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드라마를 보는 이유

그녀와 나의 교집합

by 아리





아주 오래된 드라마 <기황후>를 보기 시작했다. 뒤늦게 왜? 하지원과 지창욱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제야 그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가 있다.


아직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엄마와 공유하고 싶어 하는 딸 때문이다. 한동안은 <나의 나라>를 꼭 봐야 한다며 그렇게 나를 달달 볶았다. 나는 ‘설현? 흠, 아이돌은 별로라오. 뭐라고? 양세종? 그래? 나쁘지 않은걸?’ 하며 못 이기는 척 1회를 봤다가 그만 홀딱 빠져 16회까지 며칠 만에 후루룩 봐 버렸다.


<나의 나라>를 끝내고 겨우 정신을 차리니 딸이 또 불쑥 <기황후>를 들이민다. 심지어 이번에는 같이 보자고. 저는 벌써 혼자 몇 번이나 본 것을 엄마와 또 보자고 말이다. 이건 참, 같이 보자니 좋다고 해야 할지, 그걸 왜 보고 또 보고 앉았냐고 한숨을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이 그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며 그냥 내버려 둔다. 게다가 좋아하면 더 알고 싶은 건지, 옆에서 드라마에 집중은 안 하고 (하긴 벌써 네 번째라 했던가) 계속 고려와 원나라의 역사를 찾아보며 구시렁거리는 것도 조금 기특하다. 등장인물이 전부 실존 인물인데 저 때 황제와 황후의 나이가 열셋이라고 기함도 하면서! 열셋의 나이에 어떻게 황제가 되고 황후가 되냐는 말은 볼 때마다 한 번씩 한다. (자기는 벌써 열여섯인데, 합방은커녕 방에 갇혀 공부나 하고 있다고 은밀히 시위하는 건가!)


사실 사춘기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러니 그렇게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감사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종종 가까운 도시로 이박삼일 여행을 가 딱 붙어 있었지만, 이제는 집 밖에 나서질 못하니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각자의 방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온라인 수업을 할 때 간식을 챙겨주고, 뭐 먹고 싶냐고 꼬박꼬박 물어 정성껏 밥을 차려주는 것 말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같이 빨래를 개자고 할 것이냐, 아니면 바닥을 닦자고 할 것이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팬데믹 시대의 평화를 누리는 중이니 함께 드라마를 보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 평일에도 시간이 많으면 두 편씩, 주말에는 세 편씩 밤늦게까지 몰아 본다. 자기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 죽겠는데 발을 구르며 꾹 참는 모습도 귀엽고, 반대로 내가 물어보면 나중에 다 알게 된다며 절대 안 알려주는 모습도 귀엽다. 자기가 펑펑 운 장면에서 엄마는 우는지 안 우는지 살펴보는 것도 귀엽다. 그런 귀여운 모습도 오랜만인 것 같아서 좋다.


그건 그렇고 <기황후>는 50부작이다. 아무리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다지만, 이걸 언제 다 보나 싶은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절반이나 봤다. 문제는 절반이 넘어가다 보니 나한테 늦바람이 불어 복수에 두 눈을 불태우는 하지원과 잘생긴 얼굴에 어리바리 사고만 치는 지창욱이 눈앞에 자꾸 아른거린다는 것이다. 이미 몇 번째 보고 있는 아이보다 처음 보는 내가 당연히 더 궁금할 수밖에. 하지만 궁금해 죽겠어도 아이의 온라인 수업이 끝날 오후 3시까지는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아이는 이미 몇 번이나 봤다니 나 혼자 진도 좀 빼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애써 참는다. 옆에 딱 붙어 앉아 스포일러를 제공할까 말까 고민하는 딸의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지.


곧 또 나란히 앉아 중반을 넘어가는 이야기에 홀딱 빠질 시간이다. 하나씩 보다 보면 언젠가 하지원은 결국 황후가 되고 궁금증도 다 해소되겠지. 그럼 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에 집중해야지.


아, 이건 비밀인데, <나의 나라>도 그렇고 <기황후>도 그렇고 아이가 꾸역꾸역 들이밀어 준 드라마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 재미있었다. 이렇게 취향이 확장되는 것인가. 앗, 그렇다면 이것이 아이의 큰 그림인가. 흠, 암튼 다음번엔 뭘 들이 밀어줄지 벌써 궁금하다. 아, 생각났다. 또 지창욱이었지! 케이툰가 쓰린가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큰일이다. 얼핏 보니 딱 내 취향의 드라마 같았단 말이지! 에잇, 한동안 일은 또 다 했다.





물론 일 못한다고 이렇게 투덜거리긴 하지만, 사춘기 아이와의 접점이 많아지는 건 사실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둘 사이의 교집합을 최대한 만들어 놓는 게 앞으로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도움이 될 텐데, 그 교집합은 엄마가 들이밀어 만드는 것보다 아이가 들이밀어 만들어질 때 훨씬 효과가 좋다.


아직은 내가 보호자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삶이란 건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때 조금씩 더 빛났다. 아이의 느린 걸음에서 은행잎의 무늬를 알았고, 비 온 후 물웅덩이의 온도를 느꼈다. 점점 세지는 바람의 단계도 차근차근 맛봤고, 점점 뜨거워지는 엉덩이 밑 모래의 온도도 시시각각 느꼈다. 아이의 세계가 나의 세계를 조금씩 비집고 들어와 몸집을 키워가는 사이, 내 삶에도 반짝임이나 충만함 같은 단어들이 다시 느릿느릿 자리 잡았다.


그러니 무엇이든 점점 더 과감하게 아이에게 맡겨 볼 일이다. 한 인간이 될락 말락 부지런히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게도 가끔은 그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것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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