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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an 08. 2021

택시를 불러놓고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나 하려고 택시를 불러서 나갔다. 삼겹살과 돼지갈비를 맛있게 먹고 배가 터질 것 같아서 근처를 잠깐 걷다가 집으로 돌아올 택시를 불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택시를 부를 때 그랩 Grab이라는 앱을 사용한다.)     


택시가 가까운 곳에 있다고 지도에 떴는데 그 자리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취소를 하고 다른 택시를 불렀는데, 또 그 택시가 잡혔다. 결국 오늘은 그 택시를 탈 팔자인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에도 택시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올 듯 말 듯, 움직일 듯 말 듯 우리 속을 태웠다.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다시 취소해!”

남편이 말했다. “완전 할아버지인가 봐. 운전을 이렇게 못해! 아, 왜 여기서 여길 못 오지?” 

아이까지 셋이서 한마음 한뜻으로 도대체 왜 안 오냐, 어디에 있냐, 어떤 사람이냐 한참을 투덜거렸다.      


그리고 몇 분 뒤, 택시가 도착했다. 


진짜 할아버지인지 궁금했다. 

문을 열었다. 

팔에 시커먼 타투를 새긴 젊은 청년이었다.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에 요즘 누구나 쓰고 다니는 마스크를 썼을 뿐인데, 갑자기 주변 공기가 1도는 낮아진 듯 오싹해졌다.      


보통 택시를 타면 자리에 앉으면서 ‘하이’, ‘헬로’, 정도의 인사는 주고받는데, 

그 순간, 기사도 우리 가족 셋도 말이 없었다. 갑자기 모두 합죽이가 되었다.      



그렇게 말없이 고요하게 십여 분을 달렸다.


집에 도착했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서둘러 내렸다.     



속으로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아이가 옆으로 바짝 다가와 말했다.

“엄마, 나 진짜 무서웠어. 이것 좀 봐.”

아이는 여차하면 누를 수 있도록 핸드폰에 112를 띄워놓고 있었다. 평소에는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게 택시를 불러 타고 다니던 아이였다. 어떤 우락부락 기사 아저씨도 무섭다고 한 적 없는 아이였다.      


훗, 웃고 말았지만,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왔다.


‘지금 저 아저씨가 돌변하면 여기서 문을 열고 뛰어내려야 할지도 몰라. 아이는 내 쪽으로 끌어당겨 탈출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반대편으로 밀어주는 게 나을까? 남편은 기사 옆자리라서 잘 안 보일 테니 내가 잘 봐야 해. 혹시 칼 같은 걸 꺼내지 않는지!’     


누구나 쓰고 다니는 마스크, 여기선 흔한 타투, 별다를 것 없는 그랩 택시 기사일 뿐이었는데, 아이와 내가 동시에 겁을 먹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말은 안 했지만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는 내내 쓸데없는 수다 한 마디 안 떨었던 걸 보면.      


애초에 택시를 기다리며 아무 불평 없이 우리끼리 농담 따먹기나 했다면 생각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흔하디 흔한 팔뚝 타투 기사가 무서워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갑게 ‘하이!’ 인사하며 탔다가 택시 안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떨었을 것이고 내릴 때도 기분 좋게, ‘땡큐. 바이!’ 하고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사가 할아버지인가 보다는 둥, 길을 모른다는 둥, 운전을 못 한다는 둥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댔고, 기대와 달리 젊은 타투 청년을 보자 약간은 당황했고, (심지어 그 타투, 너도 있잖아!) 그 당황스러움과 쓸데없는 소릴 했다는 죄책감이 뒤섞여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말이 생각의 씨앗이 되고 감정의 뿌리가 된다. 말이 쌓이면 생각도 자라고 감정도 익는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상황이, 탈출해야 할지도 모르는 무서운 상황이 되어버린 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말 때문이었다. 누구나 들으면 흠칫할 나쁜 말이 아니라 그저 재밌자고 생각 없이 하는 말에도 그런 힘이 있다. 말이 어디로 싹을 틔워 어떻게 뻗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말의 씨앗을 뿌리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섣불리 추측하지 말고, 별것도 아닌 일에 괜히 투덜대거나 불만을 내뱉지 말자. 



한 마디로, 말조심하자. 


말이 감당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으로 자라 나를 잡아먹기 전에.             










        Photo by Daniel Monteir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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