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홈트 하기 싫은 날
열네 살 소녀, 그녀에게는 성당 오빠가 있었다. (아, 여기서 그 열네 살 소녀는 딸이 아니고 나다) 아무튼 그녀는 다섯 살이나 나이가 많은, 성당 학생회에서 가장 고학년 오빠를 좋아했는데, 고백은 언감생심. 보고만 있어도 좋아서 그냥 쭉 보고만 있었다. 매주 열심히 성당에 다녔다.
그런데 정말 보고만 있어도 좋았을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떡볶이도 같이 먹으러 가면 더 좋았겠지. 하지만 나는 뚱뚱해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뚱뚱한 채로 고백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뚱뚱하지 않았다. 그저 통통했을 뿐.
나는 나의 통통함을 뚱뚱함으로 확대해 고백하지 못할 핑계로 삼았다. 그리고 나중에 살 빼면 고백해야지! 그땐 좋아한다고 말해야지! 같이 떡볶이도 먹으러 가자고 해야지! 생각만 했다. 그러니 열네 살 소녀의 첫사랑에 진전이 있을 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허무하게 낭비해 버렸다. 나는 꽤 오랫동안 통통했고, 그 오랫동안 ‘살만 빼면,’의 자세로 삶을 대했다. 그때가 제일 이쁜 줄도 모르고.
하지만 살만 빼면! 고백할 거라고 매일 다짐하면서도 진짜로 살을 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큰일 날 일이었지. 살을 빼면 진짜로 고백을 해야 하니까. 통통함은 내가 고백을 미룰 수 있는 아주 좋은 핑계였으니까. 노력해서 살이 빠져버리면 진짜로 고백을 해야 하니까. 진짜로 고백하고 싶어 질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고백했다가 보기 좋게 뻥 차일 수도 있으니까.
그 대신 나는, 고백하지 않고 오래 혼자 좋아한 다음,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마음이 거의 식은 후, 여전히 통통한 채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오빠 오래 좋아했는데 알았어요?”
“어, 몰랐어.” (당연하지 말 한 번 제대로 안 붙여놓고 알길 바라는 게 웃기잖아!)
“그냥 그랬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아, 그랬구나.”
그 이후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고백했다는 사실만 중요했다. 성당 앞 내리막길 나무 그늘에서 단둘이 걸으며 건넨 말이었다. 그렇게 쿨하지도 않으면서 쿨한 척, 내 곁에 있어 보지도 않았던 그를 떠나보냈다.
열다섯 살 아이와 잠시 떨어져 지내고 있을 때, 아이가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오늘은 하기 싫어. 힘들어.”
“응, 그럼 하지 마. 몸에도 휴식이 필요해. 그때는 푹 쉬는 게 더 좋아.”
“어제도 안 했는데 괜찮아?” (이 완벽주의는 누구에게 물려받은 것일까? 나다.)
“응, 괜찮아. 하기 싫을 때는 좀 쉬어도 돼. 몸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서 하기 싫은 걸지도 몰라. 몸 상태는 괜찮은데 하기 싫은 것과 정말 못 움직일 것 같은 때가 있잖아! 몸의 소리를 듣고 그에 따르면 돼. 걱정하지 마!”
“응, 알았어.”
여전히 울먹이며 딸이 전화를 끊었다.
열다섯 딸은 매일 밤 조금씩 요가 매트 위에서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석 달 동안에도 그렇게 아글타글 운동을 하다가, 어느 날 밤 그렇게 울먹이며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이 녀석 참 잘 컸다. (다시 말하면, 내가 참 잘 키웠다.) 나는 어렸을 때 몸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거 못했는데, 어쩜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몰라. 내가 보기엔 귀엽게 통통할 뿐인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매일 밤 요가 매트를 펴고 유튜브를 틀어놓고 낑낑대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그게 운동이든 뭐든 목표를 세우고 지키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내가 그 나이 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운동이라 더 좋았다.
내게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오직 마음만 살피는 거였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겉모습을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스스로 화들짝 놀라거나 질색을 했다. 내면의 성장만 최고라고 생각했다. 겉모습을 넘어 내면을 바라보아 줄 사람들만 곁에 두고 싶었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안다. 내면을 가꾸는 것과 외면을 가꾸는 것은 함께 간다는 걸.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마음이 건강해야 몸도 잘 살핀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나도 운동을 한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제야 겨우 안다. 마흔이 넘어서.
마흔이 넘어 겨우 알게 된 건 또 있다. 그렇게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 아이가 그렇게 운동을 하다가 몸짱으로 거듭날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십분 씩 하는 운동으로는 눈에 띄는 변화 같은 거 없을지도 모르고, 그러다 지쳐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가 노력의 힘은 느껴봤으면 좋겠다. 노력으로 몸이 변했으면 좋겠고 그 변화를 느끼고 성취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엄마처럼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마흔이 넘어 겨우 깨친 걸 이렇게 일찍 깨우친 아이에게 더 힘을 주고 싶어 오늘도 나는 좋은 엄마 대사를 연습한다.
그저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려고.
‘엄마는 네 나이 때 그렇게 못했는데 대견하네!’
모르겠다고 도움을 구할 때는 함께 고민해주려고.
‘아, 그럼 그걸 위한 운동을 같이 한 번 찾아볼까?’
내가 살면서 알게 된 걸 일러주려고.
‘해보니까 억지로 매일 하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더라.’
그리고 잘하지 못해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사랑스럽다고 양껏 이야기해 주려고.
‘아유, 이뻐라. 누구 닮아서 이렇게 이쁜 거야! 좀 통통하면 어때, 그래서 더 귀여운걸!’
뭐 이 정도면 충분히 멋진 엄마이지 않을까. (아니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더?)
열네 살 그 시절, 내가 울먹울먹 하며 매일 노력했다면, 나는 조금 더 일찍 그 오빠에게 고백을 했을 것이고, 어쩌면 같이 떡볶이를 먹으며 연애 비슷한 걸 시작했을지도 모르고, 조금은 발랑 까져 보였던 그 오빠처럼 나도 발랑 까진 학생이 되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백팔십도 달라졌을지도 모르니, 그때의 나는 통통하길 잘했다!라고 괜한 억지를 부려본다. 그래도 딸은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땀 흘려 보았으면, 그 땀이 얼마나 맛있는지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이제 겨우 철들어 아침에 5킬로미터 가볍게 뛰고 온 엄마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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