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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Dec 04. 2020

속눈썹을 붙이는 마음에 대하여

일상에 쉼표를 찍고 넘어가는 의식 

    


여전히 환한 열대의 오후 여섯 시 반, 간이침대에 누웠다. 부드러운 손길이 내 눈 주위에 꼼꼼하게 테이프를 붙인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나는 괜히 심심한 손가락 발가락만 꼼지락거린다. 내 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나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렇다. 나는 태어나서 두 번째로 속눈썹을 연장해보려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아니, 사실 예뻐지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그래도 굳이 이유를 찾자면, 다시 돌아온 조호바루 일상을 제대로 시작하고 싶은 일종의 의식이랄까.      


한국에서 석 달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석 달의 시간이 무색하게 어제도 여기 있었던 것처럼 편했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한국과 조호바루의 생활이 썩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쉼표를 찍고 넘어가고 싶었다. 책의 한 챕터를 다 읽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에 잠깐이라도 앞 챕터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 넘어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나는 조금 더 선명해진 눈으로, 조금은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다시 일상을 살고 싶어 속눈썹을 붙여보게 된 것이었다.      


매번 하는 건 아니지만, 또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해 볼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특별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런 것들이 종종 일상을 정리하고 넘어가는데 훌륭한 문이 되어 준다. 예를 들면 손톱에 화려한 보석을 붙여본다던가. 맛있다는데, 그래서 먹어보고 싶은데 삼십 분 차 타고 가서 먹게 되지는 않는 인스타그램 핫 플레이스에 기어이 한 번 가본다던가, 뭐 그런 일들. 멀쩡한 속눈썹을 괜히 한 번 연장해본다던가,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눈을 깜빡일 때 오른쪽 눈가에 약간 이물감이 느껴진다. 벌써 뭔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윌리를 찾듯 희미하게 눈을 뜨면 더 길어지고 풍성해진 속눈썹이 눈앞에 간지럽게 아른거리는 그 색다른 느낌 덕분에 나는, 다시 돌아온 일상을 조금 더 색다르게 맞이해 볼 마음이 드는 것이다.        






  Photo by Hayley Kim Desig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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