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키우고 받은 것

밥과 말

by 아리



<오늘의 점심 메뉴>

토마토 아보카도 양상추 샌드위치


딸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준 샌드위치다.


15년을 키우니 책상에 앉아 일 하다가 ‘다 됐어!’ 하는 소리에 나가 식탁에 앉기만 해도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물론 아보카도 다 문드러질까 봐 내가 썰어준 건 비밀. 옆으로 세워 썰어야 하는 토마토도 위험해서 내가 썰어준 건 비밀.)


그래도 어디냐. 양상추를 꺼내 뜯어 씻고, 빵을 굽고, 치즈를 꺼내 자르고 차곡차곡 얹어 접시 위에 놓은 다음 엄마를 불렀다는 게. 남은 재료는 다시 냉장고에 넣기까지!


15년을 키우니 조수 말고 주방장이 되어 요리를 하고 가족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15년을 키우니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해야 했던 관계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로 진화했다.


15년 동안 애쓴 결과 이만큼 왔다.


아, 물론 설거지는 내가 했다. 하지만 접시 몇 개뿐이니 점심 얻어먹은 기념으로 가뿐하게 룰루랄라.


언젠가는 설거지도 하겠지. 15년을 기다렸는데, 까짓 몇 년 더 못 기다릴까.


요리의 지속성도 아직은 보장 못한다. 그것 역시 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의 기쁨을 최대한 만끽하면 될 일!




그리고 딸의 마지막 한 방!


후다닥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책상에 앉은 내게 와서 말한다.


수고해~


(오늘은 엄마가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이다.)


흠, 이건 점심 먹고 온라인 수업 들어가기 전에 내가 아이에게 하던 말과 비슷하지 않은가.


공부 열심히 해~


(따님은 지금 방학이다. 수고해~ 하고 제 방으로 가서 넷플릭스를 틀겠지.)



남편도 아니고 딸한테 수고하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괜히 요상하다.


왠지 내 귀엔 '그동안 키우느라 수고했어~.'라는 말로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뿌듯함과 얼떨떨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생각했다. ‘그래. 애썼다. 조금만 더 애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