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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Mar 03. 2021

단어 하나로 삶이 바뀔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일상이 흐트러졌어. 하긴, 코로나로 누구의 일상이 안 흐트러졌을까.



하지만! 코로나가 벌써 1년인데 아직도 코로나 때문이라고 징징대면 어떡해. 내가 생각해도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아. 그렇다고 코로나가 끝나면 모든 게 짠! 다 풀릴까? 천만의 말씀. 코로나가 끝나면 이제 무슨 핑계를 댈지 나도 내가 궁금해.



어쨌든 나의 일상이 무너진 과정을 설명하자면, 우선 운동을 멈춰. 그리고 마감이 다가오는 일도 용감하게 미뤄. 요리? 그게 뭐야? 내 삶을 안 챙기고 남들의 삶만 SNS에서 구경하느라 수면 패턴도 헝클어지지. 부지런히 떴다가 지는 해에 질질 끌려가듯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보면, 어느새 마감은 코앞으로 다가와 있고, 넉넉하게 입던 바지가 꽉 끼어 답답해져. 그러면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 일상의 루틴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와락! 짜증이 올라와 더 손을 놓아 버리지. 에잇, 이번 생은 망했어! 하면서. 그럴수록 일상의 회복은 간절해지는데, 망한 일상을 회복시킬 마음은 어딜 갔는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큰일이 난 거지.



내일부터는 꼭 다시 운동해야지! 다짐만 하면서 빵을 산더미처럼 사다 나르고, 사놓고 한 번 신은 러닝화에 먼지가 예쁘게 쌓이고 있으며,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놓고 넷플릭스 신작은 전부 꿰고 있는 데다, 점심은 간단하게 배달시켜먹고, 저녁은 화려하게 외식으로 때워. 그리고 술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들이부어. 내일부터는 반드시!라는 외침보다, 이왕 망한 김에 하루만 더!라고 외치기는 얼마나 쉬운지.



물론 나도 늘 그렇게 망한 생만 사는 건 아니야. 마음먹으면 5킬로미터는 금방 달리고, 한때는 10킬로미터도 무리 없이 뛰었거든. 30일 요가 챌린지는 물론 태양 경배 자세 50번 연속도 해본 적 있는 사람이거든, 내가. 매일 글을 써 차곡차곡 모아놓기도 하고, 넘겨야 하는 원고는 마감에 맞춰 재깍 넘기는 사람이었거든, 내가.



그럼, 뭐해. 지금은 이런데. 하지만 그런 나도 나고, 이런 나도 나지. 사람이 그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니까. 문제는 그렇게 괜찮은 나보다 망한 내가 대부분 힘이 더 세다는 거야. 그래서 망한 내가 괜찮은 나를 너무 쉽게 이겨먹는 거지.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나는, 망한 내가 잠시 한눈팔 때만 반짝 활개를 치다가 금방 또 밀려버려.



어쨌든 망했다는 이야기를 이리도 길게 하고 앉았네. 원래  출발은 이렇게  털어놓고 하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서 그랬던 거야. 다시 잘해보려고. 다시 일상의 루틴을 잡아보려고. 단단한 루틴!으로 하루를 알차게 채워보려고 말이야. 요가든 달리기든 뭐라도 매일 하고, 얼마 남지 않은 마감을 위해 매일 조금씩 일을  놓고, 장을 봐서 매일 건강한 음식을  먹고, 주중에 술은 되도록 마시지 않고. , 그런데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해지고 술이   땡겨. 에잇, 루틴이라니. 사람 머리

댕강 자르는 기요틴도 아니고. 그래, 단어가  생겨서 그래! , 기요틴 같은 루틴 따위!



그래서 또 대낮부터 침대에 누워 쓸데없는 웹서핑을 하는데, 문득! 하늘이 내린 듯 천장에서 하나의 단어가 내게 내려왔단 말이야.



그것은 바로

알,

에이치,

와이,

티,

에이치,

엠,

바로 rhythm이었어.



리듬. 그래, 쿵짝쿵짝, 뭐 그런 리듬 말이야. 원투쓰리, 파이브 식스 세븐, 아직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라틴댄스의 리듬. 경쾌한 살사와 아름다운 바차타의 그 리듬 말이야. 그러면서 갑자기 기분이 약간 좋아지는 거야. 마치 춤을 추고 있을 때처럼. 열대의 햇살이 무엇이든 녹여버릴 듯 강하게 내리쬐는데 뜬금없이 리듬이라니. 왜 그 단어가 내게 왔을까, 리듬을 타며 생각했어.



리듬,

리듬,

나의 리듬,

삶의 리듬,

일상의 리듬.

그래!

일상의 루틴 대신

일상의 리듬!



근엄한 표정으로 하나씩 해치워야 하는 것들이 루틴과 더 어울린다면, 그날그날 컨디션에 맞게 그까이꺼 대충! 하는 건 리듬과 더 어울리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 요가로 몸을 풀 때도 태양 경배 오십 번이라는 과거의 영광 따위 잊고 다섯 번부터 가볍게 다시 시작하는 거지.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내키는 만큼만. 요가가 끝나면 그 리듬 그대로 책상에 앉아 마감이 다가오는 원고를 아주 쪼끔 보다가, 간주가 나오면 잠시 기본 스텝으로 숨을 고르듯 노트북을 덮고 부엌으로 가 간단히 점심을 챙기고, 몸이 원하면 잠시 침대에도 누웠다가, 또 쨍한 볕을 보며 다시 책상에 앉아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건, 분명 루틴보다 리듬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그렇게 일상에서도 리듬을 타보면 어떨까? 기본 스텝과 약속된 신호만 공유하면 즉석에서 상대방과 멋진 춤을 출 수 있는 것처럼, 매일 내 앞에 새로 펼쳐지는 날이 매번 새로운 춤곡인 듯 흥겹게 리듬을 타며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리 화려한 춤이라도 기본 스텝은 같잖아? 그러니 아무리 바쁘고 복잡한 날이라도, 혹은 아무 일도 없어 지겹고 또 지겨운 날이라도, 또박또박 기본 스텝을 밟으며 그날만의 춤을 추는 거지. 그러다 보면 상대의 신호에 한 바퀴 턴을 하듯, ‘하루'라는 보이지 않는 파트너가 지금은 요가 매트를 펴라는 신호를 보내줄 거야. 두 바퀴 연속 턴을 하라고 조금 더 강한 신호를 보내주면 매트를 펴는 대신 운동화를 신고 다시 나가 달리는 날도 생기겠고.



그래, 하루의 리듬. 일상의 리듬.



이렇게 문득 생각난 단어에 나의 일상을 걸어보겠어. 루틴 대신 리듬으로 단어 하나 바꾼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지다니! 육중히 나를 가로막던 벽 같은 일상이 와르르 무너져 마법 양탄자가 된 느낌이야. 훌쩍 올라타 리듬을 타며 날아보자. 오예!



그런 리듬을 타는 중에는 주중에 마시는 술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멋진 리듬일 것 같고 말이야. 한 곡의 음악이 짠! 멈출 때 멋진 엔딩으로 춤을 마무리하듯, 한 잔 더 마시고 싶어도 과감하게 잔을 탁! 내려놓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만 같고. 한 잔이 한 병이 되어 다음날 아침에 머리 쥐어뜯으며 후회하는 그런 일은, 리듬을 타는 일상에서는 없을 것만 같단 말이지.



어쨌든 나는 지금, 그 리듬이라는 단어 덕분에 앞으로의 일상이 꽤 괜찮아질 것 같아. 단어 하나의 힘이 과연 며칠이나 갈지 두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괜히 신이 나서 들썩이는 중이야. 자, 나의 일상은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해 죽겠어. 리듬을 잘 타보다가 또 알려줄게. 궁금하면 오백 원!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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