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취향
그녀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았다. 라면을 먹으면 속에서 돼지 한 마리가 꾸물거리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짜파게티도 마찬가지였다. 먹고 나면 입이 텁텁해져서 싫었다. 그래서 그녀가 직접 라면이나 짜파게티를 끓이는 일은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다.
사람들은 눈떠보면 가족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녀가 태어나 처음 눈을 떴을 때도 가족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연애 좀 하나보다 싶었는데 눈떠 보니 어느새 결혼이란 것을 해 또 새로운 가족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선택할 수 없거나 순식간에 생겨버린 가족이 오락이나 음식, 여행 취향 같은 것이 맞을 리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녀의 가족이 된 그를 예로 들어보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예능이었지만 그것은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장르였다. 귀에 몹시 거슬리는 방청객의 웃음소리, 감질나게 이 사람 저 사람 반응을 하나씩 보여주며 한없이 늘어지는 진행 속도가 그녀를 짜증 나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독재자로 변해 집의 텔레비전을 아예 없애버렸다. 그런데 음식 취향은 그보다 해결이 쉽지 않은 게, 억지로 먹이거나 절대 못 먹게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빵순이와 밥순이, 고추장과 치즈, 매운맛과 심심한 맛 등 둘의 취향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가끔은 억지로 먹어주기도 했고, 또 그렇게 가끔 먹어주는 걸로 성이 차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같이 먹으며 그럭저럭 각자 취향을 지켜가며 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여행을 갔다. 호주의 어느 도시였다. 넓은 뒷마당에 아담한 별채를 지어 에어비앤비로 내어 놓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날씨가 꾸물거려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날이었는데, 아침에 잠시 나갔던 그가 짜파게티를 먹겠다고 사 왔다. 호주에서 그런 것도 팔았고, 또 그는 그걸 어떻게 찾았는지! 하지만 여행 중 짜파게티라니, 그녀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에서는 새로운 것을 먹어야지. 맛이 새롭지 않으면 공간이라도 새롭던가! 짜파게티를 지금 같이 먹자고? 안 먹어! 너나 먹어! 여행의 한 끼를 이렇게 허무하게 버릴 순 없어!’ 하지만 그는 어쨌든 짜파게티였고, 비도 올 것 같으니 그냥 집에 있겠다고 했다.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그녀 혼자 집을 나섰다. 그 도시에는 카푸치노 거리라는 게 있었는데, 세상에 카페가, 그것도 노천카페가, 한두 개도 아니고 한 거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데, 집에서 짜파게티라니!
그녀는 씩씩거리며 카푸치노 거리로 가서 가장 사람 많은 카페에 남은 한 자리를 잡았다. 약간 쌀쌀했지만 그럭저럭 바깥에 앉아 있을 만했다. 앉아 있다 보니 그의 짜파게티 선택이 갑자기 고마워졌다. 카페에 뭐 하러 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그였기에, 그녀 역시 여행 중 카페에서의 망중한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녀는 카푸치노와 시나몬 롤을 시켰다. 색다른 메뉴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장소, 새로운 풍경이니까 괜찮았다. 그런데 괜찮음을 넘어 곧 그녀의 마음이 몹시 흡족해졌는데, 그곳의 모든 웨이터들이 아주 잘생겼던 것이었다.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는 웨이터들이 1군으로 가장 잘 생겼고, 바에서 커피를 만드는 웨이터들이 2군으로 잘 생겼으며, 종종 비품을 채우러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지막 3군마저 잘 생겼다. 사람을 쓸 줄 아는 카페였다. 그녀는 커피를 새 모이만큼씩만 홀짝이고, 빵을 결대로 한 가닥 씩 느릿느릿 뜯어먹으며 그 축복의 공간에 앉아 그들을 훔쳐보았다. 빵 한쪽으로도 배가 불렀다. 하지만 붙잡고 싶은 시간은 저 혼자 헐레벌떡 흘렀고 그녀 앞에는 우유 거품과 시나몬 가루의 흔적만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할 수 없이 엉덩이를 끙 일으켜 마지막으로 모든 웨이터들을 한 번 훑어본 다음,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숙소에 도착하니 쓰레기통에 들어앉은 짜파게티 봉지의 자태와 은은하게 시커먼 짜파게티 향도 썩 밉지 않았다. 여행의 한 끼를 낭비한 그가 미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지만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져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짜파게티 덕분에 두 사람 모두 긴장과 모험, 이완과 휴식이라는 각자의 여행 취향에 충실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 오후, 점심도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그가 물었다. ‘간식으로 짜파게티를 먹을 사람?’ 그렇다. 그는 참 일관성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와 함께하는 짜파게티. 하지만 그녀 역시 일관성 있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라면이나 짜파게티는 연중행사에 제 손으로 끓여먹지도 않는다. 귀찮더라도 나가서 빵과 커피를 사 오는 편인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아니, 점심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간식으로 또 짜파게티?’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치켜들고 씩씩하게 외쳤다. “저요! 저요!” 그리고 물도 끓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시커먼 입맛을 쩝쩝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