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Jan 04. 2021

열대의 폭우에 대처하는 법





갑자기 돌풍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5분 전에 빨래는 걷었다. 하지만 세탁기가 덜덜덜 요란하게 탈수를 하고 있으니 5분후 다음 빨래가 다 될 것이다. 이번 빨래는 어쩔 수 없이 실내 건조. 에어컨만 더 세게 틀게 생겼다.     


어제도 이런 비가 내렸다. 하필 외출했다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와이퍼가 빗물을 쓸어내도, 정말이지 한 치 앞이 안 보였다. 얼른 라이트를 켜고 비상 깜빡이도 켰다. 백미러로 뒤를 보니 저 멀리서 마찬가지로 비상 깜빡이를 켠 차가 엉금엉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차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나의 오른쪽에 중앙분리대가 있고 (말레이시아는 차선이 반대다) 중앙분리대에 간격을 두고 우뚝 솟아있는 가로등을 기준 삼아 최대한 천천히 달렸다. 갑자기 내리는 비야 이제 적응도 되었지만, 어제는 그 정도가 심했다. 옆에 앉은 아이도 폰에서 고개를 들고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가다 멈출 수도 없고, 가로등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열심히, 엉금엉금 가는 수밖에. 어떡하냐고 호들갑 떤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그냥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속 달리는 수밖에.     



그런 상황에서도 절대 당황하지 않는 게 어쩌면 나의 장점이다. 육아를 하면서 더 강화된 점이기도 하고.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갑자기 정전이 되어 온 집안이 캄캄해져도, 차분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면 아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금방 괜찮아지겠지 뭐, 하는 편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또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 괜히 호들갑 떨면 문제 해결도 늦어지고 그 와중에 잔뜩 겁을 먹어버린 아이의 마음도 살피느라 바빠지기만 할 뿐.      


다행히 비는 점점 가늘어지다 결국 보슬비가 되었다. 우리는 변화무쌍한 열대의 날씨를 그저 한 번 더 겪었을 뿐이고, 나는 늘 그렇듯 차분했을 뿐이다. 


멋대로 변하는 것이 날씨, 너의 몫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 나의 몫이다.











Photo by Charlie Deet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속눈썹을 붙이는 마음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