 신발이 축축해질 때까지 경사진 마을의 골목을 오르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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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나라에 살게 되는 바람에, 가만히 있어도 꼬박꼬박 찾아오던 겨울은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가야 하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동안 찾아가지 않았더니 지금, 겨울이 몹시 그립다. 유럽 여행 때 한 번 입고 옷장에 걸려있는 코트가 눈에 띌 때마다 그날 아침의 카포 인비가 문득 떠올라버린다. 아, 가고 싶게. 그때 그 보슬비도 그립고, 그때 그 다락방도 그리워져 버린다. 친구 보겠다고 굳이 이탈리아 북동쪽 끝 무지아라는 마을까지 찾아갔던 그때 그 여행이 정말이지 그리워져 버린다. 함께 카포 인비를 마시던 그녀는 물론 부천에서 가리비를 축내던 그녀까지 속절없이 그리워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우면 또 만날 기약을 하는 수밖에. 곧 다시 만나야지! 또 조개구이? 아니면 카포 인비 한 번 더? 그건 그렇고, 이번엔 어디서 만날까? 우리 삶은 또 얼마나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래! 이탈리아 일주하기로 했지! 트리에스테에서 이탈리아 장화 코까지 차를 타고 달린 다음,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건너가 조개를 듬뿍 넣은 감바스를 먹자. 앗! 또 조개네! 좋다, 좋아! 조개로 시작해서 조개로 끝나는 이 이야기! 스페인에서도 이렇게 외칠까?


아줌마, 여기 가리비, 아니 감바스 추가요!


아, 그리고 다음 여행은 여름이면 좋겠다. 이제 그녀와 여름의 추억도 만들 수 있게.

아, 그러니까 이 코로나가 끝나면 말이야. 그래, 끝나긴 하겠지?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