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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14. 2021

중3이 기특해질 때

3초 후 으르렁은 잠시 잊고 찰나의 행복을 누려.  

   



   잠자리에서 중 3 아이가 묻는다.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


"응? 그게 보여?"


"그럼, 다 보이지."


"음, 오늘 사람들 만나느라 일을 못해서 마음이 좀 바빠. 그리고 내일 백신도 약간 걱정되고."


"아, 그렇구나. 재밌었어? 그때 줌 미팅했던 아줌마들 만난 거야?"


"응, 엄청 재미있었어. 너무 많이 웃어서 얼굴이 막 아팠어."


"진짜? 엄마 내일 백신 맞고 아프지 마. 알았지?"



그렇게 조금 더 수다를 떨다가 눈을 감았다. 아니, 청해도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여전히 생각 많은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낮에 사람들을 만나 오랜만에 신나게 웃느라 기력이 소진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누워 생각했다.


'짜식, 엄마 표정도 읽을 줄 알고!'


아이가 뭔가 대단한 리액션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짧은 대화에서 일을 못해 분주해진 마음도, 백신을 앞두고 걱정되는 마음도 완전히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춘기 마음 달래러 큰돈 들여 한국까지 날아온 보람이 있구나.'


   마침 그날은 아이가 말레이시아에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를 오랜만에 만나 스티커 사진도 찍고 보드게임 카페도 가고, 엄마는 먹지 않는 곱창을, 그것도 엄마랑은 먹을 수 없는 매운맛으로 먹고 들어와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었다. 아, 하나 더 있지. 처음으로 엄마 없이 지하철을 타고 혼자 외출했다 돌아온 날이기도 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어딜 가든 자동차로 움직여야 했기에, 친구를 만나러 가도 드롭과 픽업이 필수였으니까. 그런데 한국에 썩 자주 오는 편도 아니라 혼자 지하철 타보기 연습을 할 새도 없이 이렇게 나이가 먹어버린 것이다. 요리조리 잘 연결된 지하철로 이제 엄마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주 뿌듯했을 테다. 매운맛 곱창을 달콤한 맛 추억과 함께 먹고 전철역에서 집까지 자신감을 뚝뚝 흘리며 걸어왔을 거다. 가을바람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한국에 오기 전,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기나긴 코로나 격리 생활에 우울해져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슬슬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는 나라들을 부러워하고 여전히 학교는 물론 어디도 오갈 수 없게 만든 말레이시아 정부를 탓하면서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냈다. 아주 얇은 유리 같은 상태였다고 할까. 식탁 위에서 잠깐만 놓쳐버려도 파삭 실금이 가 버리는 그런 유리그릇, 아니면 설거지하다가 조금만 힘을 잘못 줘도 댕겅 깨져버리는 가는 샴페인 잔 손잡이 같았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바닥으로 데구루루 굴러도 살아남는 굵고 탄탄한 머그컵 정도는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이 탄탄해지니 잠자리에서 엄마 표정도 읽을 수 있고, 집에 혼자 남은 아빠와 통화하면서 아빠의 상태를 짐작하고 걱정도 한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는 건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똑같지만, 엄마, 아빠, 집, 그리고 생필품과 식료품 쇼핑이 전부였던 말레이시아 생활에 비하면 한국에 온 후 그래도 시야가 많이 넓어졌다.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새 옷도 사고, 코로나 이전에 늘 하던 일을 한 것뿐인데, 뭐랄까, 마법의 수프를 먹기라도 한 듯 아이는 조금씩 말랑말랑해졌다.


   살다 보면 바깥으로 분출해야 할 시기가 있고 안으로 침잠해야 할 시기가 있다. 사춘기는 그중에서도 바깥으로 바깥으로 제 몸과 마음을 넓히면서 한계를 실험하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나가야 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꼼짝없이 갇혀 있다 보니 그 에너지를 엉뚱한데 쓸 수밖에 없었던 거고. 괜히 방문을 닫는데, 신발을 벗어 놓는데, 탁자 위에 리모컨을 내려놓는데 과한 에너지가 분출되곤 했다. 저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겠지. 넘치는 에너지를 쓸데는 없고, 고여 있던 에너지가 자기도 모르게 문 손잡이를 잡은 순간 막 터져 나와 자기도 당황하곤 했을 테지. 의도와 상관없이 쿵 닫혀버린 문소리에 온 집안에 괜한 긴장감이 조성되고, 또 그런 분위기를 어쩔 줄 몰라 제 안으로, 제 방으로 파고들기만 했겠지. 그랬던 아이가,


   밖에서 실컷 에너지를 쓰고 고분고분한 양처럼 집으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의 표정도 살필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닥에 널린 옷가지와 마스크와 아무렇게나 두고 나간 화장품과 면봉 등을 정리하라는 잔소리에도 재깍 엉덩이를 든다. 아무것도 아닌 외출 한 번으로 말이다. 그 외출이 얼마나 소중했을지, 얼마나 뿌듯하고, 얼마나 감격적이었을지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물론 얼마나 재밌었냐는 물음에는, ’아니, 뭐, 그럭저럭.’이라는 애매한 대답만 하지만.





"캄캄한데 전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안 무서웠어?"


"응, 괜찮았어. 그런데 신호등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쪽으로 엉덩이를 갑자기 쭉 빼면서 스트레칭을 해서 좀 웃겼어."


"그랬어? 얼른 뒤로 한 발 가지 그랬어."


"맞다, 엄마. 롯데월드 표 예매했어?"


"아니, 피곤해. 자고 내일 할래."


"그래. 잘 자."



   며칠 후에는 롯데월드에 가신단다. 아이가 어릴 때 밤에 일찍 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밖에서 실컷 놀리던 시절이 다들 있었을 것이다. 사춘기도 다르지 않다. 넘치는 에너지를 밖에서 실컷 쓰고 순한 양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사춘기가 사춘기 다울 수 있는 이곳 생활이 지금은, 어쩌면 아직은, 참 좋다.






커버 사진 <오늘의 나를 응원합니다> 콤마,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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