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멈추라고 말할 때

영원히 사는 서복과 곧 죽을 바퀴벌레

by 아리



저녁,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눈앞에 시커먼 생물체가 샤라락 지나간다. 번뜩 고개를 들어보니 바퀴벌레다. 젠장. 우선 베란다 쪽으로 몰자. 밖으로 빠져나가면 그냥 없던 일인 듯 계속 책을 읽으리라. 분명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들만 다니는 틈은 분명 있으리라. 그는 내가 움직이자 나를 피해 베란다 문 쪽으로 달려갔다. 문틈 밑으로 기어 들어가나 싶더니,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궁둥이만 내밀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에프킬라를 찾으러 나섰다. 급할 땐 꼭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부엌으로 가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결국 화장실에서 찾았다. 얼른 달려가 삐져나온 궁둥이를 향해 약을 쏘았다. 움직임이 몇 배로 커진 그는 길을 잃고 바로 옆에 있는 나의 소중한 책들이 꽂힌 책장으로 들어갔다. 이런, 낭패다. 책들 뒤에서 죽을 생각인 거니. 내일은 책장 대청소인가. 하지만 약에 몹시 취했는지 다시 쪼르르 기어 나와 옆칸으로, 옆칸으로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러다 결국 밖으로 나와 책장 앞에서 몸을 뒤집는다. 한숨을 내쉰다. 바퀴벌레는 뒤집으면 끝이라고 누가 그랬지. 이제 곧 죽겠지. 마지막으로 약을 소심하게 아주 조금 분사했다. 버둥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시간은 이미 새벽 한 시. 한 숨을 쉬며 그대로 두기로 한다. 내일이면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오신다. 식구들 눈에 잘 띄는 곳도 아니니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읽던 책을 마저 읽으며 내려놓았던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읽으려는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자꾸 버둥거리던 그가 떠오른다. 길을 잃고 허둥지둥 책등을 기어 다니던 바퀴 씨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어쩐지 보아버린 것만 같다. 평소에는 밉기만 한 그였는데 오늘은 와인에 취했는지 비슷하게 (약에) 취해 길을 잃고 버둥거리는 바퀴 씨가 몹시 짠해 보였다.








열여섯 살 아이가 길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힘차게 삶을 끌고 가던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서 버렸다. 겨우 끌려가고 있었던 것일까.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아이가 만신창이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버티기 힘들 만큼 삶의 속도가 빨랐나. 덩달아 나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괜찮아. 삶에 정해진 속도는 없어.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향을 찾는 게 삶이니까. 그 속도와 방향이 결국 자기 삶의 의미니까. 그 의미를 찾는 과정을 다른 말로 ‘방황’이라고 하지. 아니면 ‘사춘기.’ 그러니 방황을 위한 멈춤은 환영받아 마땅해. 달리다 멈춰 거친 숨을 내쉬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노려보는 게 당연해.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해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 것뿐이야.'


멈춤과 방황, 사춘기 모두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야 40년 넘게 살았으니 두려울 것도 별로 없지만, 이제 십몇 년 겨우 살다 갑자기 넘어진 아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밝은 미래가 자기 앞에 있다는데 그 미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암담하기만 하겠지. 삶의 의미, 속도나 방향 같은 단어들은 어렵고 멀기만 한데 그렇다고 탈탈 손 놓아버릴 수도 없겠지. 나에게 어울리는 삶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만들어 가고 싶은지, 문득 멈춰버린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애써 바라보고 있겠지. 어쩌면 잠시 외면하고 있는지도.








그날은 마침 아이와 영화 서복을 보고 온 날이었다. 삶과 죽음, 두려움, 삶의 의미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 있는 밤이었다. 영원히 사는 서복(박보검)과 곧 죽을 기헌(공유) 모두에게 삶은 답이 없다. 내 삶도 힘들지만 네 삶도 답이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 똑같이 힘들 뿐이다. 나는 조금 더 살고 싶고 너는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서복이 아니라 기헌이다. 영원한 삶은 상상조차 되지 않고, 누구나 맞게 될 죽음은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그 죽음이 있으므로 삶이 유한하고, 삶이 유한하지만 정해진 답이 없으므로 거기에서 각자 삶의 의미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거나 갑자기 의미를 잃어 방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이는 지금 그 의미를 찾아 제 때 멈춘 것뿐이다. 잘 멈췄다.


삶이 유한한 기헌은 내가 선택한 길이 틀렸음을 깨닫고 후회에 짓눌려 살고, 삶이 무한한 서복은 그런 선택의 가능성조차 없어 체념과 분노, 포기를 오가며 산다. 곧 죽을 자는 영원히 사는 자의 마음을 모르고, 영원히 사는 자는 곧 죽을 자의 마음을 모른다. 서로 목숨을 지켜주며 갈 곳 없는 삶을 아무리 함께 걷는다 해도, 모르는 건 모른다. 당연히 엄마인 나도 아이 속을 다 알 수 없다. 나도 고스란히 겪었던 지독한 사춘기는 이미 잊어 새하얗다. 아직 살 날이 많은 아이는 미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결국 우리는 둘 다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맞잡고 잠시 멈춰 서 있을 뿐이다. 서서 바라본다. 나는 알 수 없는 아이의 삶을. 아이는 알 수 없는 자신의 미래를. 그러다 언젠가 내 손을 놓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겠지.


삶이란 자세히 들여다보면 백이면 백 다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백이면 백 비슷하다. 그 비슷한 삶 속에서 인간이 얻는 교훈 역시 멀리서 보면 다 그만그만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다 저렇다 시원하게 말해줄 수도 있겠지만, 아이 귀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들리지 않아야 옳다. 내가 얻은 것이 아무리 좋다고 그걸 아이에게 섣불리 들이밀 권리는 내게 없다. 동시에 아이는 제 삶을 홀로 고스란히 살아낼 권리가 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 아이와 함께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옆에서 지켜본다. 배를 뒤집은 바퀴벌레처럼 죽은 듯이 기다린다. 이 또한 잘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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