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Jun 02. 2021

에그타르트

그녀의 이웃



아침에 일어나 조그만 창문을 열면 

옆집 1층 남자가 상반신을 훌렁 드러낸 채 앉아 신문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1층 베란다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

2층의 자기 방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가 괜히 놀라 후다닥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의 자태가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면야 그녀도 굳이 외면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바로 그녀가 새로 이사 온 집의 창밖 풍경이었다.


새 집에서 네 번의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이었다.

세 번은 그녀의 방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동거인의 침대에 끼어서 새우잠을 잤고,

에어컨 수리 기사님이 다녀가신 후 어젯밤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넓은 침대에서 편히 잠들 뻔했으나,

달빛이 들어오는 창도, 침대의 방향도, 방의 가구도 전부 바뀐 새 방은 쉽게 단 잠을 내어주지 않았다.

연거푸 잠에서 깨며 긴긴밤을 보내다가 어두웠던 창밖이 마침내 환해진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잠 청하기를 포기하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낯선 남자가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그 창문을.


새로운 공간의 활력이랄까,

그런 것들을 기대해 볼 만도 하지만,

그녀는 원체 우울한 기질이 다분해 딱히 새 집에 대한 감흥은 없었다.

며칠 동동거린 결과 이제 겨우 살 만한 정도로 집을 정리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낯선 곳에 놓인 익숙한 책상에 앉아,

낯선 창 너머로 익숙한 하늘을 가끔 올려다보며,

낯선 부엌에서 익숙한 냄비를 꺼내 이것저것 지지고 볶아가며

느릿느릿 새 집에 적응할 것이다.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어

새 집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

연이은 짐 정리로 인한 피로가 더 무거운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녀도 예전에는 그런 낯선 것들 앞에서 펄떡이는 정 반대의 감정들을 느끼곤 했다.

낯선 장소에 가면 유쾌한 호기심 같은 것들에 금방 기분이 몰캉몰캉 간지러워졌고,

반대로 낯선 사람 앞에서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기분이 툭 건드리기만 해도 쩍 하고 두 동강 나 버릴 듯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낯선 새 집과 새 방의 신선함도,

이웃집 낯선 남자가 선사하는 은근한 귀찮음이랄지 괜한 성가심 같은 것들도

강의 하류처럼 완만하게 흐르는 피로의 물줄기에 섞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뿐이었다.


그런데 그 잔잔한 물결에 예상치 못했던 돌멩이가 하나 떨어졌는데,

그 낯선 남자와 함께 사는 낯선 여자가

새로 이사 온 그녀의 집에 직접 에그타르트를 구워 들고 온 것이었다.

아직도 그런 환대가 남아 있는 동네였다니.

이웃이라고는 볼 수 없거나, 봐도 못 본 척 지내는 곳에서 살다 온 그녀는

낯선 부엌에 놓인 익숙한 식탁에 앉아

바사삭 부서지는 따뜻한 에그타르트를 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흠, 하고 약간의 기대와 걱정 같은 것을 해 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십년 만에 노래방에 한 번 가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