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집게의 운명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바구니 담아 끙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한 시간이면 젖은 빨래가 바짝 마를 만큼 햇살이 뜨겁다. 건조대에 매달린 빨래집게에 손을 대자 갑자기 툭, 깨져버린다. 동그란 고리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바사삭 부서진 잔해가 바닥에 흩어져 있다. 맑은 하늘처럼 파랬던 색도 뜨거운 태양에 모조리 기운을 빼앗겨 창백한 얼굴처럼 희끄무레하다. 무심히 바라보며 빨래를 탁, 탁, 털어 넌다. 뜨거운 햇살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는다.
열대의 태양은 무엇이든 잡아먹는다. 튼튼한 플라스틱도 어느 순간 약해져 녹아내린다. 쨍한 분홍색 컨버스도 활기를 잃고 시무룩한 표정이다. 짱짱하던 크록스는 그 힘찬 태양에 색도 빠졌지만 몸까지 뒤틀려 있다. 제 자리에 놓아두기만 했는데도 조금씩 잃어간다. 제 모습을, 제 목적을, 제 자신을.
인간의 생명이 이 뜨거운 열기에 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렇게 쉽게 끊어질까 걱정되어 잠시 일을 멈추고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것일까. 혹시 그래서, 내가 대신 사과한다며 하루에 한 번쯤은 비가 내려주는 것일까. 그래서 바람도 가끔 피부를 어루만져 주고 지나가는 것일까. 우리도 널 돌보니 괜찮을 거라고, 태양에 툭 바스러지는 집게처럼, 너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에 앉아 빨래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바닥에 떨어진 집게의 잔해가 다시 시선을 끌자 애써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가 어두운 커튼을 친다. 태양이 미치지 못하는 어두운 방에서 두 눈을 꿈뻑이며 마음이 말한다. 아니, 괜찮지 않아. 빨래집게도 부숴버리는 밝다 못해 찬란한 햇살도 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어두운 마음은 어쩌지 못한다. 바깥은 더운데 방 안은 서늘하다. 몸은 뜨거운데 마음은 차디차다. 꽁꽁 언 호수의 저 밑바닥처럼 고요하고 시커멓다.
태양은 부지런히 빛나고 내 마음은 부지런히 방황하는, 그런 시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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