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Feb 09. 2021

제주가 유혹한다. 딱 한대만 피워봐?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그 뒷 이야기 2 쓴다는 건 선택의 연속이지





나, 빵으로 채우는 탄수화물이 많아 밥은 먹지 않는 여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파스타와 피자. 얇고 바삭한 도우에 모차렐라와 리코타는 언제나 진리!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무화과. 맥주는 물처럼 마시는 여자. 달리기와 요가, 둘 중 하나는 매일 하는 여자.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다가 번역을 하고 결국 책을 써버린 여자. 


다음은 그런 여자의 북토크를 빙자한 제주 여행 중 어떤 하루다.      


가장 먼저 바닷가에서 브런치, 아니 브랙퍼스트. 설탕 범벅 시나몬 빵과 아메리카노로 달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당 충전 후 무사히 북토크를 마치니 오전이 다 갔네. 이제부터 자유시간. 가장 먼저 책방을 찾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그곳의 책방, 혹은 헌책방이지. 제주 책방 지도를 펼쳐놓고 고심하다가 간 곳은 <미래 책방>. 이것저것 다 사고 싶지만 여행자의 신분으로 함부로 짐을 늘릴 수는 없는 법. 오래 고민하다 딱 한 권만 사 들고 나왔다. 다음은 제주도민이 추천해준 동네 빵집 차례. 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화과 깜빠뉴가 있다! 빵집 2층 베란다에서 사 온 책을 읽으며 정신없이 빵을 뜯었다. 큼직해서 혼자 다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먹다 보니 흔적도 없다. 흠, 지금까지로도 벌써 만족스러운 하루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 없지. 하이라이트가 남았거든. 바로바로! 바닷바람 맞으며 달리기! 사진 찍는 관광객들을 헤치며 해안도로를 달렸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간간이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해수면을 향해 몸을 낮췄다. 파도는 지치지도 않고 옆에서 방파제를 치고 또 쳤다. 숨이 차오른 폐가 기분 좋게 둠칫거렸다. 땀을 식히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샀다. 한껏 단단해진 종아리를 느끼며 딸깍! 맥주 캔을 땄다. 벌컥벌컥, 캬! 하늘하늘한 시폰 커튼 너머로 고요히 내려앉는 제주의 어둠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힘껏 달리고 목도 축였으니 이제 제대로 저녁을 먹을 시간! 역시 제주도민이 추천해준 식당으로 들어선 순간! 아니, 피맥 집이 이렇게 멋질 일인가! 그곳에서 나는 인생 피자를 만나게 된다. 제주 맥주는 덤. 한 판과 한 잔을 뚝딱 해치우고 기분 좋게 알딸딸한 상태로 숙소에 도착했다. 이런 하루라니! 지금까지도 아름다웠지만 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숙소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작은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 이방인으로 살아온 그녀의 글을 좋아했는데 마침 읽지 못한 책이라 은은한 조명을 켜고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자, 중요한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그날 이후로 오늘까지 십삼 년 반, 단 한 번도 담배를 다시 피운 적은 없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지금은 이따금 담배에 관해 몽상한다. 

  밤늦게 은은한 스탠드 조명만 켜놓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노트북 컴퓨터 옆에는 따끈한 커피를 담은 머그잔이 놓여 있다. 한껏 집중하며 글을 쓰다가 중간에 잠시 머리를 식힐 때, 두 다리를 책상 위로 뻗고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빤 뒤 후우, 하고 연기를 길게 내뿜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책 원고를 마침내 완성하고서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은 또 얼마나 맛이 깊고 달까. 

  그러나 현실의 나는 늦은 밤이나 새벽은커녕, 햇살이 비추는 아침 아홉 시부터 시간에 쫓겨 바지런을 떨어가며 글을 쓴다. 화장실 갈 때를 빼놓고는 자세 한번 흩트리지 않고, 딴짓 한번 하지 않고 오로지 원고 작업만 한다.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 옆에는 비타민C 한 포와 당근 주스가 놓여 있다.     


   임경선 <자유로울 것> 중에서 





후우, 하고 연기를 길게 내뿜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니. 이런, 내 마음이 바로 거기 있었네! 


그녀의 글에 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 떠올랐고, 입술이 있지도 않은 담배 연기를 내뿜는 듯 알아서 둥그렇게 말린다. 그래, 머리가 헝클어질 때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지. 기분이 좋을 때 담배를 피우면 그 좋은 기분이 몇 배는 더 부풀곤 했지.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지금 담배를 한 대 피우면 이 행복한 기분이 더 좋아지겠네?      


그래서 갑자기 끊었던 담배가 피우고 싶어 졌다. 아, 조금 위험하다, 생각하며 글을 더 읽다가, 그녀의 마지막 문장에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너무도 담담하게 이렇게 덧붙였다. 당근 주스가 놓여 있다는 그 문장 다음에 말이다.      


이게 사는 건가.      


젠장! 이게 사는 거라니! 아하하! 나는 너무 공감이 되어 혼자 앉아 있는 숙소에서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사는 거라니!      


그래! 숙소 바로 옆에 노들 슈퍼가 있었지! 계산대 할머니 뒤로 담배들이 가지런히 서 있었지! 그래서 나는 당장 지갑을 들고 슈퍼로 가지 않고,      


우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그 멋진 하루에 대한 긴 글을 썼다. 글 쓰는 동안 담배 생각이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길 바라며.      


글은 이미 두 페이지를 넘어갔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자꾸 노트북 시계만 본다. 노들 슈퍼 주인 할머니의 얼굴도 떠올린다. 할머니는 몇 시에 주무실까. 고민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임경선은 결국 십삼 년 반 동안 한 번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피웠을까? 이게 사는 거냐고 절규한 후에 나처럼 한 대 피울까 말까 고민했을까? 아니겠지? 그래도 어쩌면? 


흠, 그렇다면 그 글을 읽은 나는, 겨우 칠 개월 끊은 담배를 피우게 될 것인가? 행복했던 제주에서의 하루가 담배 한 대로 더 완벽하게 마무리될 것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 마지막 한 마디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을 고민이었다. 한때 담배를 피웠지만 지금은 비타민과 당근 주스로도 행복하다고 그녀가 글을 마무리했다면,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생각 없이 다른 페이지를 펼쳤을 것이다. 그래. 한때 즐겁게 피웠지만 피우지 않는 지금도 좋아, 이렇게 중얼거리며.      


하지만 이게 다 그 한 문장 때문이다. 그 한 문장의 힘은 그렇게 막강했다. 이렇게 행복한데 담배가 없다는 건 사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속절없이 설득당해 버렸다. 그녀는 어쩌자고 당근 주스와 비타민 C도 있다면서, 마지막 한 문장을 덧붙여 이렇게 나를 흔든단 말인가.     


글을 쓰다 멈추고 또 30분이 지났다. 결정을 재촉하듯 촐싹이는 커서를 외면하고 휴대전화를 들어 이미 확인한 인스타와 페북과 카톡 창들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담배 생각이 사라졌다. (정말?) 담배에 대한 욕구마저 눌러버릴 정도로 산만한 온라인 세상 탐험이었다. (진짜로?) 쓸데없는 정보를 무작정 집어넣은 데다가 술기운이 마구 올라와 문득 피곤해졌다.      



에잇, 담배 따위. 노들 슈퍼 할머니, 기다리지 마시고 안녕히 주무세요. 


아니야, 그래도 뭔가 아쉬워. 바로 옆인데 뭘 망설여?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좋아, 안 그래? 괜히 성가시게 뭘 나가려고 해? 


정말 충분해? 지금 한 대 피우면 완벽할 것 같지 않아? 그렇지?      



아, 몰라, 몰라. 고개만 흔든다.      




다시 딴생각이 필요하다. 그래,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해보자. 나도 그녀처럼 엄청난 한 방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그래, 담배 없는 삶도 썩 나쁘지 않다.     

 


이렇게?     


아, 몹시 약해. 마음에 안 들어. 지금은 우선 자고 내일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생각해 볼까? 아, 어쩌지? 졸음이 쏟아져 정신이 혼미해. 역시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시간이 필요해. 일단 노트북을 덮어? 그리고 담배를 사러 가? 아, 몰라. 


그래, 담배를 피울까 말까 고민한 만큼, 나는 이제 이 글을 어떻게 맺을까 고민하고 있다. 두 번째 고민이 점점 커져 첫 번째 고민을 덮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담배 한 대만큼의 강력한 한 방을 찾고 있다.      



역시 쓴다는 건, 손가락만 움직이면 백지에 글자는 채워지지만,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조사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전부 그렇다. ‘이건 사는 것도 아니야!’ 인지,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인지 선택의 연속. 눈앞의 단어들을 갖고 놀며 궁리하고 가끔은 머리를 쥐어뜯는 일의 연속. 하다 보면 좀 늘면 좋겠지만 억울하게 늘 다시 시작하는 기분은 덤. 자, 미룬다고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아. 눈 딱 감고 내가, 지금, 선택할 수밖에. 그 선택이 정확하고, 가끔은 배꼽 잡게 웃기고, 또 가끔은 더듬더듬 휴지를 찾아 나서게 만들기를 바라면서 고르고 골라 딱! 쓰는 수밖에. 이건 뭐 고르곤졸라도 아니고. 후, 글이 잘 안 풀릴 때는 역시 담배를 한 대 피워야 하는데! 아무래도 담배를 끊기 전에 책을 쓸 걸 그랬나! 아, 몰라,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복잡한 한숨을 크게 내쉬고,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그래서 그날 밤, 내가 담배를 피웠게, 안 피웠게?      




어떤가 이 정도면? 막 궁금해지면서, 도대체 이따위 글을 쓴 사람 누구야! 하면서 이름을 막 외우겠지? 훗, 그것이 나의 큰 그림이다! 담배 없는 삶도 나쁘지 않다는 문장보다 천 배는 마음에 들고! 








Photo by Antonino Visalli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이게 다 그놈의 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