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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Mar 15. 2021

삼십년 만에 노래방에 한 번 가볼까?



누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1초도 지나기 전에 대답할 말이 있다.  


“노래방!”


그래, 나는 노래방이 싫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싫었다. 노래방 다음으로 싫은 건 노래방 가자고 꼬드기는 사람이다. 혹은 진짜 어쩔 수 없이 따라가서 인상 구기고 앉아 있는데 계속 노래하라고 꼬드기는 사람이다. 왜 노래방이 싫냐고? 당연한 거 아닌가, 노래를 못 하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그 무능력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해 사람들을 웃기면서 동시에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내공 따위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런 내공은 지금도 없다) 아무튼 이 ‘노래방 싫어 병’은 무서울 게 없던 이십 대에 ‘한국 사회 싫어 병’으로 급격히 악화되었고, 그 병을 핑계로 나는 뭐든 다 같이 으쌰 으쌰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람들을 피해 허둥지둥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버렸다.


그런데 세상에! 그들은 뭐가 그리 쿨한지! 내가 싫다고 해도, 오케이! 좋다고 해도, 오케이! 뭐든 오케이였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음은 인정한다.) 아무튼 나는 노래방 가자고 꼬드기는 사람 없는 그곳에서 조금 자유로웠고, 노래방의 나쁜 기억들에서도 차츰 벗어나 룰루랄라 행복해졌는데, 그 행복은 얼마 안 가 와장창 부서졌으니,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내가 극단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연극도 아니고 노래극을 하는 극단에 말이다. 나도 미쳤지만, 나를 받아준 그들도 마찬가지였을 터. 청춘 특유의 그 세상 물정 모름, 과도한 자신감,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정신 등이 똘똘 뭉친 엉뚱한 분위기 덕분에, 눈 떠보니 나는 노래를 배우고 있었다. 당연히 진도는 잘 나가지 않았고 그러다 공연 중 삑사리를 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공연 중 혼자 하는 노래가 생겼으니, 세상에, 내가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진짜 집에도 안 가고 연습을 했다. 물론 죽도록 연습하면 나도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면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그래도 최선은 다했다는 자기 위안이 필요해서 그랬을 것이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부들부들 떨던 첫 공연, 첫 노래의 그 순간. 무대에 올라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워커를 신고 또각또각 무대를 가로지르며 네 마디 정도 불렀을까. 걸음을 멈추고 약속된 자리에 서니 환한 조명 때문에 보이지 않던 관객들 얼굴이 어느새 조금씩 선명해져 있었다. 간혹 아는 얼굴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마음도 편해져 있었고. 무대 전체까지는 아니지만, 딛고 서 있는 그 두 발바닥만큼의 공간은 내가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아침에 일어나 오줌을 싸고 양치를 하듯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구나? 아니! 어느 정도 연습 양이 쌓이면 잘하든 말든 그냥 몸에 익어버리는구나. 자동 저장되어 클릭하면 나와버리는구나! 나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연습으로 노래 한 곡을 몸에 저장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게 된 것뿐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연습하지 않은 다른 노래는 부르라면 또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갈 테지.






세월은 흘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극단 생활은 시나브로 정리되었다. 나는 다시 노래 따위 부를 일 없는 사람이 되었고, 당연히 노래방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으로 돌아왔다. 또 세월이 흘러 어쩌다 보니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다. 노래방 가자는 사람이 없어서 좋은 곳. (노래방이 없으니까! 오예!) 그런데 가끔 한국에 갈 때마다 이십 년 지기 절친이 자꾸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아무리 싫다 해도 끈질기게 조른다. 무조건 나랑 노래방에 가야 한다며 얼마나 고집을 피우는지! 그렇게 만날 때마다 조르기(제발 가자!)와 거절하기(아, 싫다고!)의 한 판 대결을 펼치다가 겨우 노래방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밤 아홉 시.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고 달리러 나갔다. 풀밭에서 이름 모를 동물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틀었다. 달리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고, 그러다 보니 수십 번 들었던 노래를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달리다가 좋아진 기분에 제법 크게 말이다. 여긴 노래방도 아니고,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 노래는 진짜, 너무 많이, 지겹도록 들어서, 웬걸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앗, 깜짝이야!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그래! 이 노래도 공연을 위해 연습했던 그 노래처럼  어느새 내 몸에 저장되어 버렸구나! 박자도 맞춰지고, 제법 음도 맞추는 걸! 그래! 이 노래라면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다음에 한국에 가면, 또 친구가 노래방 가자고 조르면, 못 이기는 척 한 번 따라가서 불러 볼까? 흠, 진짜? 이렇게 또 나는 업그레이드된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인가!  




예전에 깨달았던 걸 홀라당 까먹고 또 깨닫는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마흔이 훌쩍 넘어 그렇게 다시, 계속 깨달으며 오늘도 엉금엉금 인생 전진!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인생이 좋다. 너무 급격한 변화는 피곤하지만, 이런 사소한 변화는 언제나 재밌고 반갑다. 갑자기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되는 거 말고, 지겹도록 들은 한 곡 정도는 노래방에서 무심히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딱 그 정도.


나보다 노래를 훨씬 잘하는 새가 옆에서 짹짹거린다. 와, 너 노래 좀 하는데! 근데 너 노래방이 뭔지 알아? 모르지? 메롱~ 참 나. 그게 뭐라고 삼십 년 전에 노래방 가본 걸 새한테 자랑하고 있다. 그만 달리고 들어가 냉수나 한 잔 들이키자.








Photo by Luke Par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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