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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Feb 02. 2021

이게 다 그놈의 산 때문이다!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그 뒷 이야기 1 책을 내면 기분이 어때요?


뒤늦게 풀어놓는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비하인드 스토리!     



“우와! 저 구름 좀 봐! 진짜 동화책에 나오는 구름이다! 어쩜 저렇게 예쁘지?”


“헐! 진짜 누가 그려놓은 것 같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운전 중 옆에 앉은 딸과 종종 나누던 대화다. 이곳 하늘에는 매일 그림 같은 구름이 새파란 하늘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비 오는 우기 빼고) 한국의 하늘이 상자 뚜껑 같은 평면의 느낌이라면, 조호바루의 하늘은 내 위로 뒤집어 놓은 큼직한 우동 그릇 같다. 부드럽고 뽀송뽀송한 하늘이 낮게 내려와 사방으로 나를 감싸고 있다. 차를 타고 계속 달리면 하늘에 닿을 것 같고, 차 창문을 내리고 가제트처럼 팔을 길게 늘이면 손가락 끝에 푹신한 구름이 닿을 것 같다. 하늘도 구름도 그렇게 예쁘다.   


   

그렇게 예쁜 하늘 아래 살던 나는 곡절 끝에 작가가 되었고, 그 막강한 코로나를 뚫고 한국을 찾았다. 매일 푸른 하늘과 예쁜 구름을 보며 살던 내게 서울에서 가장 새삼스러웠던 풍경은 바로 여기저기 우뚝 솟은 ‘산’이었다. 그래, 삼면이 바다고 전체 국토의 3분의 2가 산이라고 사회 시간에 배웠지. 배운 그대로, 시골도 아닌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도 어딜 가나 산이 보였다. 한국에 있는 동안 머문 동생네 집 아파트 거실 창밖으로는 가을을 뒤집어쓴 북한산이 보였고 광화문 교보문고 가는 길, 종로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늠름한 산들이 우뚝 솟은 빌딩 숲 사이로 자꾸만 까꿍을 했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집 근처에도 산이 있었다. (3분의 2니 당연히 있었겠지?) 일요일마다 온 식구가 산에 올랐다. 약수터에 다다르면 엄마 아빠는 5리터짜리 빈 물통에 약수를 채웠다. 그렇게 떠 온 물을 일주일 동안 마셨다. 제법 크고 나서는 나도 조그만 물통을 짊어졌다. 올라갈 때는 가볍게 촐랑거릴 수 있었지만 내려올 때는 묵직한 물통 때문에 발만 쳐다보며 조심조심 내려왔다.


산을 탈 때는 돌을 밟아야 할지 밖으로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밟아야 할지 순간순간 판단해 걸음을 옮겨야 한다. 다른 생각은 잊고 오직 다음에 발 디딜 곳만 생각하며 오르고 내려와야 한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쉼터에, 어느새 약수터에, 어느새 다시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그렇게 날다람쥐처럼 촐랑촐랑 산을 타고 다녔다. ‘그래, 그런 때가 있었지.’ 추억이 불쑥 끓어올라 갑자기 산에 오르고 싶어 졌다. 물론 지금은 날다람쥐는커녕, 나무에 붙어있고만 싶은 나무늘보거나 나무에 매달려 이파리만 뜯고 싶은 코알라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에 왔으니 온 목적을 달성해야 할 텐데, 우선은 내가 쓴 책을 구경하러 교보문고 문턱이 닿도록 드나드는 것이오, 그렇게 책 구경을 실컷 한 다음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원주에서, 비행기 타고 제주에서, 서울 찍고 남양주 들러 대구에서 북토크를 하는 것이었다. 북토크라니! 살다 살다 내가 북토크라는 걸 하게 되다니! 세 명만 모여도 얼씨구나 듣는 역할만 자처하던 내가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야 한다니! 물론 닥치면 다 하게 된다는 교훈은 북토크에서도 진리였다. 하면 할수록 할만했다. 그렇게 떠드는 내 모습도 차츰 익숙해졌다. 독자님들은 이렇게 물었다. 


“책을 내고 나면 기분이 어때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에요.”    


 

책을 쓰는 동안, 아니, 글을 쓰는 동안 이게 책이 될지 쓰레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글을 쓰는 게 산에 오르는 거라면, 오르기 시작했다가 길이 없어져 다시 내려오기도 했고, 날이 궂어서, 체력이 부족해서, 그저 배가 고파서 그냥 돌아 내려오기도 했다. 그렇게 내려왔다가 다시 마음을 먹고 우직하게 정상까지 올라가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이게 정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확신도 있어야 했고, (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끝까지 오를 수 있다는 믿음도 있어야 했다. (주로 의심이 더 많았다) 그렇게 확신과 믿음, 의심과 포기 사이를 방황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정상에 올라 있었다. (이왕 올랐으니 한라산쯤 되었으면 좋으련만!) 산을 넘은 기분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넘었다기보다 겨우 도착한 정상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야호를 외쳐볼까 싶지만 누가 들을까 부끄러운 마음, 야호 소리가 되돌아올까 설레는 마음이 마구 엉킨 상태로 낯선 산의 정상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겨우 정상인가 생각했는데 또 북토크라는 작은 언덕들이 눈앞에 있었다. 북토크를 할 때마다 작은 산을 넘는 기분이었다. 내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고이 들고 와 눈을 반짝이며 나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감추며 받아내고 있는 그 순간, 나는 낯선 산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누가 올라가라고 떠밀기는커녕 내가 먼저 올라가겠다고 나선 길이었지만 산 아래 입구에서는 늘 막막했다. 첫인사의 떨림이 가라앉고, 내 목소리를 의식하며 겨우 입을 떼던 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술술 말하고 있는 순간을 자각하면, 잠시 나에게서 빠져나와 생각했다. 잘 내려가고 있구나. 


그리고 북토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하산하는 기분으로 독자들이 했던 말을 곱씹고 내가 떠들었던 말을 복기했다. 이불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수십 번 이불 킥을 했다. 정말이지 산에 다녀온 것처럼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하루는 진짜 산에 올라보고 싶었다. 출간이라는 산, 북토크라는 가짜 산 말고 진짜 산. 북한산이든 인왕산이든 동네 뒷산이든 돌아가기 전에 한 번은 진짜 산에 올라보고 싶었다. 


등산로도 찾아보고 친구와 함께 가자는 약속도 잡아보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혹은 날씨 때문에, 결국 산은 오르지 못했다. 대신 굽이굽이 서울의 골목은 원 없이 걸었다. 혼자서도 걸었고 친구와도 걸었다. 조호바루에는 없는 맛있는 빵을 허겁지겁 뜯어 넣으며 걸었고, 조호바루에는 없는 예쁜 가게들 앞에 자꾸만 멈춰 서며 걸었다. 굽이굽이 오르고 내리는 서울의 옛 동네들을, 떨어지는 단풍잎을 맞으며, 구르는 은행잎을 밟으며 구석구석 걸었다. 이국의 거리를 걷는 여행자의 기분으로 걸었다.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산을 아쉬운 듯 힐끔거리며 걸었다. ‘비록 산은 못 탔지만 내 이건 알고 있지. 산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한라산을 올랐다. (그랬다. 그때는 수학여행이 그만큼 빡셌다.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는 속리산에 올랐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니 힘든 줄 몰랐고, 산 좀 타봤다며 내심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올랐다. 백록담을 내려다보며 야호! 외치고 숨을 돌리기도 전에 하산이 시작되었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은 이미 가벼워졌지만 내려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라산은 엄마 아빠랑 오르던 산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분명 부지런히 걸었는데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우르르 함께 걷던 친구들도 다 사라지고 오직 나와 다른 친구 한 명만 뒤처졌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이미 어둑해진 산길을 부지런히 내려갔다. 무섭다고 말하면 더 무서워질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씩씩하게 걸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하다. 왜 내려가는 게 더 어렵지? 왜 더 오래 걸리지? 다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갔지?’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올라가는 게 힘들지 내려갈 때는 다람쥐처럼 촐랑촐랑 내려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온몸에 더 힘이 들어가는 것도, 발끝이 더 긴장해야 하는 것도, 바닥을 더 잘 보고 움직여야 하는 것도 전부 내려오는 것이었다.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내리막은 점점 평지가 되더니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한 분이 등산로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우리가 눈에 들어오자 화난 듯, 반가운 듯 두 눈이 커졌다.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아, 살아 내려왔구나.’ 선생님의 우악스러운 손이 우리의 등을 토닥였다. 아니, 등 짝을 내려쳤던가. (지금 생각해도 역시 토닥토닥의 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책을 쓴다는 게 인생의 커다란 산에 하나 오르는 것이고, 북토크는 그 산에 안긴 아담한 봉우리들을 넘는 것이었다면, 나는 올라오느라 고생했다며 나를 도닥이고 이제 하산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산이 어찌나 아담한지 눈 깜빡할 사이 다 내려와 버렸네!


 ‘흠, 이건 뭐지? 벌써 다 내려온 거야? 왜 책이 팔리다 마는 거지? 이건 뭐 산도 아니고 그냥 동네 오르막이었던 거야? 지금 내가 어딜 갔다 온 거야?’     


두 달의 일정을 마치고 말레이시아에 돌아와 보니 내가 어딜 갔다 왔는지 꿈결 같았다. 도대체 한국에서 뭘 하고 온 건지, 뭘 그렇게 떠들고 왔는지 뒤늦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시 세 사람만 모이면 듣는 사람으로 후다닥 변신을 하며 생각했다. ‘이게 다 산, 산 거리기만 했지 진짜 산에 못 가보고 와서 그런 건가.’


괜히 조호바루 근처의 산을 검색한다. 아무리 하늘이 우동 그릇이라지만 여기도 산은 있겠지. 그래! 구눙 뿔라이, 라는 이름도 웃긴 산이 하나 있긴 있다! 그래, 거기라도 다녀오자! 그래야 다음번엔 더 높은 출간의 산을 오를 수 있을 거야! 


논리는 없다. 하지만 꿈은 공짜잖아?! 그러면 두 번째 책은 더 많이 팔릴 거야! 더 높은 산에 올라가면 구름이 막 손에 닿고 그러겠지? 예쁜 구름을 손으로 휘휘 저을 수도 있겠지? 흐흠,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커다란 욕심을 잘 담아둔다. 오늘도 끝내주는 조호바루의 구름을 바라보며 김칫국부터 실컷 마신다! 캬! 좋다! (김칫국엔 역시 소주니까!)     







Photo by Hyunwon J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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